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종.
태풍 매미가 몰고 온 비극의 현장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마을. 34명의 주민들이 옹기종기 살아가
던 이 평화로운 마을에 지난 9월 12일, 비극이 찾아왔다. 역대 최고
의 태풍이라는 매미의 영향으로 불어난 개울물이 마을 한가운데
를 덮쳐 7가구가 유실되고 마을주민 7명이 사망하는 참상이 벌어
진 것이다. 비극의 주인공은 엄기섭씨(37세, 포항 고려제강 근
무). 엄기섭씨는 추석을 맞아 부인과 아들(7세)을 데리고 처갓집
에 들렀다가 갑자기 불어닥친 비바람에 장인, 장모와 함께 영영 돌
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보다 더 힘든 수색 작업
사고 후, 장인과 장모, 부인과 아들의 시신 4구는 발견됐지만 엄기
섭씨의 시신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마을을 관통한 물줄기가
마을 아래 옥천 저수지까지 흘러 들어갔고, 저수지 입구에서는 엄
씨의 옷, 가방 등 유류품이 발견되어 시신이 저수지로 흘러 갔으리
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옥천 저수지는 넓이가 9만평, 최고 수
심이 20m에 달하는 거대한 저수지. 더군다나 태풍으로 인한 유실
물의 유입 때문에 흙탕물 투성이로 변한 저수지에서 시신을 찾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기섭씨의 가족들은 시신을 찾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펼쳤다. 해
군 특수부대, 119 구조대, 한국 구조연합이 동원된 목숨을 건 수
색 작업이 진행됐지만, 엄씨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고 가족들의 애
타는 마음은 더해만 갔다. 물에 빠진 시신은 통상 5일에서 7일 정
도면 물에 뜨는데 엄기섭씨의 시신은 7일이 지나도록 발견되지 않
았다. 그저 지켜만 볼 수 없기에 어머니 박기순씨(64세)는 무당을
불러 굿도 하고 저수지를 향해 절을 하기도 했고 저수지에서 목놓
아 아들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대답은 없다. 아버지 엄주한씨(64세)
와 엄씨의 동생들은 혹시나 시신이 뜰까하는 마음에 포항에서 창
녕까지 배를 실어와 수색 작업에 동원하기도 했다. 수색본부에서
는 최후의 수단으로 저수지의 물을 다 빼는 방법을 제안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 아들아, 제발 돌아 오거라”
시간은 가고 진전은 보이지 않는 수색 작업 때문에 구조대원들도,
가족들도 지쳐만 가는데.... 그러던 지난 일요일(9월 21일) 아침,
실종 9일만에 저수지 둑방 근처에서 엄기섭씨의 시신이 떠오른 채
발견됐고 가족들은 오열했다. 구조대원들과 가족들의 치열했던 9
일간의 현장기록을 통해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자들의 아픔을 함
께 한다.
표범을 쫓는 사나이, 최기순.
표범을 찾으러 간 사나이, 최기순
지난 98년, EBS를 통해 방영되어 화제를 일으켰던 자연 다큐멘터
리 '시베리아 호랑이를 찾아서'. 당시 시베리아 호랑이를 촬영했
던 촬영감독 최기순씨(40세)는 지금 호랑이가 아닌 표범에 빠져 있
다. 현재 그는 지난 해 말부터 조선 표범 아무르를 찾아 표범의 생
태를 카메라에 담으며 북방 800Km 지점인 러시아 연해주의 시호
테알린을 거점으로 활동중이다. 야생동물 촬영을 하고 있는 최기
순씨가 또 다시 시베리아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
멸종 위기의 조선 표범을 찾기 위해 시베리아로 떠나다
그의 카메라에 담기는 표범은 심각한 멸종위기를 겪는 조선 표범
(아무르 표범)이다. 아프리카에서 아시아, 시베리아에 이르는 광활
한 지역의 숲에서 살고 있으며 대형 고양이과 동물 가운데 가장 민
첩하며 용맹스러우면서도 조심성이 많은 동물로 알려진 표범. 그
러나 사람에게 해롭다는 인식과 황색바탕에 매화무늬가 박힌 아름
다운 모피 때문에 남획이 벌어져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됐다. 한반
도에 서식했었던 종은 가장 크고 아름다운 아무르 표범이었는데
현재 아무르 표범은 가장 많이 생존해 있다는 러시아에도 30마리
이하의 개체만이 살고 있을 정도로 지구상에서 가장 희귀한 고양
이과 동물이 됐다. 최기순씨는 숲이 우거진 곳에 살고 있는 표범
을 찍기 위해 표범의 영역 지역 안의 10미터 나무 위에 위장텐트
를 설치하여 20개월간 표범의 생태를 촬영하고 있다. 영하 30~40
도를 넘나드는 러시아의 맹추위와 야생 동물의 촬영이라는 위험천
만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카메라에 표범의 일거수 일투
족을 담고 있는 최기순씨는 멸종 위기의 표범을 찾아 오늘도 고군
분투하고 있다.
호랑이가 맺어준 기막힌 아내와의 인연
표범을 찾는 열정적인 사나이 최기순, 표범을 찾아 러시아로 온 것
은 단지 그만이 아니다. 17살 어린 러시아 아내 비탈리아(24)는 한
국인 남편 최기순씨와 함께 현재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살고있
다. 시베리아 호랑이를 찍고 있던 97년 당시 러시아에서 만났던 인
연은 사랑으로 이어졌고 현재 그들은 6살. 5살인 두 아들 승범. 고
미를 두었을 만큼 어엿한 가정을 이루었다.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
는 아내 비탈리아는 ‘식물’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남편과 함께 자연
다큐를 찍는 것이 꿈인 러시아 여성. ‘표범’에만 집중하는 남편을
향해 ‘표범에 대한 애정 백만 분의 1’만큼만 나를 생각해달라고 말
한다. 하지만 한국 남자의 무뚝뚝함이라며 은근슬쩍 넘어가는 남
편이 밉지 않다.
“외롭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기순씨가 찍고 있는 표
범인 께드로 바야 빠찌의 암컷 한 마리가 임신 상태에서 올 3월에
새끼를 출산한 사실. 암컷 표범의 배에 새끼가 빤 어미 젖꼭지가
촬영되어 산 속 어딘가에 새끼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최기순씨
는 표범 새끼를 찍고 싶어하지만 표범은 새끼를 순순히 보여주지
않고 ..... 표범 촬영을 기획한 4개월간을 촬영하기 좋은 곳을 찾아
다니고 텐트를 설치한 지 2달, 기획 후 6달 만에 첫 촬영에 성공한
용감한 사나이 최기순씨를 [휴먼다큐 희로애락]팀이 현지 동행취
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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