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회

S #1 회의실

 

고급스럽게 인테리어가 된 회의실.

만호, 자기가 일하는 곳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위축된 얼굴로 둘러보고

있는데 샤프하게 생긴 감사과 직원이 안으로 들어온다.

 

직원 강만호씨?

만호 (일어나며) 네.

직원 오래 기다리셨죠?

만호 네.

직원 난 회장실 직속 태스크포스 팀장이예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직원, 악수를 청하면 만호, 어리둥절한 얼굴로 손을 내민다.

 

직원 (만호의 맞은 편에 앉으며) 앉아요.

만호 (앉는다)

직원 놀랐죠?

만호 예, 조금...

직원 우리가 이번 프로젝트를 워낙 극비리에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방법으로 모셔왔으니까 양해하세요.

만호 ...

직원 몇 가지 질문을 좀 하겠습니다. (노트를 편다)

만호 근데, 무슨 일입니까?

직원 아, 중요한 걸 얘기 안했네요.우리 팀에 결원이 생겨서

인재를 한 명 찾고 있는 중입니다.

만호 인재요? 근데 왜 저를...

직원 입사할 때부터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만호 저를요?

직원 예.

 

만호, 좀 뜻밖이긴 하지만 기분은 좋다.

 

만호 그럼... 질문하시죠.

직원 가맹점 영업은 할 만 합니까?

만호 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직원 직원들하고의 관계는 어때요?

만호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직원 특별히 사이가 안 좋다거나 하는 사람 있습니까?

만호 ... 없습니다.

직원 애인 있어요?

만호 (진지하게 생각하다가) ...지금은 없습니다.

직원 혹시 증권 투자 해 본 적 있어요?

만호 아뇨.

직원 전혀? 한번도?

만호 ... 예.

직원 그럼, 경마는요?

만호 안 해 봤습니다.

직원 그래요? 내기는 좋아하죠?

만호 어떤 내기요?

직원 뭐든지. 당구나 카드 같은 거.

만호 좋아합니다.

직원 술은 어느 정도 해요?

만호 소주 한 병 정도.

직원 컴퓨터는 잘 하시죠?

만호 잘 한다기보다는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직원 잘 해야 되는데?

만호 어느 정도 합니다.

직원 아버님은 언제 돌아가셨어요?

만호 중학교 때요.

직원 어머니하고는 연락 있습니까?

 

만호, 예상 밖의 질문에 얼굴이 굳는다.

 

직원 아, 이상하게 생각할 거 없어요. 우리가 먼저 기본적인 조사는

했습니다만 서로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니까요.

만호 ...

직원 연락 있습니까?

만호 ... 아뇨.

 

회장실 직속의 태스크포스 팀장으로부터

비밀면접을 받는다는 생각에 들떠 있던 만호,

점점 질문이 이상한 쪽으로 전개되자 기분이 왠지 찝찝해진다.

 

직원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습니까?

만호 별로 없습니다..

직원 동생 데리고 월세방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걸로 아는데.

만호 집세 내고 밥 먹고 사는 데는 어려움 없습니다.

직원 전과 있죠?

만호 ...

직원 폭력전과.

만호 ... 네.

직원 싸움 잘해요?

만호 (보다가) 싸움 잘하는 인재를 찾고 있는 겁니까?

직원 아, 그런 건 아닙니다. 혹시 다른 카드사에 아는 사람 있어요?

만호 아뇨.

직원 친구라든가, 친척이라든가.

만호 없습니다.

 

만호, 면담이 진행되는 동안 점점 기분이 나빠져 상대방을 빤히 바라본다.

 

S #2 사무실

 

만호, 사무실로 들어서는데

누군가 자기 책상에서 전화기를 만지고 있자 의아한 얼굴로 다가간다.

 

만호 뭡니까?

누군가 (당황한다) 예? 아, 저, 전화기가 고장났다 그래서요.

만호 그 전화기 멀쩡해요.

누군가 내선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요. 아, 다 됐습니다.

 

누군가,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만호, 자리에 앉으며 생각할수록 기분이 더러운지 한숨을 푹 내쉰다.

 

만호 (혼잣말로) 차, 비밀프로젝트? 놀고 있네.

진상 (만호의 기색을 살피다가) 어디 갔다 오냐?

만호 왜?

진상 아니, 무슨 일 있나 하고.

만호 나한테 무슨 일 있었으면 좋겠냐?

진상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픽 웃는다) 관두자.

 

진상, 차 키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간다.

만호, 나가는 진상을 못마땅한 얼굴로 보다가

문득 생각이 나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대 보고 다시 내려놓는다.

 

S #3 고급 식당

 

진상, 부티나는 친구들과 밥을 먹고 있다.

 

친구1 미니멈 오십?

친구2 그 정도면 괜찮은 조건 아냐?

친구1 믿을만해?

친구2 그 바닥에서 신용 없으면 못 버텨.

진상 아버지 병원은 잘 되냐?

친구1 (느닷없는 질문에) 응? ... 응... 오십프로 정도면 뮤추얼

펀드가 낫지 않아?

친구2 뮤추얼 펀드 박살났잖아.

친구1 주특기가 뭔데?

친구2 선물.

진상 (친구2에게) 아버님은 좀 어떠시냐? 신문 보니까 미국 가서

치료 받으신다면서?

친구2 (건성으로) 어, 괜찮아. 장 한참 좋을 땐 6개월에 300도

만들었어.

친구1 그건 장 좋을 때 얘기지. 요새 같은 장에서 그게 되냐?

수수료는?

친구2 십이지, 뭐. (그제서야 진상에게 시선을 돌리고) 너도

주식하지?

진상 응.

친구2 재미 좀 봤냐?

진상 그렇지, 뭐.

친구1 얜 머리가 좋아서 웬만한 펀드 매니저보다 나아.

진상 (머리 한 번 넘기고 여유 있게 웃으며) 차, 낫기는?

친구2 그래? 얼마나 벌었는데?

진상 최근에 한 이백.

친구들 (설마하는 얼굴로) 이백?

진상 (잘난 척하며) 통신주 한 십만원할 때 백주 잡아서 십이만원

상한가 칠 때 얼른 뺐지.

 

친구1,2,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헷갈려한다.

 

친구2 ... (겨우? 하는 얼굴로) 이백만원?

진상 (갑자기 쪽팔리다) 응.

친구1 한 구좌가 얼만데?

친구2 오천.

 

진상, 오천이란 소리에 깜짝 놀라는데

 

친구1 그럼 먼저 한 열 구좌만 터볼까?

친구2 (진상에게) 너도 골치 아프게 직접하지 말고 여기다

투자하지 그래?

진상 (씁쓸한 속마음을 티내지 않으려 애쓰며) 나 같은

봉급쟁이가 무슨.

 

이때, 미래와 현회장, 새엄마(샤넬 정)가

진상일행의 테이블 뒤를 지나 입구 쪽으로 간다.

 

친구2 쟤, 미래 아냐?

친구1 누구?

 

진상, 미래란 소리에 얼른 돌아본다.

 

친구2 몰라? 현회장 딸. 우리 클럽 멤버잖아.

친구1 그래?

친구2 (진상에게) 참, 니네 회사 다니지?

진상 응.

친구1 그래? 그럼, 옆에 있는 여잔 언니야?

친구2 (작은 소리로) 얼마 전에 재혼했잖아.

친구1 그래?

 

진상,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미래

일행의 뒷모습을 보기 위해 다시 고개를 돌린다.

 

S #4 식당 앞

 

현회장의 차가 현관 앞에 대기하고 있다.

기사, 현회장이 나오자 얼른 뒷자리의 문을 열어준다.

 

현회장 (미래에게) 타.

미래 됐어요. 먼저 가세요.

현회장 회사 들어갈 거 아냐?

샤넬정 (상냥하게) 타고 가지 그래? 차 안 갖고 왔다면서?

미래 (현회장에게) 근처에 들를 데가 있어요.

샤넬정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며) 어으, 뜨거워.

현회장 당신 얼굴 기미 끼겠다. 얼른 타.

샤넬정 그럼, 나 먼저 탈께요. (차에 탄다)

 

미래, 속이 느글거린다.

 

미래 다음부터 두 분이 식사하실 땐 저 부르지 마세요, 끄윽.

현회장 너, 언제까지 그럴래?

미래 오늘도 체했잖아요, 끄윽.

현회장 (미래를 잠시 보다가) 집에서 보자.

 

현회장, 차에 타 떠나고

미래, 가는 현회장의 차를 노려본다.

 

S #5 미용실

 

미래, 맛사지실의 긴 의자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데 미용사가 들어온다.

 

미용사 아유, 오랜만에 오셨네요. 이게 얼마만이예요?

미래 (누운 채) 안녕하셨어요?

미용사 사모님 돌아가시고 처음이죠?

미래 ...

미용사 사모님 계실 땐 모녀분이 나란히 자주 오시더니. 아유,

얼굴이 많이 상했네. 뭐 속 상한 일 있어요?

미래 피곤하니까 빨리 해 주세요. 마사지 끝나고 좀 쉬었다

갈께요.

미용사 알았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나가며) 미스김, 마사지 준비

빨리 해라.

 

미용사가 나가고 미래의 감은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미래, 눈물을 가리려는 듯 팔을 이마에 올려놓는데

걷잡을 수 없이 울음이 나온다.

미래, 그대로 누운 채 소리를 죽여 운다.

 

S #6 라면집

 

건물 지하에 있는 조그만 매점 겸 라면집.

에어콘도 없이 선풍기 한 대가 벽에서 돌고 있고

주방 안에선 가스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연옥과 은지, 땀을 뻘뻘 흘리며 라면과 김밥을 먹고 있다.

두 사람, 하나 남은 김밥을 놓고 젓가락으로 다투다가 은지가 먹어버린다.

 

은지 그렇게 비싼 돈 내고 뭐하러 다니냐? 집에서 보태주지도

않는다면서.

연옥 남이야.

은지 너, 대학 졸업장 들고 무슨 신분 상승해볼라 그러냐?

연옥 (기가 막혀 웃는다)

은지 꿈깨. 너, 그렇게 힘들게 등록금 벌어다 바쳐봐야 학교

재단만 부자 만들어 주는 거야.너, 영문과라 그랬지?

설계사가 영어 못한다고 회원 가입 안하디? 영어 몰라도 다

먹고 살 수 있어.

연옥 쓸 데 없는 소리하지 말고 너 돈 모아 놓은 거 있으면 나

백만원만 꿔 주라.

은지 백만원? 내가 그런 돈이 어디 있냐? 나도 화장품 사고

밥값하고 차비 빼고 나면 철 따라 옷 한 벌 사 입기도

빠듯해.

연옥 (한숨을 푹 내쉰다)

은지 참, 너, 전에 그 사기꾼한테 못 받은 월급 있다며? 그거

받아내.

연옥 나도 그 생각 안 해본 거 아닌데 어디 있는 줄 알아야

받아내지.

 

이때 만호가 안으로 들어온다..

 

만호 아줌마! 여기 라면 한 개하고 김밥 한 줄이요.

 

은지, 만호가 식당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테이블 밑으로

연옥의 발을 툭툭 차며

눈짓을 하다가 자리에 앉으려던 만호와 눈이 마주친다.

 

은지 지금 식사하세요?

만호 아, 예.

 

연옥, 슬쩍 돌아보는데 만호가 앉아있자 슥 외면한다.

 

은지 근데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연옥이만 도와주고, 두

사람끼리만 저녁 먹고.

만호 예?

은지 비빔밥 드셨다면서요?

 

연옥, 너무 당황하여 테이블 밑으로 은지의 다리를 찬다.

 

만호 예? ... 아, 예.

은지 다음엔 저도 한 번 도와주세요.

만호 예, 그러죠.

 

연옥, 얼굴이 화끈거려 얼른 화제를 돌린다.

 

연옥 아, 저기요, 혹시 박성기 사장님한테 연락 왔어요?

만호 예.

연옥 (갑자기 반갑다) 만났어요?

만호 예.

연옥 그럼, 지금 혹시 어디 있는지 아세요?

만호 예.

은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연옥에게) 다행이다..

만호 근데 무슨 일 때문에 그래요?

 

S #7 보스 사무실

 

대협, 박스를 한 아름 안고 땀을 뻘뻘 흘리며 엉덩이로 문을 밀고 들어온다.

한쪽 구석에는 이미 만호네 집에서 옮겨 온

성기의 건강식품 박스들이 쌓여 있다.

대협, 박스들 위에 들고 온 박스를 올려놓는데

 

성기 어, 전부장. 그건 저 쪽에 쌓아둬. 보면 모르나? 그건 종류가

다르잖아?

 

대협, 살벌하게 성기를 노려보지만

성기, 대협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무실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소파에 털썩 앉아 보며 쿠션을 가늠해본다.

 

성기 한과장은 어디 간 거야? 이런 날 한과장이 있어야 되는데,

안 그래, 전부장?

 

박스를 내려놓고 땀을 닦던 대협, 부들부들 떨며 성기를 노려보지만

성기는 여전히 대협의 반응에 무관심하다.

 

성기 책상도 하나 들여놔야겠는데요, 회장님?

보스 대충 있는 거 써. 헛돈들이지 말고.

 

성기, 머쓱해 하다가 갑자기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낸다.

 

성기 전부장, 다 됐나?

대협 (이를 부드득 간다)

성기 오늘 고생했으니까 이거 한 숟갈 먹고 힘내. 회장님, 이거 한

번 드셔보시죠.이게 말입니다, 인체 필수 아미노산

열세가지가,

 

이때 노크소리에 이어 문이 열리고 웬 남자가 얼굴을 빼꼼 내민다.

 

대협 누구세요?

남자 여기가 깡해주는 데 맞나요?

대협 아, 들어오시죠.

 

이때 전화벨.

 

성기 여보세요?

 

S #8 감청실

 

녹음기 몇 대가 돌고 있고 감청 요원들이 만호의 전화 내용을 엿듣고 있다.

 

만호 (소리) 떼어먹을 돈이 따로 있지. 그런 돈을 떼어 먹냐?

성기 (소리) 미스리 그렇게 안봤는데 정말 이상한 미스리네?

그런걸 밖에서 얘기하고 다니면 어떡하겠다는 거야? 그래서

나 어디 있는지 가르쳐줬냐?

만호 (소리) 그래.

성기 (소리) 어으, 미치겠네. 아, 그리고 학교에서 연락 왔다. 이번

주말까지 등교 안하면 제적처리한대.

만호 (소리) 걔는 아직 연락 없어?

성기 (소리) 없어.

만호 (소리) 알았어. 학교엔 내가 직접 연락할께.

 

요원, 중요한 단어들을 적는다. 미스리 학교, 등교, 제적. 등등

요원, 미스리에 막 동그라미를 친다.

 

S #9 중역 회의실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회의실. 담배연기가 자욱하다.

긴급 소집된 중역들과 장차장, 허과장, 만호를 면담했던

감사과 직원이 앉아 있다.

 

직원 학교는 스타카드를 지칭하는 것 같고, 등교는 입금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화 중에 자주 등장하는

미스리라는 인물이 이번 사건의 배후로 보입니다. 따라서

먼저 미스리라는 암호명을 사용하는 인물이 누군지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섣불리 접근하면 오히려 증거를

인멸하고 도주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확실한 증거를 손에

넣을 때까지 치밀한 계획하에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장차장 아니, 이 이상 얼마나 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됩니까?

허과장 (장차장을 싸늘하게 노려보다가) 도대체 뭐가 확실하다는

겁니까?

장차장 정황증거라는 게 있잖아요?

허과장 제가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강만호란 사람이 그럴 사람도

아니고 또 중앙컴퓨터의 보안 시스템을 뚫고 서류를 빼낼 수

있을 만한 실력도 안됩니다.

장차장 그런 건 얼마든지 위장할 수 있어요.

 

허과장, 장차장을 짝 노려보면

장차장도 지지 않고 허과장을 노려본다.

 

직원 어쨌든 이번 일은 우리 감사과의 명예를 걸고 끝까지

파헤치도록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은

그때까지 보안을 철저하게 유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차장과 허과장에게) 특히 두 분은 강만호가 눈치채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 주시기 바랍니다.

 

S #10 화장실

 

장차장과 허과장, 나란히 서서 소변을 보고 있다.

 

장차장 그런 식으로 회의에서 날 묵사발을 만들어도 되는 겁니까?

허과장 그럼, 확실치도 않은 일 갖고 부하직원을 궁지에 모는 건 잘하는

짓입니까? 그게 부서장이 할 짓이에요? (바지 지퍼를 찍

올리고 세면대로 간다)

장차장 뭐요? 짓? (지퍼를 찍 올리고) 허과장! 말 조심하세요! (세면대로

간다)

허과장 (손을 닦으며) 지금 제휴 깨진 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닙니까! 책임

모면하려고 괜히 사건이나 확대시키고,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닙니다. (손을 탈탈 턴다)

장차장 (허과장이 뿌려대는 물을 피하며) 뭐?

허과장 남의 인생 짓밟고 그렇게 출세해서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장차장 이 자식이 정말! 너, 말 다했어?

 

장차장, 허과장의 멱살을 틀어쥐면 허과장, 같이 멱살을 쥔다.

 

허과장 뭐? 이 자식? 나이도 어린 게 차장이라고 꼬박꼬박 존대해 주니까,

뭐? 자식? 너, 죽을래?

 

장차장과 허과장, 서로 멱살을 잡고 버티다가

문이 열리고 만호가 들어오자 얼른 멱살을 풀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만호, 심상치 않은 두 사람의 태도에 의아해한다.

 

S #11 사무실 (밤)

 

진상, 자리에서 책상을 정리하며 김대리,

오대리가 퇴근준비를 하며 나누는 얘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대리 스파이? 그게 정말이야?

김대리 지금 감사과에서 극비리에 내사를 하고 있대.

미스심 스파이가 누구래요?

 

허과장, 들어와 역시 퇴근즌비를 한다.

 

김대리 용의자가 있긴 있는데 아직 결정적인 증거를 못 찾았대.아무튼 이번

제휴건 깨진 것도 그 스파이 때문이라던데?

오대리 그래? 도대체 어떤 자식이 그런 짓을 했을까?

허과장 쓸 데 없는 소리들 하지 말고 일없으면 퇴근들 해. 현미래는?

김대리 아직.

허과장 잘 되가는 집안이다, 잘 되가는 집안이야. 전화도 없어?

김대리 예. 저, 그럼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진상, 오대리, 미스심, 김대리,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무실을 나간다.

 

김대리 (나가며) 강만호씬 안 가?

만호 먼저 들어가세요. 좀 있다 갈께요.

 

만호,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데

가방을 들고 나가려던 허과장, 슬그머니 다가와 만호의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허과장 뭘 그렇게 열심히 해?

만호 벤처기획안 좀 마무리하느라구요.

허과장 벌써?

만호 별 건 아닌데요, 연수받을 때부터 생각해 오던 게

있었거든요.

허과장 오..그래? 강만호씨 보기하고 다른 사람이네? 어디 좀 봐.

만호 (모니터를 가리며) 다 되면 보여드릴께요.

허과장 왜? 내가 가로챌까봐?

만호 에이, 그런 건 아니구요.

허과장 다른 건 뭐 없어? 아이디어 있으면 나 하나만 줘. 난 머리가

굳어 가지고 말이야.

만호 이거 정리해 놓고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허과장 약속한 거야?

만호 예.

허과장 (잠시 뜸을 들이다가) 에... 저기 말이야.

만호 예?

허과장 아냐, 내일 보자고.

만호 예, 안녕히 가세요.

허과장 (나가려다가) 저기... 너무 밤늦게 사무실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만호 무슨 오해요?

허과장 아니, 뭐, 그러니까...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온다던가, 뭐,

그런..

만호 곧 들어갈 겁니다.

허과장 어, 그래. 수고해..

 

허과장, 나간다.

만호, 텅 빈 사무실에 혼자 남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가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고개를 돌리는데

그림자 하나가 샥 지나간다.

만호, 의아한 생각에 문까지 가 밖을 내다보지만 아무도 없다.

만호, 웬지 찝찝한 기분에 컴퓨터를 끄고 밖으로 나가려다가

미래의 책상을 보는데 책상 위에 출입카드가 놓여 있고

핸드백과 겉옷도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불을 끄고 나간다.

 

S #12 엘리베이터 안 (밤)

 

만호,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잠시후 문이 열리면 밖에 서 있던 미래와 눈이 마주친다.

 

만호 (내리며) 어디 갔다 와요?

미래 (대꾸없이 탄다)

만호 오후 내내 안보이던데?

미래 내가 없어서 안되는 일 있었어요?

 

미래,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엘리베이터 문 닫힌다.

 

S #13 로비 (밤)

 

만호,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웃으며 몇 걸음 걷다가

문득 미래가 출입카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돌아본다.

 

S #14 사무실 앞 복도 (밤)

 

미래, 불 꺼진 사무실을 들여다보며 난감해하고 있다.

 

미래 어으, 오늘따라 왜 다들 일찍 퇴근한 거야?

 

미래, 짜증내며 돌아서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만호가 내린다.

 

만호 (출입카드를 꺼내 들어보이며) 이거 없죠?

 

만호, 출입카드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켜준다.

 

미래 (쌀쌀맞게) 고마워요. (안으로 들어간다)

 

S #15 사무실 (밤)

 

미래, 핸드백과 옷등을 챙겨 돌아서는데 만호,

스위치 옆에서 기다리고 서 있다가

미래가 나가자 불을 끄고 따라나간다.

미래, 만호가 왜 이러나 싶다.

 

S #16 다시 복도 (밤)

 

두사람, 엘리베이터 앞에 말없이 서 있다가 문이 열리면

동시에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서로 어깨를 부닥친다.

 

S #17 엘리베이터 안 (밤)

 

두 사람, 앞만 보고 말없이 서 있다.

 

미래 (만호를 보지도 않고) ... 끝까지 사과 안 할 거예요?

만호 ... 뭘요?

미래 무례하고 몰상식한 데다가 머리까지 나쁘시군요?

만호 ... (픽 웃으며) 뭐요?

미래 (잘난 척하며) 잘난 척이에요, 아니면 열등감이에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자존심 상해요?

만호 내가 왜 미래씨한테 사과해야 되죠?

미래 (기가 막혀 본다)

만호 (보는 미래를 외면하며) 피차 모욕감을 느낀 건 마찬가지

아니었어요?

미래 (열 받는다) 아니, 그 일하고 그 일이 어떻게 같아요?

(얘기하면서도 열받아 말이 잘 안된다) 난, 정말로,

강만호씨가 옷도 버리고, 나 때문에, 시간 날린 게 미안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그런 거예요. 근데 강만호씬 나한테 어떻게

했죠? 날 완전히 이상한 여자 취급했잖아요. 내가 이날 이

때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모욕은 정말 처, 처, 처음이었어요.

만호 그 정도였다면 사과할께요.

 

미래, 만호가 너무 쉽게 사과해버리자 허무하다.

 

미래 (씩씩거리다가) ... 사과하면 다예요?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만호 그럼, 제가 저녁을 사죠. 됐죠?

 

만호, 내리는데 미래, 내릴까말까 망설인다.

만호, 문이 닫히려 하자 얼른 한 발을 엘리베이터 안으로 딛으며

미래의 손목을 잡아 홱 끌어당긴다.

 

미래 어머!

 

미래, 못 이기는 척 끌려간다.

 

S #18 식당 (밤)

 

겉보기에 허름하고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식당.

미래, 별로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만호 앞에 앉아 있고

식탁 가운데에는 뚝배기에 담긴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아줌마가 밑반찬들과 밥공기를 두 사람 앞에 내려놓고 돌아간다.

 

만호 (숟가락을 들며) 들어 봐요. 이 집이 말이죠, 된장이

진짜예요.

미래 (별 관심 없다) 아, 네.

만호 어릴 때 어머니가 해 주시던 된장찌개가 생각나면 가끔 이

집에 와요.

미래 왜요? 요즘은 안해주세요?

만호 ...(입안에 있는 밥을 씹어 넘기고) 지금은 안계세요.

미래 돌아가셨어요?

만호 ... 그런 건 아니구요...

미래 ... (더 묻지 않고 된장찌개를 떠서 맛을 보고 밥에 비벼 먹기

시작한다) 형제가 어떻게 되세요?

만호 둘이요. 동생이 하나 있어요.

미래 남동생?

만호 네. 미래씨는요?

미래 전 혼자예요. 무남독녀.

 

만호, 열심히 먹으며 떠든다.

 

만호 그럴 줄 알았어요.

미래 어떻게요?

만호 느낌으로.

미래 느낌이 어떤데요?

만호 외로워 보여요.

미래 (뜻밖이다) 제가요?

만호 외로운 게 고독한 것만 외로움인줄 알아요? 자기현시욕으로

나타나는 것도 외로움이예요.

미래 자기 현시욕이요?

만호 어디서나 주목받고 싶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 보아주기를

원하고,

미래 ...

만호 누군가 자기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 땐 참지 못하고. 뭐,

그런 거.

미래 내가 그렇단 얘기예요?

만호 (입에 가득 물고 미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음, 음.

미래 (충격을 받고 당황하여 말문이 막힌다)

만호 왜 안 들어요? 맛없어요?

미래 아뇨, 맛있어요.

 

미래, 당황함을 감추려 찌개를 푹 퍼 밥에 넣고

쓱쓱 비벼 한 입 가득 떠 넣는다.

 

만호 된장찌개 좋아하나 봐요.

미래 (한 입 가득 넣고 말을 못한다) 음... 음...

 

S #19 게임방 (밤)

 

철호,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다.

사람들, 철호의 주변에서 철호의 컴퓨터를 들여다 보며

환호와 탄성을 지르고 있고

상대편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 우거지 상을 하고 있다.

 

S #20 게임방 비상계단 (밤)

 

철호,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만원짜리 지폐를 세고 일어나 뒷주머니에 꽂는데

게임방에서 우거지상을 하고 있던 불량배들이 계단 아래에 나타난다.

철호, 불량배들과 눈이 마주치자 후닥닥 계단 위로 튀어 도망간다.

 

S #21 만호네 집 근처 큰 길 (밤)

 

미래의 차가 길 가에 선다.

미래의 차 안.

 

만호 태워줘서 고마워요.

미래 저녁 잘 먹었어요.

만호 맛있었어요?

미래 네.

만호 내일 봐요.

 

만호, 차에서 내려 손을 흔들고 차 앞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미래, 출발하다가 만호의 옆에 끽 다시 선다.

만호, 놀라 보는데

 

미래 (차창을 내리고) 충고 고마워요.

만호 (창 쪽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뭐라구요?

미래 ... 안녕히 주무시라구요.

만호 미래씨도요.

 

미래, 만호에게 씩 웃어주고 붕 떠난다.

만호, 떠나는 미래의 차를 한참 보다가 씩 웃으며

휘파람을 불며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근처 게임방 입구에서

철호가 튀어나와 어디론가 막 달려가고 뒤이어 불량배들이 뛰어나와

철호의 뒤를 쫓아간다.만호, 철호의 노랑머리를 알아보고 막 뛰기 시작한다.

 

S #22 공터 (밤)

 

철호, 불량배들에게 잡혀 바닥에 쓰러져 있다.

 

불량1 (멱살을 잡아 일으키며) 짜샤, 그러게 좋은 말로 할 때

들었어야지. 내놔.

철호 싫어.

불량2 싫어? 이 자식, 이거 완전히 꼴통이잖아?

철호 내가 정정당당하게 딴 거야.

불량1 정정당당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우리 돈 따먹고 니가 이

동네에서 무사할 줄 알았냐? 빨리 안 내놔?

 

불량1, 금방이라도 내리칠 듯 주먹을 드는데 누군가 뒤에서 주먹을 잡는다.

 

불량1 뭐야, 이거?

 

불량1, 돌아보는데 만호, 다짜고짜 불량1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불량1 욱!

 

불량1, 코를 움켜쥐고 바닥에 웅크린다.

불량2가 뒤에서 덤벼들어 보지만 만호,

보지도 않고 가볍게 뒷발로 얼굴을 갈긴다.

철호, 깜짝 놀라 만호를 본다.

 

철호 형!

만호 너, 이 자식. 집에도 안 들어오고 어딜 싸돌아다니는 거야?

잘한다. 길바닥에서 이런 놈들한테 얻어터지기나 하고.

철호 (불량1,2가 전열을 가다듬고 만호의 뒤에서 공격을 해오는

것을 보고 놀라) 형!

 

만호, 철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양쪽에서 다가오는 불량1,2를 두 주먹으로 동시에

가격해 쓰러뜨린다.

 

만호 (철호에게) 가자.

 

만호, 돌아서서 가면

철호, 형의 실력에 놀라 반항할 생각도 못한 채 따라간다.

 

S #23 만호네 집 옥상 (밤)

 

성기, 소매없는 런닝과 반바지 팬티 차림으로 무술을 연마하고 있는데

만호, 철호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온다.

 

성기 (만호에게) 왔냐? (뒤따라 올라오는 철호를 보고) 오, 너도

왔냐? 내가 말이야, 새 사업도 시작하고 하니까

심기일전해서 뭔가 해 보려고,

 

두 형제, 성기를 보지도 않고 안으로 홱 들어가 버린다.

성기, 섭섭하다.

 

S #24 전산실

 

수많은 여직원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전표를 입력시키고 있다.

한 여직원, 뭔가 이상한지 몇 장의 전표들을 비교해보며 잠시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갸웃한다.

 

S #25 감시카메라실

 

장차장과 감사과 직원, 지하주차장을 찍은 감시카메라 녹화 테잎을 보고 있다.

 

장차장 (흥분된 목소리로) 저거다!

 

화면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보스의 차로 향하는 네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만호, 대협과 총련에 의해 보스의 차에 태워지고

보스, 차에 타기 전에 날카로운 눈초리로 주변을 돌아보다가

감시카메라를 노려본다.

 

S #26 사무실

 

감사과 직원 두 명이 만호의 책상과

서랍에 있던 물건들을 박스에 쓸어 담으며

컴퓨터 본체를 떼어내고 있고 미래, 오대리, 김대리, 미스심, 심란한 얼굴로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

짐을 다 챙긴 두 사람, 박스와 본체를 들고 홱 밖으로 나가는데 박스 위에

있던 서류 한 뭉치가 휙 날려 바닥에 툭 떨어진다.

두사람과 엇갈려 들어오던 진상, 얼른 서류를 집어들고 돌아서는데

두 사람, 벌써 문 밖으로 사라졌다.

진상, 서류를 슥 내려다보는데 겉장에 <벤처 기획안>이라고 씌여 있다.

진상의 눈빛이 빛난다.

 

S #27 문

 

감사과 팻말이 붙어 있다.

 

S #28 감사과 조사실

 

밀폐된 방안에 철제 책상 하나와 전화 한 대,

철제 접이 의자가 가구의 전부다.

만호, 태스크포스 팀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감사과

직원과 책상을 사이에 두고마주 앉아 있다.

직원, 전과는 완전히 돌변한 태도로

 

직원 얼마 받았어?

만호 글세, 난 모르는 일이라니까요?

직원 이거 봐. 강만호. 우리 쉽게 끝내자고. 순순히 협조하면 내

선에서 끝낼 수도 있어. 스타카드에서 돈 받은 거 맞지?

만호 그런 일 없습니다.

직원 입사한 지 얼마 안돼서 아직 내 소문 못들었을 거야. 참고로

말해주는데 나, 왕년에 반공투사 출신이야. 빨갱이 새끼들

때려잡는 사람.내 손에 걸린 놈 치고 성해서 나간 놈이

없었어. 그 때 내 별명이 뭐였는지 알아? (싸늘하게

노려보며) 남영동 물귀신이야. 그러니까 내 앞에서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하지 마. 다시 한 번 묻겠다. 얼마 받았어?

만호 ...

직원 강만호! 사회에서 너 같은 전과자들을 왜 안 받아 주는지 알아? 꼭

다시 사고를 치거든. 너처럼. 여자들도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엔 쉬워. 그거하고 똑같은 거야.

 

만호, 말없이 직원을 노려보는데

직원, 보스의 사진을 만호 앞에 탁 내려놓는다.

 

직원 너, 이 놈 알지?

만호 (흠칫 놀란다)

직원 나도 이해 못하는 거 아냐. 너, 어려운 살림에 사채 좀 얻어 썼다가

발목 잡혀 가지고 깡에도 손대고 정보도 팔아먹은 거, 나, 다

이해해.그럼, 이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니가 피해자라는 거

나 다 알아.자, 그러니까 이제 순순히 불어.

만호 뭘 불라는 겁니까?

직원 너, 이새끼, 끝까지 버텨보겠다는 거야? 증거도 있고 증인도 있는데

니가 빠져나갈 수 있을 거 같애?

만호 증인이요?

직원 그래 , 임마. 너, 그날 사무실에서 최진상이 만났지? 세상에 완전

범죄는 없는 거야, 임마.

 

만호, 순간적으로 불 꺼진 사무실에서 자기를 보고 당황하던 진상의 얼굴과

술에 취해 여자와 호텔로 들어가던 진상의 모습이 떠오른다.

만호, 기가 막혀 웃는다.

 

직원 웃어? 어으, 이런 새끼들은 그냥 칠성판에 딱 눕혀서! 어흐!

옛날이 그립다.

 

만호, 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린다.

 

직원 야! 너, 어디 가? 야! (쫓아나간다)

 

S #29 사무실

 

만호, 문을 거칠게 열고 안으로 들어온다.

직원들, 깜짝 놀라는데

만호, 다짜고짜 진상의 멱살을 잡아 일으킨다.

 

만호 나와, 이 자식아!

진상 (당황하여) 왜 이래? 이거 안놔!

 

만호, 완력으로 진상을 끌고 나가고 직원들, 놀라 말릴 엄두도 못낸다.

미래, 걱정스런 얼굴로 만호를 본다.

 

S #30 회의실

 

만호, 진상을 끌고 들어와 확 집어던지고 문을 잠근다.

 

진상 (긴장) 야, 너, 왜 이래?

만호 (무섭게 보다가) 너지?

진상 뭐가?

만호 그래, 얼마나 받았냐?

진상 무슨 소리하는 거야, 지금?

만호 몰라서 물어!

진상 ...

만호 돈이 그렇게 좋으냐?

진상 지금 나한테 덮어씌우겠다는 거야?

만호 (기가 막혀) 덮어 씌워? 덮어 씌워?

 

만호, 더 이상 못 참고 진상을 갈긴다.

진상, 나가떨어진다.

 

진상 (벌떡 일어나며) 이 자식이!

만호 그래. 덤벼. 그렇게 덤벼, 이 자식아. 사내답게.

 

진상, 움찔 선다.

 

만호 왜? 정면에선 겁나냐? 그래서 이런 식으로 뒤통수치는 거야?

 

이때 문 밖에서 사람들이 문고리를 흔들며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 이 안에 있다니까.

소리 강만호씨, 문열어.

소리 열쇠 좀 찾아와 봐.

 

진상,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힘을 얻는다.

 

만호 너, 내 인생 끝장내겠다 그랬지? 이게 그거냐? 니가 나,

싫어하는 만큼 나도 너 싫어. 아니, 너보다는 내가 훨씬 더

널 싫어할 거야.

우리 아버지, 결국 니네 아버지 때문에 돌아가신 거고, 우리 엄마, 니네 아버지

첩 됐으니까.니네 아버지 생각하면 나도 너, 죽여 버리고

싶어.

진상 내가 너한테 뭘 어떻게 했다고 이러는 거야?

만호 너하고 긴말하고 싶지 않다. 내 입으로 말하기 전에 니가

해결해.

진상 뭘 해결해? 니가 한 짓인데.

만호 ... 뭐?

진상 내가 했다는 증거 있어?

 

진상, 돌아서서 얼른 문으로 가는데

만호, 진상의 어깨를 홱 잡아 돌려 사정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한다.

문이 확 열리고 사람들, 우르르 몰려들어 만호를 진상에게서 떼어내고

그 와중에 만호의 손에 수갑이 채워진다. .

만호, 끌려가며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는 진상을 분노에 찬 눈으로 돌아보는데

진상, 입가의 피를 훔쳐내다가 만호와 눈이 마주치자

입가에 야비한 미소가 떠오른다.

 

S #31 복도

 

미래, 사무실을 나와 회의실 쪽으로 막 달려가다가

형사들에게 끌려나오는 만호와 마주친다.

만호, 미래에게 뭔가 말할 것처럼 미래의 눈을 뚫어져라 보고

미래, 그 자리에 굳은 채 만호를 안타까운 눈으로 본다.

 

S #32 보스 사무실이 있는 건물

 

연옥, 건물을 올려다보고 안으로 들어간다.

 

S #33 보스 사무실

 

보스와 대협, 총련, 자장면을 먹고 있는데 노크소리 들린다.

 

대협 예.

 

문이 열리고 연옥이 들어온다.

 

연옥 저기...

 

대협과 총련은 문을 등지고 자장면을 먹느라 연옥과 얼굴이 마주치지 않고

문을 향해 앉아 있던 보스가 연옥을 보고 한 눈에 반한다.

보스, 얼른 입가에 묻은 자장을 손등으로 슥 닦아낸다.

 

연옥 (구석에 쌓인 건강식품 박스들을 보며) 여기가 박성기씨

사무실 맞죠?

 

대협과 총련, 연옥의 목소리가 귀에 익어

자장면 그릇을 든 채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돌아본다.

연옥, 대협과 총련의 얼굴을 알아보고 깜짝 놀란다.

 

대협 (무섭게) 아니, 이게 누구야?

 

연옥, 사색이 된다.

 

연옥 안녕하세요?

보스 누구야, 전부장?

대협 박사장이 데리고 있던 아가씹니다.

보스 그래?

연옥 사장님 안 계신가본데 다음에 다시 올께요. 안녕히 계세요.

보스 잠깐.

 

연옥, 나가려다가 굳는다.

보스, 자리에서 일어나 연옥에게 다가와 연옥의 주위를 맴돌며

찬찬히 훑어본다.

연옥, 긴장하여 어쩔줄 모르는데

 

보스 ... 박사장은 왜?

연옥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보스 앉지.

연옥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대협 앉으라면 앉아.

 

연옥, 잽싸게 앉는다.

대협과 총련, 계속 자장면을 먹다가 보스가 그 옆에서 서성대자

얼른 자장면 그릇을 들고 일어나 자리를 피한다.

보스, 연옥의 앞에 앉아 다시 찬찬히 연옥의 얼굴을 뜯어보기 시작한다.

연옥, 미치겠다.

 

연옥 ... 저... 사장님은 언제쯤 오실까요?

보스 곧 올 거야.

연옥 어디 가셨는데요?

보스 수금하러.

연옥 ... 저, 다음에 다시 오면 안될까요?

보스 왜? 바쁜가?

연옥 네, 좀.

보스 그래도 이왕 왔으니까 차라도 한 잔 하고 가.한과장, 차 좀

내와.

총련 무슨... 차요?

보스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꾹 참으며) 그런 거까지 내가

일일이 가르쳐줘야겠어?

 

대협과 총련, 어이가 없어 서로 얼굴을 돌아보고

상가 안내책자를 막 뒤져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총련 여보세요? 은방울 다방이죠? 여기 커피 네 잔만 갖다

주세요.

보스 네 잔?

 

대협, 총련을 쿡쿡 찌른다.

 

총련 아뇨, 두 잔. ... 여기요?

 

노크소리.

 

대협 네.

 

문이 벌컥 열리고 갑자기 경찰기동타격대가 들이닥친다.

 

보스 뭐야?

 

S #34 건물 앞

 

성기, 사무실로 돌아오다가 건물 앞에 경찰차가 서 있자

얼른 모퉁이에 숨어 건물 입구를살핀다.

잠시후 보스를 비롯하여 대협, 총련, 연옥이 줄줄이 묶여 나온다.

성기, 뭐가 뭔지 모르겠다.

 

S #35 연옥이네 집 (밤)

 

연옥의 아버지, 엄마, 지옥, 밥상에 둘러앉아 뉴스를 보고 있다.

 

아버지 얜, 오늘도 수업 있나?

엄마 방학 한지가 언젠데 수업이야?

아버지 그래? 방학했어?

엄마 에휴, 애비가 돼 가지고 딸네미가 방학을 했는지, 등록금은

제때 내는지, 관심이 없지, 관심이 없어.

아버지 내가 왜 관심이 없어? 내가 얼마나 관심이 많은데.

엄마 관심이 있어? 그래서 당장 다음 학기 등록 못하게 생긴 거

알아?

아버지 ...

지옥 언니는 맨날 직장 다닌다면서 그런 거 하나 해결 못해?

뭐하러 대학은 가 가지고. 아빠 난 대학 안 갈 거니까 걱정

마.

엄마 그래, 효녀 났다. 효녀 났어. 으이구, 속 터져. 그 놈의 돈은

다 어느 구석에 가서 자빠져 있는 거야? 평생을 쎄빠지게

벌면 뭐해? 안 먹고 안 쓰고 안 입고 아무리 아껴봐야 맨날

이 모양 이 꼴인데.

아버지 누가 아끼래? 옷도 사 입고 맛있는 것도 사 먹어.

엄마 돈이 있어야지, 돈이!

지옥 어! 언니다!

 

아버지와 엄마, 텔레비젼으로 눈을 돌린다.

보스의 사무실에서 보스와 대협, 총련, 연옥이 검거되는 장면이 나온다.

식구들, 말을 잊고 화면을 본다.

 

소리 경찰은 오늘 유령업소를 차려놓고 불법카드깡으로 거액의

돈을 사취한 혐의로 사채업자 정판돌씨와 행동대원 두명을

검거했습니다. 정씨는 카드회사 가맹점 담당 직원 뿐 아니라

설계사까지 동원하여 조직적으로 대량의 가짜전표를

유통시킨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S #36 진상이네 집 (밤)

 

TV에서 같은 뉴스가 나오고 있지만

진상, 샤워를 마치고 나와 로션을 바르며

별 관심 없다는 듯 TV뉴스를 흘려듣는다.

진상, 옷장을 열어 양복과 셔츠를 골라 꺼낸 다음

거울 앞에 서서 몸에 대 보며 씩 웃어본다.

 

S #37 클럽 (밤)

 

서로 친분이 있는 듯한 젊은 남녀들이 자리를 옮겨가며

자유스럽게 술을 마시고 있다.

가슴이 거의 드러나 보이는 야한 원피스 차림의 미래

주위에 남자들이 모여 있다.

잠시 후 미래를 보지는 않아도 온 몸으로 미래를 의식하며

어디선가 나타난 진상이 미래의 눈에 잘 띄는 스탠드 한 쪽에 선다.

 

남자1 (잘난 척) 우리나라에선 컨버터블이 안 어울려.

샌프란시스코나 엘에이 같으면 몰라도. (다른 친구에게) 안

그래? 미래씨도 차 바꾸지 그래? 꾸페로.

미래 (딴 생각을 하고 있다가) 응?

남자1 차 바꾸라고.

미래 (건성으로) 됐어.

남자2 오늘 미래씨 의상 정말 죽인다.

미래 (건성으로) 고마워.

 

미래, 지루한지 주위를 둘러보다가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진상을 보고 깜짝 놀란다.

 

미래 잠깐만.

 

미래, 진상에게 다가간다.

진상, 미래가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뗀다.

 

미래 최진상씨!

 

진상, 마치 그제서야 미래를 본 것처럼 돌아본다.

 

진상 (놀란 척) 어? 미래씨 아니예요? 여기 웬일이에요?

미래 최진상씨야말로 여기 웬일이세요?

진상 나 여기 가끔 오는데.

미래 그래요? 근데 왜 한 번도 못 만났을까?

진상 어쨌든 반갑네요. 같이 한 잔 할까요? 아, 참, 일행 있어요?

미래 신경 안 써도 돼요. 오늘 클럽 멤버들 모임이에요.

진상 아, 그래요? 무슨 클럽이요?

미래 그냥 사교클럽이요.

진상 혹시... 자이언트?

미래 어머, 어떻게 아세요?

진상 어쩐지... 제 친구가 여기 멤버거든요. 미래씨도 여기

멤버였구나!

미래 친구 누구요?

진상 종수라고... (괜히 둘러보며) 오늘 안 왔나?

미래 아, 그 병원집! 오늘 안 보이던데요?

진상 그래요? 아, 안타깝네. 전화라도 해볼껄.

 

이때 지나가던 남자가 미래를 보고 아는 척하며 다가온다.

 

남자3 오, 미래씨. 오랜만이야? (손을 내민다)

미래 (악수를 받으며) 오랜만이에요.

남자3 (미래의 뺨을 톡톡 치며) 나 미국 갔다 온 새 이뻐졌네?

(진상을 슬쩍 보며) 누구?

진상 처음 뵙겠습니다. 에이스카드 최진상입니다.

남자3 아, 그래요? 몇 째세요?

진상 네?

미래 아, 그게 아니고, 직장 동료.

남자3 아! (미래에게) 그럼 놀다 가.

 

진상, 약간 민망하다.

 

미래 강만호씨는 어떻게 됐어요?

진상 구속됐으니까 재판 받겠죠.

미래 왜 그랬을까요?

진상 돈 때문이지 않겠어요?

미래 (피식)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강만호씨는 그런 사람

아닌 줄 알았는데.

진상 겉만 보고 알 수 있나요?

 

미래, 진상을 보다가 일어난다.

 

진상 왜요? 한 잔 더 하시죠?

미래 오늘은 그만 들어갈래요.

진상 그럼 제가 모셔다 드리죠.

미래 됐어요. 회사에서 뵈요.

 

미래, 미련없이 돌아서 가버린다.

진상, 미래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본다.

 

S #38 유치장

 

어두운 감방 안.

만호, 어두컴컴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만호, 고개를 숙인 채 망연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벽을 주먹으로 힘껏 내지른다.

 

만호 으아아아!

 

(엔딩)

곧 서비스될 예정입니다 곧 서비스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