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양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방송 : 1999.9.12~ 일요일 밤 11시 30분
2005(3/20 첫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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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2000~1999
* 김환균| * 이정식| * 김동철| * 강지웅| * 유현| * 조준묵| * 장형원| * 한학수| * 박건식|
김동철 PD
   
- 1992년 MBC 프로덕션 입사
- ‘고문수사관-이근안’(1999)

-

'실미도 특수부대' (1999)


 

 Q1. 2005 시리즈에 선정한 아이템을 무엇인가?
        해당 아이템 선정 이유와 프로그램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A. 1977년 4월 20일, 전남 광주시 무등산에서 대대적인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러 갔던 당시 동구청 소속 철거반원 4명이, 자신의 집이 강제로 철거되고 불에 태워짐에
    격분한  박흥숙(당시21세)이라는 청년에 의해 쇠망치로 살해 당하게 되는데 언론은 그곳을
    '무당촌'으로 부르며 박흥숙에게 '무등산 타잔'이란 별명을 붙여 주는 등 이 사건이 마치
    사이비 종교 특유의 미신과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20대 청년의 난동인 듯 사건의 엽기성에 초점을
    맞추어 사실과 다르게 보도했다.

    결국 가난때문에 중학교 진학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도시빈민 박흥숙의 모습은 왜곡된 채
    1980년 12월 24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 사건을 가리켜 세칭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이라고 일컫는다.

    박흥숙이라는 젊은 청년은 왜 살인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는가?
    박흥숙의 살인사건 이면에 다른 모습은 없었는지? 혹시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취재를 하면서 느낀 점은 살인사건의 이면에는 1970년대 당시 도시빈민 문제가 감추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나는 박흥숙 사건을 통해서 본 1970년대 개발독재 시대(이때는
    새마을운동이 농민들을 개발 이데올로기로 동원하는 등 전국적인 캠페인이 있었던 시절이다)의
    도시빈민 문제를 다뤄보고자 한다. 아울러 사건의 사회적 엽기성 만을 부각시킴으로써
    도시빈민 박흥숙의 모습을 가려버린 언론의 사건 왜곡 사례를 재조명하여 당시 사회의 제도적인
    문제도 살펴보고자 한다.

 Q2. 2005 시리즈 방송을 준비하며.. (에피소드, 어려웠던 점, 나의 다짐 등)

   A. <무등산 타잔 박흥숙>이라는 아이템은 몇 년동안 "이제는..." 팀에서 꾸준히 나왔던 아이템으로
    약간의 취재를 하고나면 거리가 좁혀질 듯 하면서 좁혀지질 않아 "다음 기회에..."로 미뤄왔던
    그런 아이템이었다. 다시 말해 그리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은 아이템인 것이다.
    이 번에 나 역시도 다른 PD들이 겪었던 그런 과정에 빠져 헤매고 있었다.

    내 책상 앞에는 이소룡 닮은 모습으로 두 팔을 벌린 채 나를 응시하는 <무등산 타잔 박흥숙>의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을 보면서 나는 반문 한다. '살인자 박흥숙?' 아니면'불쌍한 박흥숙?',
    '왜? 저 사람은 살인자가 되어 짧은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나?'
    사진 속의 박흥숙은 나에게 쉽게 답을 주질 않는다.

    내가 너무 박흥숙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한 동안의 고민 끝에 나는 사진을 다시 본다.
    그 속엔 내가 늘 보아오던 <무등산 타잔 박흥숙>,<살인자 박흥숙> ,<불쌍한 박흥숙>도 아닌
    <도시빈민 박흥숙>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1970년대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의 또 다른 그림자인 "도시빈민"의 모습을
    인간 박흥숙을 통해서 재조명 하고자 한다.

 Q3. 연출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은.. 그리고 그 이유는?

   A. 1999년 12월에 방송이 나간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실미도 특수부대>편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 이유는 그 해 가을에 <고문 기술자 이근안 경감>을 거의 90% 취재를 하다가 이근안씨가
    자수하는 바람에 <이제는…>에 방송을 포기하고 당시 <PD수첩>팀에 특종으로 넘겨주었던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으며 그 때 풀이 죽어있던 내가 臥薪嘗膽 끝에 새로운 아이템으로
    <실미도 특수부대>편을 제작했기 때문에 더욱 애착이 간다.

    특히, 그때 당시 실미도 특수부대 소대장의 인터뷰를 허락 받기위해 소대장과 대작하다
    대낮부터 소주를 먹기 시작하여 새벽 2시까지 오기로 버틴 끝에 아침 7시에 카메라에 인터뷰를
    담을 수 있었던 일 등이 떠오른다.(그리고 '술병'이 나서 거의 며칠은 죽었었다)

    촬영 당시 실미도의 날씨도 무척 추워 고생 했었는데, 방송이 나간 후 <실미도 특수부대>에
    대해 널리 알려졌고 만 3년 뒤 2003년에 영화<실미도>가 개봉되어 공전의 히트를 내어
    더욱 기억에 남는다.  

 Q4. (프로그램과 별개의 질문) 내 인생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A. 내가 직접 이런 질문을 받으니 새삼 취재했던 사람들의 말들이 먼저 떠오른다.
   "아직은 말 할 수가 없다. 때가 아니다!" ... 역시 "이제는 말 할 수 있다"를 제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나 역시 멈칫 거리는데…  
   사실 나는 대학교 졸업앨범이 없다.
   졸업앨범 값 낸다고 부모에게 돈 받아서(80년대는 제법 큰돈 이었다) 영화보고 친구들과 어울려
   시국타령을 하며 술 먹었음. 그 때 어울렸던 친구들 모두 앨범이 없음.
   그래서 졸업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지 전혀 모름. 이것이 내인생의 "이제는..." 인가?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