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양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BEST 10 방송 : 1999.9.12~ 일요일 밤 11시 30분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함께 한 7년

정창현 (코리아포커스 편집국장, 국민대 교수)

 

1999년 이맘 때였던 것 같다. 회사로 키가 크고 서글서글한 얼굴의 PD 한 분이 찾아오셨다. MBC에서 현대사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는데 여러 모로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이때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엮인 첫 인연이었던 셈이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9월 12일 첫 방송이 나갔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일요일 밤이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보는 것이 일과가 돼 버렸다. 물론 메일과 전화를 통해 수시로 제작팀과 의견을 주고받는 것은 당연히 일이 돼 버렸다. 그것이 벌써 6년 전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 매년 다음 해의 지속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용케도 100회를 채웠다.

당대의 권력의 핵심과 닿아 있는 정통 다큐멘터리가 7년간 100회 방송을 내보냈다는 것은 한국방송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일 것이다.

1차년도 13회분이 방영된 후 양주에서 가진 평가회의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역사의 진실에 정확하게 근접하지는 못한 부분도 있지만 현대사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정통 다큐멘터리 형식을 고수했으면 좋겠습니다."

분단과 전쟁, 좌우의 갈등, 오랜 남북의 대치상황은 현대사의 심연에 묻혀 있는 사실을 끄집어내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팀은 그동안 쉽게 들을 수 없었던 희생자나 그들의 가족, 관계자의 목소리에 초점을 맞췄다. 그것이 방영 이유이기도 했다. 그 결과 남북분단의 이면에 가려졌던 사건과 인물들에 용감하게 도전해 국민들의 현대사 인식을 성숙시키는 역할을 충분히 해 냈다. 비록 논쟁에 종지부를 찍지 못하거나 부분적으로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 의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 등장한 수많은 증언자들이 지난 시기에 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살았는지를 유추해 보면, 그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다룬 소재들이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거나 너무도 가슴 아픈 상처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쉽다면 '피해자'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반성적 목소리가 더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여전히 굴곡 많은 우리 현대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과거청산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은<천황을 살려라-도쿄전범재판의 흑막>(51회), <김일성 항일투쟁의 진실>(48회), <푸에블로 나포사건>(36회), <만주의 친일파>(75회) 등이다. 앞으로 시간이 흘러도 다시 제작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반면 <망각의 전쟁-황해도 신천사건>(57회), <남북교류의 선행자들>(22회) 등은 반대했던 아이템이라 기억에 남아 있다. 전자는 너무 예민하다는 점에서, 후자는 제작의도와 맞지 않다는 취지에서 부정적 의사를 표시했던 것 같다.

<조봉암과 진보당 사건>(3회), <잊혀진 죽음들-인혁당사건>(6회), <간첩? 이수근>(13회) 등은 사실적 접근에서 약간 아쉬움이 남는 방송이었다.

1-2기 제작 아이템으로 올라 왔던 주제들은 그 후 방송이 계속되면서 대단히 소화됐다. 90년대 초 자문했던 [KBS다큐멘터리극장]은 다큐드라마 형식을 취했지만 다루는 소재 면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가장 유사했다. 다만 [KBS다큐멘터리극장]에는 드라마(재연)가 포함돼 있어 부분적으로 한계가 있었다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다큐멘터리 본연의 사실적 접근으로 오랫동안 생생한 '한국현대사 교과서'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방영기간 동안 방송 제작 가능한 아이템의 부족, 지나치게 딱딱하고 엄숙하다는 지적, 늦은 밤 낮은 시청률 등은 내내 제작진을 괴롭힌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대사 자체가 '쉽고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가 아닌데, 어떻게 딱딱하고 엄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방송 초기에 "왜 이제야 말 하는가?","왜 지금까지는 침묵 했는가"라는 질타가 쏟아지기도 했다. "사건의 노출에만 초점을 맞춰 본질은 건드리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1970-80년대의 엄혹한 정치상황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성숙을 엿보게 하는 증거라고 본다. 늦었지만 말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는 언제나 말해야 한다'는 자성을 갖게 한다.  

100회를 지켜보면서 '이제는 끝났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아쉬운 점도 몇 가지 떠오른다. 첫째, 제작과정에서 몇 차례 논쟁을 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본연의 취지에서 어긋나는 소재가 여러 번 방송됐다. 통사적인 주제나 최근에 벌어진 사건일수록 그러한 한계를 많이 노출시켰다고 생각한다. 방송 아이템의 빈곤, 담당 PD의 교체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소재의 일관성이란 측면에서는 불균형이 초래된 것 같다. "시리즈물다운 통일성이 결여됐다"는 자체 반성이 나오기 했다.

둘째, 남북이 동시에 관계된 사건,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조직사건 등은 방송시간의 제약, 가해자의 증언 기피 등으로 사건의 본질적 측면보다는 피해자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줄거리가 형성된 한계가 나타났다. 어쩔 수 없는 시대상황의 제약, 사건의 본질을 보여주는 결정적 자료의 부재 등이 작용했을 것이다.

셋째, 방송분마다 완성도가 들쑥날쑥 편차가 부분적으로 발생했다. 편당 평균 제작 기간이 두 달이 채 안 되는 열악한 조건, 깊이 있는 자료조사 부족,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 대한 PD들의 이해편차 등으로 나타난 현상인 것 같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순수 학문영역에 머물러 있는 현대사연구자나 현대사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들에게 큰 자극제가 됐다. 또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 담긴 현대사 증언들은 앞으로 현대사연구에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여의도 음식점과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기울이며, MBC 앞 호프집에서 심각하게 논쟁을 하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현대사의 고민을 함께 하며 현대사의 진실을 캐기 위해 노력하신 모든 담당 PD와 작가께 뜨거운 감사의 마음의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