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시에라리온, 다이아몬드 잔혹사(7월 1일 방송)
조회:

PD 취재리포트

 

시에라리온, 다이아몬드 잔혹사

정회욱 PD

 

영원한 사랑과 헌신의 상징 ‘다이아몬드’.

이를 둘러싼 20세기 가장 잔혹한 전쟁, 시에라리온 내전.

 

10년 간 20만 명 사망, 25만 여성 유린, 7천명의 소년병 양성, 4천명 사지절단, 그리고 인구의 1/3인 200만 명이 난민으로 전락해 버린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시에라리온.  ‘피의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분쟁지역 다이아몬드에 숨겨진 참혹한 인권 유린사.  그리고 여전히 영원한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사랑 받는 다이아몬드, 그 과장된 신화의 진실을 W스페셜이 파헤쳤다.

 

■ CRY FREETOWN - 울어라, 프리타운이여


“우리의 재산 중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 물건에서 나온 것이 많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축복이 되었어야 할 터인데, 실제로는 저주가 되었다. 그것이 시에라리온에 참혹한 내전을 일으켜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그것을 장악하는 사람이 나라를 장악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다이아몬드다.” - 소리어스 사무라(크라이 프리타운 회장)


우기(雨期)가 시작되고 있었다.  시에라리온의 유일한 관문, 룽기 공항.  어두운 공항 활주로 너머로 이따금씩 번개가 내리쳤다.  방금 비가 걷힌 모양인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요즘은 하루에 한번, 꼭 밤에만 비를 뿌린다고 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후텁지근하고 습한 공기가 먼저 낯선 이방인을 맞았다.  활주로엔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 한 대뿐.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공항은 적막했다.  공항청사라고 해야 우리로 치면 경춘선 어느 한가한 시골역사 만했다.  잠시 후, 우리는 작은 수송헬기에 올라탔다.  공항에서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반드시 수송헬기를 타야한다.  영종대교 만큼의 거리일까?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이 룽기 공항과 프리타운까지 아직은 다리를 놓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 10년 간 참혹한 내전을 겪은 시에라리온. 헬기에서 내려다 본 수도 프리타운의 첫인상은 어둡고 침울했다.

 

사진 1)
시에라리온 지도

 

다음날, 취재진이 먼저 찾은 곳은 프리타운 내, 외곽에 위치한 난민촌.  내전이 끝나자마자 UN과 MSF(국경없는의사회)등 국제 NGO단체들의 지원으로 생겨난 이들 난민촌에는 집을 잃거나, 가족을 잃은 사람 말고도 더욱 참혹한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반군에 의해 손목을 절단 당한 사람들.  투표를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하지만 농경사회에서 손을 잃는 것은 곧 생존수단을 잃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죽음과 다름없는 고통을 주는 것이었다.

 

 

사진 2)
99년 1월 6일 반군에 의해 양손을 잘린 전직
요리사, 알루산 콘테(52).

 

내전 당시 손목과 다리를 잃은 사람의 수는 자그마치 4천여 명.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향해 잔인하게 도끼를 휘두른 반군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하지만 그들은 어이없게도 14살, 15살의 어린 아이들이었다.  91년부터 RUF(혁명연합전선, Revolutionary United Front)를 결성, 반군을 지휘했던 포세이 산코.  처음에 그는 반군활동유지를 목적으로 광산지역을 점령, 다이아몬드를 팔아 무기를 사들였다.  그렇게 시작한 다이아몬드 밀매.  반군활동은 점차 정치혁명보다는 다이아몬드 그 자체로 변질됐다.  영원한 아름다움의 상징 다이아몬드가 이제 한 나라의 운명을 재앙으로 몰고 갈, 피의 다이아몬드로 둔갑하게 된 것이다.  모파상의 ‘목걸이’에 등장하는 로와젤 부인이 겪었던 10년간의 고통보다 훨씬 더한 고통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식 무기로 중무장한 반군들은 대규모 다이아몬드 광산지역을 하나 둘 점령하며 무차별 살인과 강간을 저질렀다.  그 중 10살 남짓, 나이어린 소년들은 강제로 납치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마약을 투여하고 총과 도끼를 쥐어줌으로써 잔인한 살인병기로 둔갑시켰다.  내전 10년 동안, 7천명이 넘는 아이들이 그렇게 반군에게 납치되어 부모와 같은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빼앗고, 손목을 자르는데 앞장섰다.  이유는 없었다.  마약에 취한 아이들은 광기에 휩싸여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총을 쏘고 도끼를 휘둘렀다.


우리가 1950년 6?25를 기억하듯, 그들은 ‘1999년, January 6’를 기억한다.  그 날은 RUF반군이 대대적으로 수도 프리타운을 공격한 날이었다.  ‘생물절멸작전’.  이 무시무시한 작전명만큼이나 20세기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기록되던 그날, 죽음의 위험을 무릎 쓰고 그 날의 참상을 기록한 한 젊은 시에라리온 저널리스트가 있었다.  그는 시에라리온 국민의 90%가 한 번도 본적 없는 다이아몬드 때문에 그 날, 프리타운이 슬프게 울었다고 회고했다.  몇 년 후, 그는 ‘CRY FREETOWN'이라는 이름으로 그 날의 참상을 세상에 공개했다.

 

 

사진 3)
14살 때 반군에게 끌려가 RUF병사가 됐던 모하메드 까마라(20).
이들 소년병들은 내전의 가장 큰 가해자이면서 또 피해자다.

 

■ BLOOD DIAMOND - 피의 다이아몬드를 찾아서


전쟁은 3년 전 막을 내렸다.  서부아프리카평화유지군(ECOMOG)과 UN평화유지군(UNAMSIL)의 개입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반군 지도자 포세이 산코는 재작년 70여개의 전범혐의로 체포되어 재판받던 중 지병으로 사망했고,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던 최악의 반군단체 RUF도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그렇게 전쟁은 끝이 났지만 또 다른 전쟁의 주범, 다이아몬드만은 여전히 이 나라에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며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있었다.  우리는 시에라리온을 피로 물들인 전쟁의 주범 ‘다이아몬드’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시에라리온에서 다이아몬드가 가장 많이 거래된다는 국경도시, 케네마.  곳곳에 대규모 광산이 인접해 있어 내전당시 반군들의 주요 공격대상이 됐던 곳이었다.   케네마시를 관통하는 항가거리는 내전당시에도 다이아몬드를 거래하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정도로 다이아몬드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선, 유명한 거리.  이 거리의 다이아몬드 상점들은 대부분 밖에 가전제품이나 시계 등을 쌓아놓는다.  하지만 실제로 가전제품을 보러오는 손님은 한 명도 없다.   가게를 들어서면 주인은 가게 뒤편에 마련된 한 평짜리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간다.  바로 그곳이 다이아몬드 원석이 거래되는 장소다.  그곳의 다이아몬드 딜러들은 곧바로 수출업자들에게 이 원석을 넘기게 되는데, 내전 중에는 이곳에서 대부분의 다이아몬드 원석들이 불법으로 밀수출됐다.  그것들이 피 묻은 다이아몬드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곳의 다이아몬드 상권을 80%이상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현지인이 아니라 바로 레바논에서 건너온 상인들이다.  그들이 내전 중에도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다이아몬드의 출처에 상관없이 그것들을 팔아주고, 사주면서 검은 돈을 유통시켜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지금도 그 관행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있었다.  취재진이 고객으로 위장하고 만난 한 레바논 다이아몬드 수출업자는 어떻게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공항을 나갈 수 있는지 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줬다.  ‘광산청’까지 만들어가며 다이아몬드의 밀거래를 막아보자는 시에라리온 정부의 노력도 여기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듯 했다.  경찰의 단속의지도 말뿐이었다.  광산 취재를 허가받기 위해 찾아간 경찰서.  담당경찰관은 대뜸 돈부터 요구했다.  낯선 취재진에게까지 노골적으로 돈을 내 놓으라는 경찰관을 보면서 이곳 다이아몬드 시장이 얼마나 검게 물들어 있는지 미루어 짐작이 갔다.  내전의 원흉 다이아몬드는 그렇게 여전히 검은 돈을 만들며 시에라리온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사진 4)
다이아몬드 원석을 꺼내 보여주고 있는 레바논 다이아몬드 딜러 모하메드 젤왓(27).  시에라리온 원석 시장의 80%를 이들 레바논상인들이 독점하고 있다.

사진 5)
광산에서 다이아몬드 채취하고 있는 광부들.  1일 1000레온(한화 350원)의 값싼 임금과 1000레온 어치의 식량을 받으며 매일 10시간 이상 일을 하고 있다.

 

케네마 항가거리를 벗어나 멀지 않은 곳,  밀림 속으로 들어갈수록 곳곳에 깊게 패인 웅덩이가 셀 수 없이 눈에 띄었다.  다이아몬드를 캐기 위해 파 놓은 웅덩이였다. 그 중 취재진이 찾은 곳은 현재 100여명의 광부들이 일하고 있는 비교적 규모가 큰 광산. 이 광산 역시 레바논인이 소유하고 있었다. 넓이가 총 7에이커(8560여 평)로 구덩이 수만 30개.  한 구덩이 당 하루 평균 대여섯 개의 원석이 발견된다고 하니 합쳐서 100여 개가 넘는 다이아몬드 원석이 이 광산에서 추출되는 셈이었다.  물론 내전 중에는 이곳을 점령했던 반군들이 엄청난 양의 다이아몬드를 이미 캐가기도 했다. 그 피 묻은 다이아몬드는 지금 세계 어딘가에서 어느 여인의 손가락에 끼워져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 DIAMOND’S FOREVER -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그 신화의 진실


사실 다이아몬드의 신화는 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BC 7, 8세기경 인도의 장신구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영묘하고 신화적인 이미지로 서구문명의 발달과 함께 진화했다.  하지만 이것이 보석으로 평가받으며 대중화된 것은 불과 150여 년 전부터.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영국, 프랑스 등 식민 지배를 하던 국가들이 근대적 채굴법을 도입해 대규모 광산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아프리카 피의 다이아몬드 역사도 함께 시작된 셈이다.  그 중 100년 동안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라는 광고 문구로 근대의 새로운 다이아몬드 신화를 만들어낸 세계 제일의 다이아몬드회사 드비어스(De Beers).  마치 주문을 외우듯, ‘영원’하고 ‘신비’롭고 ‘소중’한 이 다이아몬드가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마케팅 전략은 쉽게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 강력한 주술로 한때, 전 세계 시장의 85%를 독점하던 그들은 당연히 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다이아몬드를 헐값에 사들이는 일에 몰두했다.  물론 그들에게는 그것이 피 묻은 다이아몬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격과 공급량을 통제하며 신화를 만들어 나가던 드비어스는 그렇게 다이아몬드와 절대적인 공생관계를 형성하게 됐다.  드비어스가 없었다면 다이아몬드가 오늘날과 같은 지위를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고, 다이아몬드가 없었다면 드비어스 또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 6)
런던에 위치한 드비어스 판매센트(DTC).  그 곳 전시실에는 시에라리온의 별이라는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986.6 캐럿짜리 다이아몬드(모조품)가 전시되어 있다.

 

Conflict Diamonds' 이른바 ‘분쟁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영국의 한 국제인권단체, 글로벌 위트니스(Global Witness)의 보고서를 통해서였다.  그들은 아프리카의 내전과 다이아몬드와의 상관관계를 조사해 이를 폭로했다.  당연히 타격을 받았던 것은 드비어스를 비롯한 국제 다이아몬드 회사들이었다.  공급물량 확보는 둘째 치고라도 애써 만들어왔던 다이아몬드의 이미지가 손상될까 노심초사했다.  부랴부랴 자체감시기구를 만들고 모든 다이아몬드에 ‘미분쟁 원산지 증명’을 부착하는 ‘킴벌리회합’에 합의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노력이 온전히 깨끗한 다이아몬드, 분쟁 없는 아프리카를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거대한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이 영원히 건재하는 것이고, 다이아몬드가 아프리카 땅에 아직도 수없이 묻혀있다는 것뿐이었다.  내전으로 상처받고, 후유증에 시달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다이아몬드의 마력에 휘말려 광산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아프리카 분쟁의 핵인 다이아몬드의 마력은 여전히 아프리카인들을 옥죄고 있다.

 

‘다이아몬드를 선물하고 싶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충동을 겪어봤거나 또 앞으로 겪게 될지도 모른다.  다이아몬드가 갖고 있는 신화가 깨지기는 당분간 그리 쉬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작고 반짝이는 탄소알맹이가 우리를 영원히 유혹하는 한, 이곳 시에라리온의 밀림 또한 영원히 파헤쳐 질 운명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축복이 될 지 재앙이 될 지는 아직도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