S #1 경찰서 앞 (밤)
성기, 차마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주변에서 얼쩡거리고 있다가
연옥이 피곤한 얼굴로 경찰서 현관문을 나서는 것을 보고 다가가는데
연옥의 엄마와 아버지가 바로 뒤따라 나오자 일단 근처 나무 뒤로 숨는다
연옥의 부모, 경찰서 문을 나서자마자 싸우기 시작한다.
엄마 으이구, 동네 창피해서 이사를 가던지 해야지.
아버지 뭐가 창피해?
엄마 딸네미가 경찰서나 들락거리는데 그럼 안 창피해?
아버지 (버럭) 그게 뭐가 창피해? 연옥이가 잘못해서 들락거렸어?
딸네미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잡혀와서 온갖 고초를 다 겪고
돌아가는데 위로는 못해줄 망정 그게 엄마가 할 소리야?
박사장인가 하는 자식 내 손에 잡히기만 해 봐라. 아주
요절을 내고 말 테니까.
연옥과 연옥의 부모, 성기가 숨어 있는 나무를 지나가고
성기, 얼른 나무를 끼고 뒤로 돌아가 숨는다.
엄마 남의 탓 할 거 없어. 당신이 척척 벌어다 줬어 봐. 애가 그런
데까지 돈 받으러 찾아다녔겠어?
아버지 (꽥) 아니, 내가 돈을 왜 못 벌어? 이 나이 되도록 야근에,
특근에, 나처럼 돈 벌어다주는 남편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그리고 연옥이 탓하지 마. 우리 집안에 연옥이 말고
테레비 출연한 사람 있어?
엄마 어이구, 자랑이다, 자랑이야. 얼굴 가리고 뉴스에 나온 게
무슨 가문의 영광이라고.
아버지 이 여편네가 정말!
성기, 연옥이네 식구들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자 비로소 나무 뒤에서 나와
연옥이가 간 쪽을 잠시 보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경찰서를 돌아본다.
S #2 유치장 (밤)
만호, 어두컴컴한 유치장 구석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천장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팔굽혀펴기를 미친 듯이 한다.
S #3 술집 (밤)
미래, 안으로 들어와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다가
테이블에 혼자 폼 잡고 앉아 있는 진상을 발견하고 다가간다.
진상, 마치 실연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우울한 얼굴로 위스키를 마시고 있다가
미래가 다가오자 자리에서 일어난다.
진상 나와줘서 고마워요. 앉으세요.
미래 (앉는다)
진상 뭐 드실래요? 위스키 좋아하죠?
미래 더우니까 맥주나 한 잔 할래요.
진상 (손을 들어 웨이터를 부른다) 맥주 한 병.
진상, 말없이 술을 마시고 다시 잔을 채운 다음 침통한 얼굴로 테이블만
내려다본다.
미래, 괜히 분위기 잡는 진상이 이상하다.
미래 ... 할 얘기가 뭐예요?
진상 미래씨는 내 마음을 이해해줄 거 같아서 만나자 그랬어요.
미래 ?
진상 요즘 사무실 분위기가 말이 아니죠?
미래 ... (빤히 본다)
진상 나도 당혹스러워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동네에서 자란
동창이고, 입사 동긴데, 그런 짓을 했다는 게 믿기질
않아서요.
맥주가 도착한다.
진상, 맥주병 뚜껑을 따 미래의 앞에 놓는다.
진상 드세요.
진상, 다시 괴로운 척 한 번에 술잔을 비우고
미래, 그런 진상을 보며 조심스럽게 맥주를 마시려다가 그냥 내려놓는다.
진상 다른 사람들이 그 친구를 비난하는 소릴 들으면 괴로워서
미치겠어요.제가 알기론 그런 짓을 할 친구가 아니거든요.
미래 (동지를 만난 것 같아 반갑다.) 전 최진상씨도 강만호씨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줄 알았어요.
진상 (픽 웃는다) 그렇게 보였어요? 만호네 아버지가 우리 집에서
허드렛일을 거드는 사람이긴 했지만 만호하고 저하고는
어려서부터 형제처럼 컸어요. 싸움도 많이 하고. 만호는
뭐든지 잘했어요. 공부, 운동, 뭐든지...난, 정말 그 친구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 게 너무너무 가슴이 아파요.
진상, 다시 괴로운 얼굴로 확 술을 마신다.
진상 미안해요. 내가 이런 얘기하려고 미래씨 오라 그런 건
아닌데.
미래 괜찮아요.
진상 풀려나겠죠? 죄가 없다면.
미래 그럼요. 너무 걱정 마세요.
진상 정말 그 자식 인생이 이렇게 끝나면 안되는데...
진상, 다시 술을 마시고
미래, 그런 진상을 걱정스럽게 본다.
S #4 진상이네 집 앞 (밤)
미래의 차가 선다.
미래, 운전석에 앉아 있고 진상, 차에서 내린다.
미래 괜찮겠어요?
진상 (차문을 잡고 비틀거리며 내린다) 미안해요. 제가 모셔다
드려야 되는데.
미래 들어가세요.
진상 고마워요, 미래씨. 고마워요.
진상, 비틀거리며 돌아서서 현관 입구로 들어가다가 푹 고꾸라진다.
미래, 떠나려다가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그런 진상을 보며 난감해한다.
미래 최진상씨! 최진상씨!
S #5 진상이네 집 (밤)
미래, 취한 진상을 힘겹게 부축하고
집안으로 들어와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올리고
진상을 소파에 앉힌다.
진상, 소파에 기대앉아 괴로워한다.
미래 갈께요. 사무실에서 뵈요. (돌아서는데)
진상 (보지도 않고 미래의 손을 탁 잡는다) 미래씨.
미래 (당황하여 본다)
진상 (고개를 숙인 채) ... 고마워요.
미래 (손을 조심스럽게 빼내고) 안녕히 계세요.
미래, 나가면
진상, 눈을 뜨고 미래가 나간 쪽을 본다.
S #6 진상이네 집 (아침)
헤비메탈 음악이 집안 가득 울려 퍼지는
가운데 진상, 윗몸 일으키기 운동을 하고 있다.
진상, 마치 권투선수처럼 윗몸을 일으켜
양쪽 팔꿈치로 번갈아 양쪽 무릎을 찍으며
활기차게 운동을 하다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냉장고로 가 쥬스 한 병을 꺼내
병 채로 들고 마시며 책상으로 간다.
진상, 쌓여있는 서류를 하나씩 집어 툭툭 던지다가
서류 사이에 삐죽이 나와 있는 만호의 벤처 기획안을 발견하고
뽑아 기획안의 겉장을 심드렁한 얼굴로 넘겨본다.
e-credit 이란 제목이 나온다.
진상, 픽픽 웃으면서 보다가 점점 얼굴이 굳어지더니 급기야 자리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기획안에 몰두한다.
S #7 대회의실
현회장과 회사의 임원, 마주앉아 얘기를 하고 있고
장차장과 허과장은 문 쪽에 떨어져 조심스럽게 앉아 있다.
이때 노크소리 들리고 진상이 들어와 인사하고 선다.
진상 안녕하십니까? 최진상입니다.
현회장, 진상을 살피듯 보며 담배를 뽑아 들자 이사, 얼른 담배불을 붙여준다
이사 (진상에게) 어, 거기 앉아. 저 친굽니다.
현회장 똘똘하게 생겼네.
이사 회장님도 기획안은 읽어 보셨죠?
현회장 읽어보긴 했지만 우리 같은 아날로그가 뭘 압니까? 우리
비서실 직원들이 잘 하면 대단한 돈벌이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사 이번 기획안이 말이죠, 어떻게 보면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지만 우리 카드회사 이미지하고도 딱 맞아떨어지고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회장 음... 에이스에서 어련히 알아서 잘 뽑았겠죠. 나야 돈만 대면
되니까, 허허허. (진상에게) 그래, 언제부터 시작할건가?
진상 예, 일단 지금 사무실에서 인큐베이팅을 하고,
현회장 뭐하러 그래?
진상 예?
현회장 내 건물에 빈 데 있으니까 당장 그리로 옮겨.
진상 직원도 뽑아야 하구요, 세부사업계획도,
현회장 거기선 못 뽑나?
진상 아닙니다.
현회장 (이사에게) 인력은 에이스에서 제공하기로 한 거 아닙니까?
이사 그렇죠.
현회장 그럼 당장 필요한 인원은 에이스에서 보내주시고, 나중에
필요하면 또 뽑고, 난 돈 대고. 빨리빨리 해서 빨리빨리
터트려야지. 어물거리다가 다른 데 선수 뺏기면 말짱 꽝
아닙니까?
이사 예, 그렇죠. (급하다) 자, 자, 장차장. 자네 부서에서 우선
사람 배치해, 알았지?
장차장 예. 이사님.
현회장 자, 그럼 전 바빠서 이만.
현회장, 갑자기 일어나면 일동, 우르르 일어난다.
현회장 (나가며 진상에게) 내일 당장 옮겨.
진상 예,
현회장, 바쁘게 나가면 이사, 급히 따라나가고 진상도 따라나간다.
장차장 (일행을 급히 따라나가다가 허과장에게) 허과장님이 당장
급한 업무 없으니까 내일부터 최진상씨 돕도록 하세요.
(나간다)
허과장 예?
S #8 에이스카드 앞
현회장, 이사와 장차장, 진상의 배웅을 받으며 차에 타고 떠난다.
진상, 차가 안보일 때까지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한다.
장차장 (이사가 먼저 안으로 걸음을 옮기자) 최진상씨, 차 갔어.
진상 (민망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허리를 편다)
장차장 누구는 이제 인생 풀렸네? .
진상 다 차장님 덕입니다.
장차장 빈말이라도 고맙네. (들어간다)
진상,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회사 건물을 올려다본다.
세월이 막 흐른다.
S #9 교도소 앞
굳은 만호의 얼굴, 그 옆으로 역시 싸늘하게 굳은 보스의 얼굴이 나타난다.
두 사람, 마치 황야의 무법자처럼 싸늘하게 정면을 바라보는데
두 사람의 앞에 고급 승용차들이 급하게 도착하고
대협과 총련을 위시한 부하들, 미처 멈추지도 않은 차에서 뛰어내려
일렬로 서며 보스에게 인사한다.
대협 (다급히 다가오며) 늦어서 죄송합니다. 회장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보스 이거 봐, 강군.
만호 (정면을 응시한 채 돌아보지 않는다)
보스 우리 출소 기념으로 점심이나 같이 하지.
만호 부탁이 있는데, 우리 서로 아는 척 하지 맙시다.
대협 뭐야? 이 자식이!
대협과 총련, 부하들, 만호를 에워 싸는데 보스, 손을 들어 제지한다.
보스 ... 통이 제법 큰놈인 줄 알았더니 쫌팽이였군. 이런 데 한
번 들어왔다고 인생 끝나는 거 아냐!
만호 갈 길이나 가시죠.
보스 연봉이 얼마면 되겠어?
만호 ...
보스 내 밑에서 일해볼 생각 없나?
만호 ...
보스 취직 안되면 찾아와. 가자.
보스, 차에 오르면 일행들, 후다닥 떠난다.
만호, 떠나는 보스의 차를 힐끗 보고 걷기 시작하는데
두부가 담긴 까만 비닐봉지를 든 성기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성기 만호야!
성기, 만호를 끌어안고 울려고 하는데
만호, 성기를 확 떼어내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성기 (바쁘게 따라가며) 만호야! 만호야! 두부 먹어야지.
S #10 만호네 집
만호와 성기, 밥을 먹고 있다.
반찬은 두부찌개와 두부부침이 전부다.
성기 그래도 빨리 나와서 다행이다. 너 없는 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 생활비는 없는데 월세 내고 공과금 내는
날짜는 왜 그렇게 자주 오는 거냐?
만호 철호는?
성기 학교 갔지. 너 그렇게 되고 정신 차렸는지 학교 잘 다니고
있어.
만호 ...혹시 연락 온 거 없었어?
성기 누구한테?
만호 아냐.
성기 이제 어떡할 거냐?
만호 ...
성기 근데... 그거 정말 니가 빼돌린 거냐?
만호, 성기를 무섭게 노려본다.
성기, 찔끔하는데 만호,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S #11 만호네 집 앞 (밤)
만호의 머리 속에 사무실에서 진상과 마주쳤던 일과
회의실에서 싸우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만호, 굳은 얼굴로 밤하늘과 야경을 내려다보며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낸다.
S #12 에이스카드 건물 앞
선그라스를 낀 만호, 결의에 찬 얼굴로 건물을 올려다보고 서 있다.
만호의 선그라스에 에이스카드 건물이 비친다.
S #13 건물 로비
만호, 정면만 응시한 채 무표정한 얼굴로 로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에 탄다.
선그라스를 낀 만호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슬쩍슬쩍 돌아본다.
S #14 엘리베이터 안
설계사들이 가득 찬 엘리베이터 안.
만호, 문 앞에 서서 혼자 생각에 빠져 있다.
설계사들 틈에 끼어 있던 은지, 만호를 보고 놀란다.
S #15 사무실
김대리, 오대리, 미스심, 바쁘게 일을 하고 있다가
들어서는 만호를 보고 깜짝 놀란다.
만호 (안경을 벗으며) 그동안 안녕들 하셨습니까?
일동, 잠시 할 말을 잊고 만호를 본다.
만호 미스심도 안녕?
미스심 아, 아, 안녕하세요?
김대리 (정신을 차리고) 아, 가, 강만호씨. 여긴 어떻게...
만호, 사무실을 둘러본다.
진상의 자리에는 다른 직원이 앉아 있고.
자기 자리에도 낯선 얼굴이 앉아 있다.
미래의 자리는 없어졌고 김대리는 허과장의 자리에 앉아 있다.
만호 별 일 없으셨죠?
김대리 아, 뭐, 별 일이야 있겠어요? 미스심, 여기 차 한 잔. 좀
앉으시죠?
만호 됐습니다.
김대리 아니, 그래도..
만호 승진하셨나 보죠? 축하드립니다.
김대리 아, 고마워요.
만호 최진상씨는 안 보이네요?
김대리 아, 아직 모르시는구나. 최진상씨는 벤처팀으로 갔는데.
만호 벤처요?
S #16 진상의 사무실
진상의 커다란 책상 위에는 LCD 모니터가 여러 대 놓여 있고
진상, 무진장 바쁘게 이 컴퓨터 저 컴퓨터를 왔다갔다하며 일을 하고 있는데
노크소리.
진상 네.
허과장, 문을 열고 들어와 진상의 책상에 서류들을 올려놓는다.
허과장 법인 신청서류는 다 준비됐는데?
진상 그럼 신청 들어가세요, 아, 그리고 세부 사업계획안이
필요한데...우선 단계별로 디테일을 좀 뽑아 주시구요,
프리젠테이션 때 쓸 자료들 좀 준비해주세요.
허과장 내가?
진상 그럼 제가 합니까?
허과장 아니, ... 그러지, 뭐.
진상 아, 그리구요, 전산팀 인원을 뽑아야 하는데... 컴퓨터 잘
모르시죠?
허과장 나야, 컴맹 겨우 면했지.
진상 그럼 그건 제가 하죠. 면접 대상자들한테 연락해서 면접
스케쥴이나 좀 잡아 주세요.
허과장 저기... 그러지, 뭐.
진상 일 보세요.
허과장, 뭔가 말할 듯이 서 있다가 그냥 나가는데 미래 들어온다.
미래 아, 과장님. 이거 시안 들어 온 건데요, 문제가 많더라고요.
과장님도 한 번 검토해보시구요, 내일 담당자 들어오라
그래서 미팅 잡아 주세요.
허과장 그러지, 뭐.
미래 (진상의 책상으로 가며) 이거 좀 가르쳐 주실래요?
허과장, 아니꼬운 눈으로 두 사람을 째려보고 나간다.
S #17 진상의 방 앞 복도
허과장, 진상의 방을 돌아보며 궁시렁거린다.
허과장 아니, 내가 비서야, 뭐야? 지 스케쥴까지 잡아줘야 돼?
말년에 일복이 터지는구만. 장차장, 이놈의 인간을 그냥!
허과장, 홱 돌아서는데
유리문이 열리고 만호, 안으로 들어선다.
허과장 아니, 이게 누구야? 강만호씨 아냐? 언제 나왔어?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
만호 과장님도 여기 계셨어요?
허과장 장차장, 그 인간이 말이야. 나 할 일 없다고 이리로
쫓아버렸잖아.
만호 진상이 있어요?
S #18 진상의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린다.
미래,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고 진상은 미래의 등 뒤에서
미래를 감싼 듯한 자세로
뭔가를 가르쳐주고 있다가 문이 벌컥 열리자 동시에 문 쪽을 보는데
허과장이 들어온다.
허과장 누가 왔게?
허과장의 뒤에서 만호가 나타난다.
두사람, 놀라 만호를 보는데
만호도 뜻밖에 미래가 같이 있자 당황한다.
미래 강만호씨.
허과장 (자기가 먼저 소파로 가며) 이리로 앉아.
진상 (자기를 무섭게 쏘아보는 만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
허과장에게) 과장님은 나가서 일 보세요.
허과장, 기분 나쁘고 민망하여 홱 나간다.
미래, 자리에서 일어난다.
미래 언제 나왔어요?
진상 (미래보다 한 발 앞서 다가가며 손을 내민다) 전화라도 좀
하지 그랬어. 출소 축하한다.
만호 (진상이 청하는 악수를 무시하고) 미래씨, 오랜만이에요.
미래 정말 오랜만이네요.
진상, 민망하여 내밀었던 손으로 소파를 가리킨다.
진상 앉아라.
만호 사무실 좋네. 벤처 사장이라고? 출세했다?
진상 고마워. 차 한 잔 할래? (인터폰을 누르려는데)
만호 아냐, 됐어.
미래 아니, 차 말고 식사나 같이 하러 가죠. (만호의 팔짱을 끼며)
아직 식사 안했죠?
만호, 미래의 팔짱이 부담스러운데
진상, 순간적으로 미래의 팔을 보며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진상 (만호에게) 바쁜 거 아냐?
만호 백수가 바쁠 게 뭐 있냐?
진상 그래, 그럼. 미래씨, 나가시죠.
미래, 만호의 팔짱을 낀 채 밖으로 나가고
만호, 진상을 계속 보며 미래에게 이끌려 나간다.
진상,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까 잠깐 동안 머리를 막 굴리다가
두 사람을 따라나간다
S #19 일식집
다다미가 깔린 고급 일식집 방.
만호, 미래, 진상, 테이블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다.
진상은 미래를 의식하며 만호에게 친절한 척 하려 애쓰고
만호는 미래 때문에 애써 참고는 있지만 진상의 그런 위선이 가증스럽다.
진상 많이 먹어. 얼굴이 좀 상한 거 같다.
만호 상한 게 아니고 원래 이래.
미래 한 번도 못 찾아가서 미안해요.
만호 미래씨가 찾아올 만한 데가 못돼요.
진상 앞으로 어떡할 거냐?
만호 왜? 걱정되냐?
진상 취직은 힘들텐데.
만호 힘들면, 니가 시켜줄래?
진상 (웃으며) 너, 많이 삐딱해졌구나?
만호 나, 원래 이래.
미래, 두 사람의 대화가 좀 이상하다.
미래 그럼, 우리하고 같이 일하면 어때요?
만호 우리요?
미래 진상씨하고 저요. 저도 이리로 옮겼거든요.
만호 그래요?
미래 지금 한참 회사를 세팅하는 중이라 사람이 많이 필요한데,
특별히 다른 일 없으면 같이 일해요. (진상에게) 좋은 생각
아니에요?
진상 (긴장한다) 아, 그 문젠 지금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고
천천히 생각해 봅시다.
미래 아니면 강만호씨도 뭐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창업해 보지
그래요?우리 아버지하고 그 주변에 돈 대겠다는 사람들
많아요. 다리는 제가 놔 드릴께요.
만호 (피식 웃는데)
진상 그거 좋은 생각이네. 뭐, 그런 거 있으면 나한테라도 갖고 와
봐.아이템만 괜찮으면 우리회사에서 투자할 수도 있으니까.
만호 넌 아이템이 뭐야?
진상 응?
만호 벤처 일등한 아이템이 뭐냐고?
진상 (식은땀) 어... 대단한 건 아냐.
미래 인터넷상에서요,
진상 (말 끊으며) 미래씨.
미래 네?
진상 (웃으며 농담처럼) 회사 기밀을 그렇게 얘기하면 안되죠.
그것도 산업 스파이 앞에서. 하하하.
진상, 한 유머 했다는 듯 혼자 유쾌하게 웃고
미래, 만호의 눈치를 살피며 당황하는데
만호, 순간 들고 있던 젓가락으로 진상을 찔러버리고 싶을 만큼
강한 살의를 느낀다.
그리고 그 순간, 만호의 젓가락이 번개같이 진상의 눈앞으로 좍 뻗어가
바로 눈 앞에서 멈춘다.
진상, 등골이 서늘해진다.
만호 비싼 음식점에 웬 파리냐?
만호의 젓가락 끝에 진짜 파리가 잡혀 있다.
미래 어머, 대단하다.
만호, 진상을 보며 씩 웃고
진상도 억지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미소를 짓는데 전화벨 울린다.
진상 네, 최진상입니다. ... 아, 그래요? ... 지금 곧 올라가겠습니다
(전화 끊고) 어떡하지?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말이야.
만호 가셔야지. 벤처 사장님이신데.
미래 전 좀 더 있다 가도 되죠?
진상 아뇨. 미래씨도 같이 가야 되는 자립니다.
미래 (아쉬운 심정으로) 그래요?
만호 가 보세요.
진상 미안해서 어떡하지? 모처럼 만났는데.
만호 미안해?
진상 (굳는다)
만호 이 정도 일로 미안하다 소릴 한다 말이지? 최진상이?
만호와 진상 사이에 살벌한 기운이 감돌고 미래,
의아한 얼굴로 그런 두 사람을 본다.
진상 (일어나며) 천천히 먹고 나와라. 계산은 하고 갈 테니까.
가시죠, 미래씨 (나간다)
미래 (명함을 건네며) 연락해요. (나가려다가) 보고 싶었어요.
진상, 나가다가 그 말을 듣고 얼굴 굳고
만호, 미래를 올려다보고
미래, 만호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나간다.
만호, 두 사람이 나간 뒤 착잡하고 우울한 심정으로 남은 음식을 둘러보다가
이를 악물고 진상이를 씹는 기분으로 먹기 시작한다.
S #20 진상의 사무실
진상, 안으로 들어와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의자에 앉는데
미래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들어온다.
미래 난 안 들어와도 되는 일이잖아요?
진상 (잠시 보다가) 미래씨. 내 말 잘 들어요.나도 누구보다
만호를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에요. 만호네 어려운 사정
누구보다 잘 알고 만호 저렇게 된 거 누구보다 가슴 아파요.
하지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에요. 만호가 아무리 안 됐고
사정이 딱하다고 해도 만호는 전과가 있어요.. 그것도 두
번씩이나. 그리고 그중 한 번은 정보유출, 금융범죄와 관련돼
있어요. 미래씨 아버님이나 다른 투자자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내 개인적인 사업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미래 (기분 나쁘다) 얘기 듣고 보니까 그러네요. 미안해요.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미래, 홱 돌아서서 나간다.
진상, 만호의 출현이 괜히 마음에 걸린다.
S #21 만호네 집
만호, 수염도 안 깍은 초췌한 얼굴로 방구석에 누워
초점없는 눈으로 TV를 보고 있다.
성기, 양복을 좍 빼 입고 거울 앞에 서서 스킨도 바르고
머리에 무스도 바르며외출 준비를 하고 있다.
성기 이야... 정회장이 때 맞춰 잡혀들어갔기에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으으으 (몸서리친다) 내가 무슨 수로 칠백억을
만드냐? 멍청한 정회장. 그 인간은 말이야. 적어놓은 거 외엔
죄다 까먹어요. 아직 연락 안 오는 거 보면 분명히 까먹은
거야.빵 안에서도 내 얘기 없었지?
만호 ...
성기 야, 야, 야, 너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야. 잊어! 세상에 감옥 갔다온 놈이 너 하나
뿐이냐?다 잊고 나랑 같이 뛰자니까? 사람이 말이야, 돈은
못 벌어도 몸은 바빠야 돼. 그래야 잡생각이 안 나거든. 너,
그렇게 방구석에서 빌빌대면 몸도 마음도 다 망가진다.
운동을 하든가, 아니면 연애라도 하든가,
만호 ....
성기 아, 정말. 언제까지 내가 니네 형제 뒷바라지나 해줘야 되냐?
내가 지금 푼돈이나 벌고 있을 때가 아닌데. 대형
프로젝트를 하나 팡 터뜨려서 말이야, 그 동안의 실패도
만회하고 인생설계도 새로 하고, 너, 무슨 아이디어 같은 거
없냐? 요샌 아이디어 하나만 있으면 팔자 고치는 세상인데.
나, 나갔다 온다. (나가다가) 야, 야, 수염도 좀 깍고, 세수도
좀 하고, 아니, 목욕 좀 해라 냄새 난다.
성기, 홱 나간다.
만호, 잠시 그 자세 그대로 누워 있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벌떡 일어나
방안을 막 뒤지기 시작한다.
만호, 책상 서랍 안에서 디스켓들을 꺼내 막 헤집어 뭔가를 찾아낸다.
만호, 컴퓨터를 켜고 디스켓을 넣으려다가 무슨 소용인가 싶어 벽에 냅다
던진다.
만호, 떨어진 디스켓을 잠시 보다가 다시 얼른 집어들어 컴퓨터에 넣고
파일을 연다.
화면에 e-credit이 뜬다.
만호, 모니터를 잠시 바라보다가 컴퓨터를 확 꺼버리고 일어나
욕실로 들어간다.
S #22 만호네 욕실
만호, 벽에 붙은 조그만 거울을 들여다본다.
자신의 초췌한 몰골이 보기 싫다.
만호 (거울 속 자신을 노려보다가) 그래, 강만호. 언제는 니가
개뿔이나 있었냐?
만호, 갑자기 비누거품을 얼굴에 묻히고
면도기를 집어들어 면도를 하기 시작한다.
S #23 건물 앞
양복에 넥타이를 맨 차림의 만호, 따가운 햇살에 눈살을 찌푸리며
허름한 건물을 올려다보다가 안으로 들어간다.
S #24 중소기업 사무실
한 쪽 벽에 온갖 잡동사니들이 샘플로 진열되어 있는 작은 유통회사 사무실.
만호, 직원과 면접을 하고 있다.
직원 좋은 데 다니셨네요.
만호 ... 예.
직원 그런델 왜 그만 뒀어요?
만호 ... 사정이 좀 있어서요.
직원 월급 많이 받았겠네요?
만호 월급은 상관없습니다.
직원 학벌도 좋고, 성적도 좋고, 부담스러워서 이거 원...
만호 열심히 하겠습니다.
S #25 다른 사무실
땀에 절은 만호의 얼굴 위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직원 (다른 사람) 우리야 쓰면 좋지. 근데 당신 같은 사람
뽑아봐야 오래 안 있더라구, 금방 다른 직장 찾아서
가버리니까 난 맨날 일만 가르치다가 마는 거야.
S #26 다른 사무실
절망적인 만호의 얼굴 위에 다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직원 (다시 다른 사람) 전과자를 누가 쓰겠어요? 괜히 더운데
헛고생하지 말고 다른 일 찾아 봐요. 혼자 할 수 있는 걸로.
S #27 거리
만호, 해가 쨍쨍 내리쬐는 한 낮의 거리를 걷고 있다.
만호, 넥타이가 목을 조이는지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풀어내고
지친 얼굴로 경계석에 주저앉는다.
S #28 보스의 사무실
테이블 가운데에 탕수육이 놓여 있고 짜장면과 써비스로 따라온 군만두,
고량주 한 병이 놓여 있다.
대협과 총련, 군침을 삼키고 앉아 있지만 내심 실망스럽다.
보스 오늘은 내가 특별히 나의 출소기념으로 탕수육을 시켰으니까
맛있게 먹도록 해.
대,총 예, 회장님. (젓가락을 뻗으려는데)
보스 사회여론도 있고 해서 한동안 근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다
보니까 출소기념파티가 좀 늦어졌다. 마음껏 먹고 마음껏
즐기도록 해.
대,총 예, 회장님. (다시 젓가락을 뻗으려는데)
보스 그 동안 수고들 많았다.
대협 아닙니다, 회장님. 저희가 그 안에서 회장님을 모셨어야
하는데 먼저 나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 젓가락을
내미는데)
보스 그 동안에 돈 떼먹고 도망간 놈 없었지?
총련 예, 회장님.
보스 음... 이제 내가 나왔으니까 신규채권도 발행하고 영업도
활성화해야지.
대협 예, 회장님.
보스 박사장은 어떻게 됐어? 그 사업은 잘 진행되나?
대협 회장님 나오시면 직접 말씀드리겠다고 꽁무니를 빼고
있습니다.
보스 뭐야?
대협 제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박사장이 아무래도 좀
수상합니다.
보스 뭐가?
대협 그때 우리를 찌른 게 ... 혹시... 박사장 짓이 아닐까요?
보스 박사장이?
대협 예.
보스 박사장이 왜?
대협 회장님한테 큰 소리는 쳐놨지, 돈 갚을 길은 없지, 그러니까.
총련 그 시간에 맞춰 혼자 수금한다고 나간 것도 수상하잖습니까?
보스 ... 박성기, 이 자식을 기냥!?
보스, 테이블을 확 엎어버린다.
대협과 총련, 한 젓가락도 못먹고
바닥에 쏟아진 중국요리가 너무너무 아깝다.
S #29 지하창고
성기, 대협에게 얻어맞아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다.
대협, 그런 성기를 쫓아가며 마구 때린다.
보스, 한 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 싸늘하게 그런 성기를 노려본다.
성기, 이미 엄청 얻어 터졌지만 기죽지 않고 변명한다.
성기 한부장! 왜 이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야?
대협 더 맞아야 정신 차리겠어? 돈 갚기 싫어서 찔렀지? 엉?
성기 한부장, 날 뭘로 보는 거야? (보스를 돌아보며) 회장님,
오햅니다. 제가 감히 어떻게 회장님을 배신하겠습니까?
대협 이 자식이 그래도! (다시 때리려는데)
성기 왜 이래, 한부장! 말로 해. 말로 하자구.(보스에게) 회장님,
생각을 해보세요. 내가 미쳤습니까? 죽을 거 뻔히 알면서
내가 그런 짓을 했겠어요? 회장님하고 칠백억짜리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시작하는 마당에 내가 왜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하겠습니까? 생각을 해 보세요. 칠백억입니다,
칠백억. 한부장, 날 그렇게 못 믿겠다면 맘대로 해. 죽여도
좋아. 하지만 회장님을 위해 내가 준비한 칠백억짜리
프로젝트는 내 숭고한 죽음과 함께 영원히 사라지는 거야.
회장님, 저는 이 생에 아무런 미련이 없습니다. 회장님 같은
분한테 사업자금도 빌려 쓰고 회장님과 함께 칠백억짜리
프로젝트를 구상했던 것만으로도 전 행복합니다. 그리고
정말 내가 그랬다면 만호랑 미쓰리까지 엮어서 그렇게
들어가게 했겠습니까? 회장님 부디 건강하십시오.
성기, 갑자기 웃옷을 벗어 젖히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노끈을 줏어
자기 목에 막 감는다.
대협과 총련, 당황한다.
보스 잠깐.
성기, 동작을 멈춘다.
보스 미스리? 그 아가씨 이름이 미스린가?
성기 예. 회장님.
보스 맞아... 그 아가씨가 괜히 우리 때문에 욕봤어. 연락처 아나?
성기 ... 예? 왜요?
보스 내가 미안해서 밥 한 번 살라 그래.
성기 아, 예. 지금 연락해볼까요?
대협, 기분 나쁜 얼굴로 전화기를 성기 앞에 내려놓는다.
성기, 얼른 전화를 한다.
소리 (연옥부) 여보세요.
성기 미스리네죠?
소리 (부) 예, 그렇습니다마는?
성기 아, 안녕하십니까? 미스리 있으면 좀 바꿔주십시오.
소리 (부) 실례지만 누구시죠?
성기 박성기라고 전에 미스리가 일하던 사무실 사장입니다.
소리 (부) 박성기? 너, 이자식, 너, 거기 어디야?
성기 (당황한다) 예?
소리 (부) 너, 무슨 낯짝으로 다시 전화질이야? 너 때문에 우리
미스리 경찰서까지 잡혀가고 뉴스에도 나와서 잘 다니던
회사 짤렸어. 안 그래도 너 만나면 내가 가만 안 둘라
그랬는데 잘 됐다. 너, 거기 어디야?
성기 아, 예. 안녕히 계세요. (서둘러 끊는다)
보스 뭐래?
성기 지금 집에 없다는데요?
보스, 성기를 살벌하게 노려본다.
S #30 연옥이네 집
연옥부, 전화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아버지 너, 이자식. 왜 끊어? 야! 야! 너, 내가 그냥 둘 줄 알아?
아버지,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는다.
연옥모, 밥상을 들고 들어오다가 놀란다.
엄마 (밥상을 든 채) 당신, 일요일 아침부터 왜 그래?
아버지 내, 이 자식을, 그냥. 연옥아! 연옥아!
연옥, 방에서 부시시 나온다.
연옥 왜요, 아버지?
아버지 너, 그 박사장이란 놈하고 아직도 연락하냐?
연옥 아뇨.
아버지 근데 왜 전화가 와?
엄마 (밥상을 내려놓으며) 돈 줄라고 전화한 거 아닐까?
아버지 돈 줄 거면 벌써 줬지.
엄마 그래도 그렇게 전화를 끊으면 어떡해? 무슨 얘길 하나
들어나 보고 끊지.
아버지 내가 끊었어? 그 놈이 끊었지.
엄마 아, 그럼, 그렇게 전화기에 대고 악을 쓰는데 끊지, 무슨 얘길
해?
아버지 그래서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그런 놈한테 무슨 돈을 받아?
엄마 안 받으면? 당신이 줄 거야? 당신이 줄 거야?
아버지 어떻게 된 여자가 돈밖에 몰라? 딸네미보다 돈이 더 중요해?
엄마 내가 왜 이렇게 됐는데? 나도 고상하게 살고 싶은 여자야.
아버지 그래? 나도 고상한 여자하고 살고 싶은 남자야! 이거 왜
이래?
엄마 고상한 여자들이 미쳤어? 당신같은 남자하고 살게? 주제를
알아야지.
아버지 뭐? 주제? 에잇!
아버지, 옆에 있던 아무거나 휙 집어던지는데 엄마 옆을 샥 스치고 지나간다.
아버지, 순간 당황하고 엄마, 눈이 홱 돌아간다.
엄마 던졌어? 에잇!
엄마, 연옥이 타 온 밥통을 번쩍 든다.
아버지와 연옥, 눈이 똥그래지는 순간 엄마,
온 몸의 힘을 실어 밥통을 아버지에게 던진다.
밥통, 아버지의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아버지 한 번 해 보자 이거야?
엄마 그래. 어디 한 번 해 보자.
아버지와 엄마, 레슬링하듯 순식간에 뒤엉키고 연옥, 필사적으로 말린다.
연옥 아버지! 엄마! 왜 이래요! 지옥아! 지옥아!
아버지, 엄마를 어깨에 둘러메고 빙빙 돌리다가
엄마의 머리와 연옥의 머리가 세게 부닥친다.
연옥, 별이 보이며 그 자리에서 기절한다.
엄마 연옥아! (남편에게) 안 내려놔!
놀란 아버지, 엄마를 얼른 내려놓고 연옥을 내려다보다가
멀쩡하게 서 있는 엄마를 신기한 눈으로 본다.
S #31 커피숍
연옥과 은지, 마주 앉아 있다.
연옥 지난주엔 몇 장이나 했냐?
은지 얼마 못했어. 이마는 왜 그래?
연옥 응? 넘어졌어. 회사는 어때?
은지 회사야 맨날 똑같지, 뭐.
연옥 팀장님은 안녕하시지?
은지 안녕이 다 뭐냐?
연옥 왜? 무슨 일 있어?
은지 말도 마. 난리 났어.
연옥 왜?
은지 회사에서 벤처 공모하는데 뽑혔거든. 어마어마한 사무실
얻어갖고 독립했잖아.
연옥 그래?
은지 스톡옵션도 얼마를 받았대드라? (막 생각하지만 생각이
안난다) 하여간에 그렇게 되니까 사람도 달라 보이는 거
있지? 얼굴도 잘 생겨 보이고, 몸매도 왠지 섹시해 보이고.
연옥 원래 멋있었잖아.
은지 (얼씨구) 옛날에는 그냥 신입사원이니까 귀엽게 봐준 거지.
연옥 ... 회사를 차렸으면 직원도 뽑겠지?
은지 뽑겠지, 그럼. 왜? 니 일자리 부탁해보려고?
연옥 맨날 아르바이트만 할 수는 없잖아?
은지 그런 데서 너같은 애를 쓰겠냐? 벤처회사라는데. 컴퓨터도
잘하고 그런 사람 쓰겠지.
연옥 ... 밑져야 본전인데, 한 번 가볼까?
은지 꿈깨라, 꿈깨. 어머, 참,
연옥 어, 깜짝이야.
은지 나 강만호 봤다?
연옥 뭐?
S #32 만호네 집
만호, 들어오는데
성기, 구석에 엎드려 있다.
만호 뭐해? 저녁 먹었어?
성기, 고개를 들어 만호를 보는데 얼굴은 엉망진창이고
눈에는 눈물이 어리어 있다.
성기 만호야, 나 좀 살려주라.
만호, 영문을 모르겠다.
S #33 패스트푸드점
연옥,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있다.
연옥 불고기세트 나왔습니다, 손님. 감사합니다. (계산대를
정리하며) 어서 오세요.
손님 치즈 버거 두 개하고, 콜라 두 잔이요.
연옥 (계산기를 두드리며) 치즈버거 두 개, 콜라 두 잔이요. 오천
육백원입니다, 손님.
매니저 이연옥씨 전화.
연옥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손님.
연옥, 눈치를 보며 전화를 받으러 간다.
연옥 여보세요. ... (놀란다) ...어머, 안녕하세요.
S #34 야외 카페
연옥, 만호를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만호를 발견하고 다가간다.
연옥 안녕하세요?
만호 (일어나며) 안녕. 앉아요.
연옥 (앉으며) 나오셨단 얘긴 들었어요.
만호 그래요?
연옥 근데 무슨 일로.
이때 성기가 아이스크림 세 개를 사들고 자리로 온다.
성기 (반갑게) 미스리.
연옥, 미스리 소리에 놀라 돌아보다가 성기가 서 있자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만호를 돌아본다.
시간경과.세 사람, 아이스크림을 핥아먹고 있다.
성기 아버님이 화가 많이 나셨나 봐.
연옥 사장님 때문에 우리 집 조용할 날이 없어요.
성기 미안해. 내가 뭐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어?
연옥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전화를 해요? 시킨다고
전화하는 사람이나.
만호 나도 연옥씨 한 번 만나고 싶었어요.
연옥 왜요?
만호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요.
연옥 강만호씨가 왜 궁금해요?
만호 글쎄요, 궁금하더라구요.
연옥 ...
성기 아르바이트 힘들지? 미스리도 나이가 있는데 이제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 되지 않겠어? 우리 옛날에 환상의
콤비였잖아.
연옥 (기가 막히다) 빚쟁이 따돌리는 콤비요?
성기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연옥 사장님하곤 절대로 일 안 해요. 그러니까 다시 끌어들일
생각은 마세요.
성기 내가 지금 구상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말이야,
연옥 (다 알고 있다는 듯) 몇 억짜린데요?
성기 칠백억.
연옥 (어이가 없어 말이 안나온다) 허, 차.
성기 이번엔 멤버가 확실해. 물주 빵빵하고, 영업사원, 채권회수팀
전부 대한민국 최정예 요원이야.
연옥 됐어요.
성기 내가 미스리한테 줄 돈이 있지?
연옥 필요 없어요. 사장님 가지세요. (일어나는데)
성기 당장 준다니까!
연옥 (솔깃해서 본다)
성기 월급 얼마면 되겠어? 백? 이백?
연옥 이백?
성기 오케이. 이백.
연옥 (다시 앉는다)
만호 (기가 막히다)
성기 자, 인사하지. 영업사원 강만호.
만호, 기가 막혀 성기를 보는데 성기, 연옥이 눈치채지 않게 눈을 찡끗거린다.
연옥 강만호씨도 같이 일해요?
성기 (만호가 뭐라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자, 얘기 끝났으니까
우리 어디 가서 저녁이나 먹지. 가자고.
성기, 만호를 막 밀고 간다.
연옥 이백?
연옥, 성기를 놓칠세라 부지런히 쫓아간다.
S #35 중국집
허름하지만 역사와 전통이 있는 듯한 중국집.
중국풍의 그림과 빨간 글씨들이 굉장히 중국집 답다.
보스, 대협과 총련을 옆에 세워두고 혼자 테이블에 앉아 있다.
테이블에는 2 인분의 식탁이 세팅되어 있고 의자도 두 개 밖에 없다.
성기, 만호와 연옥을 데리고 들어온다.
만호, 무심코 성기를 따라 들어오다가 보스 일행을 보고
기분 나쁜 얼굴로 그 자리에 서서
성기를 노려보고 연옥도 깜짝 놀라 선다.
성기 아, 회장님.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만호야, 미스리. 앉아.
성기, 자리에 앉으려다가 의자가 하나 밖에 없자 당황한다.
성기 자리가 좁겠는데요? 넓은 데로 옮기시죠, 회장님.
보스, 성기를 기분 나쁜 얼굴로 노려본다.
S #36 같은 식당의 넓은 테이블
상판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넓은 회전 테이블에
보스일행과 만호일행이 빙 둘러 앉아 있다.
보스 (연옥에게) 그 날 우리랑 같이 있다가 잡혀가서 욕 봤잖아.
연옥 ...
보스 내가 사무실 주인으로서 미안한 마음에 밥 사는 거니까 너무
부담 갖지마.
연옥 ... 네.
보스 (만호에게) 잘 생각했어. 박사장 사업도 내가 보기엔 괜찮은
사업이야.
만호 ...
보스 (성기에게) 그런데 이 인원이 내 사무실에서 다 근무할 수
있을까?
성기 무리죠.
보스 그럼?
성기 어차피 영업팀 사무실이 하나 있어야 됩니다.
보스 그래?
성기 우리 미스리하고 만호, 그리고 제가 일할 공간이죠.
보스 미스리까지?
성기 예.
보스 그렇게 크지 않아도 되겠지?
성기 예.
보스 (아깝지만) 그럼, 한부장 ... 적당한 걸로 하나 얻어줘.
대협 예, 회장님.
성기 감사합니다, 회장님.
S #37 이크레딧 사무실
허과장의 자리에는 산더미같이 서류들이 쌓여 있고
허과장, 초췌한 얼굴로 파김치가 되어 서류사이에 묻혀 있다.
진상, 허과장의 자리로 다가온다.
진상 과장님.
허과장 어.
진상 초대장 발송했습니까?
허과장 아직.
진상 명단 좀 볼까요?
허과장, 서류더미 속에서 명단을 찾아 진상에게 준다.
진상, 샤프하게 들여다보다가 얼굴이 탁 찌푸려진다.
진상 강만호한테도 보냅니까?
허과장 현미래씨가..
진상 빼세요.
허과장 (혼잣말로) 장난하나?
진상 뭐라구요?
허과장 아, 아니야.
진상 부탁이 있는데요. 앞으로 신입사원도 들어올 거고 외부
사람들도 많이 드나들텐데 호칭과 어법에 신경 좀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허과장 (기분 더럽지만) ... 그, 그러죠.
이때 유리문이 열리고 현회장, 들어온다.
진상 오셨습니까, 회장님.
현회장 오프닝 세레모니 준비는 잘돼 가나?
진상 예.
현회장 (둘러보다가) 사무실은 어때? 맘에 들어?
진상 예.
현회장 좁으면 한 층 더 써도 돼. 내보내면 되니까.
진상 아닙니다. 충분합니다.
현회장 옹색하게 살지 마. 사업도 폼나게 해야 돈이 되는 거야. 한푼
두 푼 모아서 언제 부자 돼? 빨랑빨랑 벌리고, 크게 한 탕
해서 불리고, 또 뻥튀기하고, 그게 사업이야. 알아?
진상 예, 알겠습니다.
현회장 요새 벤천가 하는 것도 대충 그런 거 아냐?
진상 ... 예.
현회장 난 밀 땐 확실하게 밀어. 하지만 아니다 싶으면 가차없이
자르지. 명심하라구.
진상 예, 명심하겠습니다.
현회장 필요한 거 있으면 그때그때 얘기하고.
현회장, 괜히 사무실을 한 번 더 둘러보고 돌아서 나간다.
S #38 만호네 집 앞 (밤)
만호, 계단을 올라와 문을 여는데 문 사이에서 편지가 툭 떨어진다.
만호, 뜯어보면 초대장이 들어있다.
집 안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만호, 급히 안으로 들어간다.
S #39 술집 (밤)
만호와 미래.
S #40 만호네 집
만호, 화장실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
만호, 신문을 뒤적이다가 '에이스 카드 벤처 창업의 새로운 모델 제시' 라는
헤드라인에 눈길이 멈춘다.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전도유망한 벤처 사장으로-
-에이스 카드 최진상 인터뷰- 등등
소제목과 내용을 대강 훑어보던 만호,
e-credit이라는 말이 나오자 깜짝 놀라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S #41 대회의실
오프닝 세레모니가 열리고 있는 대회의실.
현회장과 이사들, 샤넬정을 비롯하여 미래, 그 외 영업 팀 직원들, 기타 등등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얘기를 하고 있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 여기저기서 후레쉬를 터트린다.
허과장, 억지 웃음을 지으며 입구에서
보도 자료와 안내문을 담은 봉투를 나눠주고 있다.
진상, 중앙에서 참석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진상 오늘 바쁘신 가운데 이렇게 참석해주신 내외 귀빈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제 아이디어의 진가를
혜안으로 가려내 뽑아 주신 에이스카드의 심사위원님들과 제
아이디어가 구체화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현회장님께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회사로 키워내는 것만이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동, 박수.
진상, 인사하고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들다가
마침 문으로 들어서던 만호와 눈이 마주친다.
두 사람, 눈에 불꽃이 튄다.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