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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김씨의 양반자손으로 평안남도 덕천에서 태어난 춘삼. 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던 도중 일본 헌병의 총에 맞아 죽고, 어머니는 대전으로 개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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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
누나와 함께 어머니를 찾아 대전으로 가던 도중 춘삼은 일인 사냥꾼들에게 잡혀
낚시밥 노릇을 하게 되고, 누이는 죽게 된다. 하지만 목숨을 버려 가며 도와 준 털보아저씨 덕에 춘삼은 탈출에 성공하고, 대구역전 다리밑 움막에서 열다섯 살의 두목 '발가락'의 부하 '멸치'가 된다. 그러나 발가락의 난폭함으로 6살의 '꼬마'가 맞아 죽자, 여덟 살의 춘삼은 '기차놀이'(철로위에서 오래 버티는 게임)를 통해 '발가락'을 몰아내고 두목이 된다.
평생을 자신에게 충성하며 좋은 친구가 되어 준 육손. 춘삼은 그를 믿고 의지하며
대전의 목척다리 움막까지 습격하여 두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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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춘삼 |
시야를 넓히려는 그는 서울 염천교로 부하들과 진출하고, 열한 살에 염천교의
두목이었던 '김빠'를 부하로 삼는다. 이후 춘삼은 남대문 일대를 점령하며, 김두한을 만나 동생으로 삼고 함께 일인의 악행에 맞서 정의를 행하게 된다. 이때, 그의 첫사랑인 순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가족이 모두 일인에게 죽고 거지소굴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춘삼을 지극히 간호하며 지켜주다가 이후 창녀가 되어 춘삼과 이별한다.
점차 서울에서 영역을 넓히던 춘삼은 해방 후 고아들이 넘쳐나자 고아원을
설립하고, 남대문과 대전에 '합심원'이라는 고아원을 설립하여 거지와 고아들을
교육시키며 선도한다. 이후 세력다툼으로 시라소니, 동대문 상인협회의 이정재, 이화룡과의 격투도 벌이게 된다. 1957년, 김두한의 도움으로 '거지왕'에 등극하고, 1959년에는 미국, 필리핀의 거지왕과 일본의 거지왕 '가네시루 쯔봉'의 방문으로 최초의 '국제거지연합회'의 회장이 된다. 이즈음 그는, 문둥병에 걸린 애자와 사랑을 하게 된다. 그녀 오빠의 간청으로 결혼식을 올린 춘삼은 애자의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게 되고 3일간의 신혼 생활을 하지만, 그녀의 병 때문에 떠나게 된다. 춘삼과의 이별후 애자는 자살하게 되고, 춘삼은 평생동안 그녀를 잊지 못한다.
4.19혁명이 일어나던 해, 10월. 춘삼은 왕심리에 '합심원분소'를 설치하고 고아
구제사업에 꾸준히 힘을 쏟는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개척단을 조직해 거지들의
삶을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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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춘삼 |
그는 40이 훨씬 넘은 해,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메이퀸에 뽑힐 정도로 미모가
뛰어난 남윤자씨(58)와 결혼했다. 현재, 망원동 12평 전세 연립주택에서 부인과 아들 김기환씨(33)와 함께 살고 있다. 25년 전 위와 장에 큰 수술을 받은 휴유증으로 약을 거르지 않는 그는 수입도 딱히 없어 옛부하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다. 평소 '무소유의 철학'으로 평생을 소외당하는 거지들, 고아들, 부랑자들을 위해 살아온 김춘삼. 71세의 고령인 현재에도 환경운동을 몸소 실천하는 거지왕의 '빈곤'은 그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쌓은, 가장 큰 재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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