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양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BEST 10 방송 : 1999.9.12~ 일요일 밤 11시 30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00회가 기록한 한국 현대사

김환균 (2005년 [이제는 말할 수 있다]CP)

 

"100회를 맞는 소감이 어때요?"

한국일보의 이희정 기자가 내게 물었다. 그때 '아차'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질문에는 뭔가 대답을 준비했어야 할 것 같았다. 현대사 다큐멘터리 100회라…. 우리나라 방송사(史)에서 처음 있는 일일뿐더러, 세계적으로도 이런 시리즈는 없다. 뭔가 그럴 듯한 답변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감격은 아니더라도 뭐, 이 시리즈가 한국 현대사에 갖는 의미라든가, 아니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이라든가 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정작 내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나가고 말았다.

"그만큼 우리 현대사가 불행했다는 거죠."

말을 해놓고 보니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회를 맞았다고 해서 자축할 일도 아니고, 우리 이렇게 장한 일 했네 하고 떠들 일도 아닌 것 같다. 해방 60년인 대한민국 역사에 적어도 100 가지의 은폐와 왜곡이 있었다는 얘기이니 말이다.

내 책상 위에는 지금 1회부터 100회까지의 목록이 있다. 회차와 제목만 적어놓은 것이다. 분단, 반란, 투쟁, 교전, 전쟁, 죽음, 학살, 간첩, 의문사…, 얼핏 보아도 이런 어두운 단어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들이 우리 역사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도 조금은 착잡한 심정으로 쓴다.

레드 콤플렉스와 미국

지난 6월 26일에 방송된 이정식 PD 연출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7년의 기록> 편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100번째 프로그램이다. 그는 지난 7년 동안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다룬 주제들을 요약, 정리해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바라본 한국 현대사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 PD는 크게 두 가지의 키워드를 제시한다. '레드 콤플렉스'와 '미국'.

해방 이후 최대의 민족적 과제였던 친일 청산이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등장으로 좌초되고 만다. 친일 세력은 이승만의 지지 기반이 되면서 '빨갱이' 때려잡는데 선봉이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이후의 현대사의 흐름을 결정해 버린 것인지 모른다. 민족사의 비극인 전쟁을 거치면서 반공 이데올로기는 더욱 강화되어 갔고, 박정희 또한 미국의 신임을 얻기 위해 자신의 좌익 전력을 세탁해야 했다. 쿠데타 이후 광범위하게 진행된 혁신 세력 제거가 그것이다. 이후 '빨갱이''좌익''사회주의'라는 단어는 금기의 단어가 되어 갔고,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낙인이 되었다. 독재 권력이 자신의 정적과 저항세력을 제거하는 데 유용한 무기로 썼던 것도 바로 공산주의자, 혹은 간첩이라는 낙인이었다.

미국은 우리 현대사에 두 개의 얼굴을 내보인다. 일제로부터 우리 민족을 자유롭게 한 해방자와 전쟁으로부터 지켜낸 자유의 수호자라는 밝은 얼굴, 그리고 분단을 가져오고 독재 권력을 비호한 어두운 그림자 얼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7년 대장정은 미국에 대해 질문을 던짐으로써 미국이 갖는 의미를 자각해 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해서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반미'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미국의 객관적 실체를 정확하게 알자는 것이었다. 역사의 수유기(授乳期)로부터 이유기(離乳期)로 이행하는 단계의 우리에게는 필연적인 물음이었다.

"나는 사회주의자요"

나는 언젠가 지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 1999년 9월 시리즈의 첫 편으로 방송된 <제주 4 · 3>과 2005년 4월과 5월에 방송된 <한국의 진보> 3부작을 비교하면서 설명한 적이 있다. <제주 4 · 3>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이데올로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무고한 양민'이 죽임을 당했다는 뉘앙스를 갖고 있었다. 나는 그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 연출자인 이채훈 선배에게 '마치 좌익이고 사회주의자이면 죽어도 싸다고 말하는 것 같다'며 딴죽을 건 적이 있다. 물론 이 선배가 그런 말을 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표현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은 당시 우리 사회의 분위기였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고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화가 이전에 비해 상당히 진전되었지만, 여전히 이데올로기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경직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념이 다르다고 그렇게 함부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조차 여전히 할 수 없는 말이었다.

7년이 흐른 후, <한국의 진보>에서는 그런 금기가 깨졌다. '나는 사회주의자'이고 '사회주의 혁명을 꿈꿨다'는 고백이 등장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고백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한학수 PD와 술을 한 잔 하면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그 7년 동안 꾸준히 성숙해 왔다는 데 기꺼이 동의했다.

때로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의 진보> 이후, 나는 그것이 오만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해 왔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그 변화를 반영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때로는 변화에 앞서서 문제를 던지고 자극을 주기도 했지만,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만한 것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민주주의여, 평화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7년 동안 우리는 왜 역사 다큐멘터리를 하는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문해야 했다. 우리에게 역사는 절박한 것이었다. 과거에 대해 돌아보는 것은 지금을 알기 위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우리에게 유용한 것이어야 했다. 오늘의 우리를 옭아매는 것, 미래로 달려가야 할 우리의 발목을 걸고 잡아당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 그리고 그 장애물들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를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꿈꾸는 우리의 오늘과 미래는 어떤 것인가. 나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내용'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이채훈 연출)과 <전향공작과 양심의 자유>(강지웅 연출) 등에서 제기한 것처럼, 헌법에 보장된 사상과 양심의 자유, 그리고 기본적 인권의 보장을 실현하는 것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부자유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과거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우리는 아직 충분한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다른 한 가지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이다. 100회를 하는 동안에 '한반도 위기'라는 주제가 세 번이나 다루어 진 것은 우리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는가를 말해 준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가. <94년 한반도 전쟁위기>(정길화 연출), <한반도 전쟁위기 1994, 2003>(최승호 연출), <2005 한반도 위기>(조준묵 연출) 등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전쟁 위기의 본질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것이었다.

이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00회를 끝으로 7년째의 대장정이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던진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것이다. 옛날의 노래 가락에 실어 만세를 부르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친다.

민주주의여, 만세!

평화여,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