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양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BEST 10 방송 : 1999.9.12~ 일요일 밤 11시 30분

시간과 기억과의 싸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7년의 회고와 정리

정길화 (2000, 2002, 2004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CP)

 

1999년 9월 12일은 한국방송사에 특별한 날로 기록되어야 한다. 이 날은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가 첫방송 되었기 때문이다. 개척과 효시의 날이다. <제주 4.3>편(연출 이채훈)으로 첫 발걸음을 한 이 프로그램은 어언 7년간 도합 100편의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는 혼돈과 왜곡으로 점철되어온 한국 현대사에서 감히 새로운 역사서술과 복원을 도모하였다. 강자와 승자에 의하여 은폐되어온 역사의 진실을 이 땅의 지상파 방송이 분연히 나서 정면으로 해부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1999년 이후 7년간에 걸친 대장정은 모두 100편을 방송하여 미니시리즈 형 다큐멘터리 혹은 게릴라식 프로그램이란 별칭을 얻으며 지난 6월 26일 마침내 마무리되었다.

사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가 처음 방송될 때만 해도 주위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제목이 풍기는 기회주의적 성향이 못마땅한 사람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이 땅의 방송은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이른바 권력의 주구로서 혹세무민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유방백세 유취만년(遺芳百歲 遺臭萬年)이라는 옛말에도 있듯 나쁜 기억은 더 오래가는 법이다. 양치기 소년과 늑대의 우화는 이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편파 불공정 방송의 낙인은 지난 1988년 이래 방송계 현장에서 지난하게 전개된 방송민주화 운동이나 방송노조 투쟁으로도 쉽사리 치유되지 못하는 천형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99년에 시작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역시 당시의 권력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또 한 건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 무엇을 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느냐'에서 시작해 '당신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 혹은 '지금 하고 있는 뉴스나 프로그램부터 잘 하라'는 힐난은 고스란히 자업자득의 업보였다. 저널리즘은 모름지기 당대의 기록물로서 분명히 그때그때 할 말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후일담 문학도 아니면서 시간이 지나간 뒤 비로소 말하려는 것은 직무유기 혹은 면피용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프로그램에 가해진 의심과 불신은 정당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제작진의 생각은 확고하고 또 순수했다. 그런 말을 들을 것이 두려워 지금 말할 수 있는 때 말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그때는 말 못한 것은 비굴한 일이지만 지금도 말하지 않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라고. 6년 전 1999년의 방송분을 보면 예의 '제주 4.3'을 비롯해 '동백림 사건', '진보당 사건', '여순 사건', '인혁당 사건', '김형욱 실종 사건' 등 흔히 한국 현대사의 미스터리를 말할 때 우선적으로 등장하는 굵직한 사건들이 거의 망라되고 있다. 되짚어 보면 그 때의 제작진들은 언제 다시 이런 프로그램을 할 기회가 올 것인가 하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로는 이 프로그램이 이렇게 7년 동안 방송될지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농담처럼 이 프로그램이 100회를 채웠으면 한다는 말을 했지만 누구도 그런 결과가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은 여기서도 유효했다.

1999년에 13편이 방송된 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가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프로그램 자체의 영향력과 여론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99년 당시 방송법 개정 국면에서 공영방송으로서 MBC의 정체성이 도마에 오를 때 이 프로그램은 가히 MBC의 수문장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여론선도그룹과 지식인들의 긍정적인 평가도 한몫을 했다.

우리 현실에서 방송은 부인할 수 없이 시대의 분위기와 흐름을 반영한다. 가령 1990년에 첫 방송을 한 [피디수첩] 은 노태우 정권 후반기에 각계각층에서 분출하는 민주화의 드센 욕구가 표출된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1993년의 KBS [다큐멘타리 극장] 은 김영삼 정권이라는 이른바 문민정부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999년에 첫 방송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를 그런 점에서 국민의 정부가 등장한 정권교체라는 시대의 산물로 보는 것은 그리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리고 이는 특정 정권과의 문제가 아닌 시대정신과의 만남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은 지난 7 년간 이 프로그램이 걸어온 길이 웅변하고 있다.

정작 제작진이 어렵게 느껴야 했던 것은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주요한 역사적 증인은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급작스럽게 돌아가시는 일이 많았다. 사건 수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현장보존과 목격자 확보다. 이 프로그램 역시 진실을 찾기 위하여 탐사저널리즘적인 접근을 통해 현장과 증인을 추적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시간의 경과와 기억의 쇠퇴, 그리고 알게 모르게 진행된 권력에 의한 선택적 은폐와 조작은 가장 큰 난관이었다. 특히 각종 기록이 비밀이란 이름으로 공개되지 않는 '비밀공화국'의 상황은 우리 현대사의 파행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이 자신의 치부를 은폐하거나 왜곡할 목적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차단하고 문서에 접근을 막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증언을 거부하는 왕년의 거물들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인터뷰를 끝내 거부하던 모 인사들을 얼마 후 신문의 부음란에서 발견하는 것은 결코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이었다. 결국 일방적 증언, 한풀이식 증언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그 때마다 제작진은 반세기 동안 기득권에 의해 누적된 역사적 편파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통산 평균 시청률이 두 자리 수자를 넘지 못하였으나 지난 7년간은 그래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에겐 행복한 시절이었다. 소수이긴 하지만 프로그램 마니아, 고정 시청자층도 형성되었다. 비제도권에서 수여하는 상이 대부분이지만 수십 차례의 상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역사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가 집요하게 제기됐다고 생각한다. 반민특위의 해체, 연좌제, 인혁당 사건, 북파공작원, 전태일 분신, 도시산업선교회, 녹화사업, 삼청교육대, 김기설 유서대필 사건 등 역대 정권이 자행한 사건들의 상처는 어둡고 깊었다. 한국 현대사에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을 시작하게 한 것도 뜻 깊게 생각한다. 도쿄 전범재판, 노근리 사건, 미국의 세균전 의혹, 에버레디 플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형, 푸에블로 나포사건, 김대중 납치사건, 박정희와 핵개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서울미문화원 점거사건, 94년 한반도 전쟁위기 등 거의 프로그램 전편에 걸쳐 있는 미국의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실증적으로 접근한 결과였다고 확신한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를 넘어 그야말로 이제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 아니 이 엄혹한 한국 현대사 앞에서 무엇을 더 할 것인가. 아직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다시 100편의 프로그램을 복기해 본다. 역사에는 비약이 없다는데 60년이 넘도록 꿈쩍도 않는 분단 구조하에서 정녕 무엇을 더 해야 할 것인지 자못 숙연해진다. 바라건대 너무 소박한(?) 희망일지 모르나 국가가 추진한 여러 사업에 대한 기록의 확실한 보존과 그리고 적확한 기준에 의한 문서공개의 전통부터 확립되었으면 한다. 혹시 이다음에 누군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를 할 경우를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