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형수의 최후항변 - 인천 일가족 살해사건.
인천 일가족 사망사건, 범인은 피해자의 부인과 내연의 남자!
1974년 12월 30일 밤, 인천의 한 쌀가게에서 주인과 아이들이 사
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살해된 남자의 부인인 정인숙(가명), 그리고 그녀와 내연
의 관계인 지광훈(가명).
평소 술을 많이 마시던 남편에게 불만이 많았던 정인숙은 종교모
임을 통해 만난 지광훈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고 내연의 관계로 발
전 되자 함께 살기 위해 범행을 결의, 피해자들의 목을 졸라 살해
했던 것이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자, 그동안 범행을 순순히 인정
했던 지광훈은 경찰의 고문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강
력하게 부인하기 시작하는데...
과연 정인숙의 단독범행인가, 지광훈과의 공동 범행인가? 두 사
람 중, 누가 진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일까?
물증 없는 살인사건, 증거는 자백과 정인숙의 공범 진술 뿐!!
변호인은 사건현장에서 지광훈이 범인이라는 물증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점을 근거로 그의 무죄를 주장한다. 증거는 지광훈
의 자백과, 범행을 모의했다는 정인숙의 진술 뿐! 하지만 검찰은
지광훈이 장롱을 뒤져 머플러와 넥타이를 꺼내 피해자를 살해한
것은 사실이고, 아무런 물증도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당시 지광훈
이 면장갑을 끼고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라며 물증없는 현장에
대한 변호인의 의심점을 일축해버린다.
변호인측이 주장하는 또다른 무죄의 근거는 범행시각, 지광훈의
알리바이! 지광훈은 범행이 일어난 오후 8시 30분 경, 신도들과 함
께 교리모임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신도들 역시 지광훈이
그 시각, 교리모임에 참석하고 있었고 이상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고 증언하며 지광훈의 알리바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검찰측은
이들이 같은 교리모임의 신도라는 이유로 지광훈에게 유리한 증언
을 하고 있다며 위증의 가능성을 강력히 주장한다.
또 한가지 논란이 된 것은 지광훈이 공범이 아니라면 과연 여자
혼자 힘으로 세명을 목졸라 숨지게 할 수 있는지의 여부였다. 여
자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국과수 부검의의 증언에 힘을
얻어 지광훈이 공범임을 확신하는 검찰측! 당시 정인숙이 남편과
아이들에게 수면제를 먹인 상태였으로 범행이 충분히 가능했다는
변호인의 주장! 한치의 양보도 없는 양측의 대립으로 법정 공방은
더욱 치열해져만 갔다.
유일한 증인인 정인숙의 자살 ! 그리고 사형선고...
공범 여부가 논란이 되는 가운데 정인숙이 구치소에서 목을 매달
아 자살 한 채로 발견된다. 이로서 사건의 진실을 증명할 유일한
증인은 사라지게 되고, 자신의 무죄를 밝혀 주리라 믿었던 정인숙
의 죽음으로 지광훈은 더욱 절망에 빠지게 된다.
결국 정인숙이 자살 직전까지 함께 있었던 동료 재소자가 법정에
서게 되고 그녀의 증언은 지광훈의 유죄 가능성에 결정적으로 영
향을 미치게 된다. 정인숙이 죽기 직전까지 ‘지광훈과 함께 범행
을 저질렀는데 혼자만 억울하게 뒤집어 썼다’며 억울함을 호소했
다고 증언한 것.
고심하던 재판부는 결국 정인숙이 죽음 직전까지 거짓말을 했을
리 없다고 판단, 지광훈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한다.
정당한 법의 심판인가, 억울한 희생자인가?
무죄와 유죄의 증거, 둘 중 어느것도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
태에서 진행된 재판, 그리고 사형선고...지광훈과 가족들은 억울함
을 호소하며 재심청구를 거듭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사형’이라는
죽음의 공포뿐이었다.
선고 5년후인 1979년 9월 13일, 결국 지광훈은 사형대에 서게 된
다. 하지만 그는 죽음 직전까지 무죄를 주장했고, 자신을 유죄로
몰고간 이들에게 저주의 유언을 남긴 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
렸다.
지광훈의 사형집행으로 영원히 묻혀진 인천 일가족 살해사건. 과
연 지광훈은 파렴치한 살인자인가, 사형제도의 억울한 희생자인
가?
그리고 인간의 판단으로 진행되는 재판이기에 오판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형이라는 형벌은 과연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이번주 실화극장 <죄와 벌>에서는 마지막까지 결백을 주장하던
한 사형수의 재판과정을 통해서 사형제도가 계속 존치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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