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농민 오원춘 실종사건.
* 실종 된 농민 오원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1979년 5월, 성실하게 살아가던 평범한 농민 오원춘(31세)이 바쁜 
농사철임에도 불구하고 행방불명된 사건이 일어났다.
실종된 지 15일 후,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한 불안한 모습으로 나타
난 오원춘은 같은 마을 천주교 신부 성중석(가명)에게 지난 15일 
동안에 일어났던 충격적인 일들을 고백하는데... 오원춘은 읍내에 
나가 던 길, 버스정류장에 갑자기 나타난 정보기관 요원들에게 강
제로 끌려가 포항의 한 창고에 갇혀 폭행을 당한 뒤 울릉도에서 15
일 동안 감금되었다는 것이다. 

* 나는 납치를 당했다! 
1978년 가을. 농민회 임원이었던 오원춘은 정부에서 받은 불량감
자씨 때문에 감자싹이 트지 않아 농사를 망치게 되자 당국에 끈질
기게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그 결과 오원춘은 피해액 전부를 보상받게 되었고, 이로 인해 다
른 지역에까지 농민운동이 확산되자 정부는 농민운동의 확산을 막
기 위해 오원춘을 납치했다는 것이다. 성당에서 납치사실에 대해 
양심 고백을 한 오원춘은 양심선언문을 쓰고, 천주교 신부들은 성
명서를 발표해 오원춘 납치 사실을 전국에 폭로하게 된다. 사건이 
점차 커지게 되자 당국의 수사가 시작되는데...

* 오원춘의 진술 번복... 납치 사실은 조작된 것인가?
경찰조사에서 오원춘은 자신의 양심선언은 조작된 것이라는 뜻밖
의 진술을 한다. 같은 마을에 사는 김은애(가명)와의 불륜관계 때
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혼자 울릉도로 여
행을 갔다는 것이다. 
검찰은 오원춘의 납치설은 조작된 것이라고 발표하고, 허위사실
을 유포한 오원춘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속한다. 그러나 
천주교 신부들은 오원춘의 경찰진술은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
하며 변호사를 선임해 오원춘의 행적을 따라 증거를 찾기 시작한
다. 전국에서 몰려 온 농민회 회원 등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마침내 재판은 열리게 된다. 법정에 선 오원춘은 검찰측 주장을 대
부분 시인하고, 변호인 심문 때조차도 검찰측 눈치를 살피며 답변
을 한다. 
또한 납치 사실을 증명해 줄 결정적 증인 김은애도 오원춘과의 불
륜사실을 인정하고, 오원춘의 행적을 증명해 줄 또 다른 증인들조
차 검찰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하게 된다.

*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인가?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변호인은 오원춘이 경찰 조사 당시 몰래 썼던 ‘고문을 당하고 있다’
는 내용의 쪽지를 증거물로 제출한다. 하지만 오원춘이 끝까지 고
문에 관한 답변을 회피해 경찰의 폭행 사실을 법정에서 밝히지 못
한다. 
또한 검찰측은 오원춘이 여행을 가기 위해 은행에서 5만원을 대출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변호인은 검찰에서 주장하는 대출일
이 공휴일이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검찰측의 주장을 반
박한다. 하지만 검찰측이 내세운 증인은 농민의 편의를 위해 공휴
일에도 대출 업무를 한다고 증언을 하는데... 오원춘 납치 사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많은 의혹 속에서 재판이 조속하게 강행되
자 변호인은 변론기일 별도 지정을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다. 납치 사건의 진실을 둘러싼 법정 공방 속에서 재판부는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이번 주 <실화극장 죄와벌>에서는 유신 말기의 인권유린을 단적
으로 보여준 오원춘 사건을 재구성 해보고, 한국농민운동의 질적 
성장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던 오원춘 사건을 통해 농민운동과 
인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