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양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방송 : 1999.9.12~ 일요일 밤 11시 30분
2005(3/20 첫방송)
- 출사표
- 제작진&인터뷰
- 주요내용
- 7년간의 히스토리
- 포토! 역사의 현장
- 100회 특집 이벤트
- 100회 특집 페이지
다시보기
시청자 의견
제작진과의 대화
자료실
  - 수상내역
2004
- 연출에 임하는 소감
- 출사표
- 정길화 CP 인터뷰
- 제작진
2003
- 방송을 시작하며
- 제작진
2002
- 출사표
- 제작진
- 결산
2001
2000~1999
* 김환균| * 이정식| * 김동철| * 강지웅| * 유현| * 조준묵| * 장형원| * 한학수| * 박건식|
강지웅(康智雄) PD
   
- 1993년 입사
-
-
‘푸에블로 나포사건’(2001),
‘전향공작과 양심의 자유’(2001)
 
 

  Q1. 2005 시리즈에 선정한 아이템은 무엇인가?
         해당 아이템 선정 이유과 프로그램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A. 아이템은 "국풍 81"과 "5공화국의 3S정책"입니다.
      "국풍 81"은 1981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5일간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던 버라이어티 축제입니다.
      함께 일하는 82년생(!) 작가 선생님들은 전혀 기억에 없다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축제입니다.

      가수 이용씨가 국풍 가요제에서 '바람이려오'로 금상을 받고 일약 스타덤에 올랐죠.
      가요제 뿐만 아니라 민속축제, 연극제, 씨름, 8도풍물장 등등 각종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가
      여의도 광장을 가득 메웠답니다. 통금마저 풀렸던 해방구 여의도 광장!! 5일간 여의도 광장을
      다녀간 사람만 천만 명이 넘었답니다. '단군(^^) 이래 최대규모의 축제'라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수백의 목숨을 앗아간 광주항쟁이 불과 1년 전이었습니다.
      12.12와 5.18로 박정희 사후 권력의 진공상태를 장악한 신군부가 전남도청에 남아있던 시민군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것이 바로 1년 전이었습니다. 그때 흘린 피가 채 마르기도 전에 여의도 광장에서
      대축제라... 국민이 주인인 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뻔뻔한 일이죠.

      이런 문제의식으로 덤벼들었습니다. 근데 국풍을 파고 들어가보니 점입가경입니다.
      국풍의 배후엔 더 큰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음모가 뭐냐구요?
      프로그램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5공화국의 3S정책". 5공 정권 초창기에 광주를 무마하고 민심을 호도하기 위해 "3S정책",
      즉 '섹스 스크린 스포츠를 장려하는 우민화(愚民化) 정책'을 썼다는 것은 당시를 경험한 사람들에겐
      상식과도 같은 얘기입니다.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습니다. 통금해제, 두발과 교복 자율화,
      올림픽 유치, 프로야구의 출범, 향락산업의 번창, 에로영화의 기승.
      하지만 누가 어떻게 기획하고 실행했는지는 추측만 무성할 뿐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 밝혀낼
      만큼 시급하거나 가슴에 사무친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르죠 ㅠㅠ -.
      심지어 당시 집권세력이 '3S정책을 알고나 있었을까?' 의문을 제시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모든 궁금점을 낱낱이 파헤쳐 드립니다.
      5공 집권세력은 3S 정책에 대한 뚜렷한 자각과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5공 초창기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둘렀던 '개방화 자율화 다원화'가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닙니다.

      심각하게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천방지축 좌충우돌 블랙 코미디"5공화국의 3S 정책"!!
      개봉박두입니다.

  Q2. 2005 시리즈 방송을 준비하며.. (에피소드, 어려웠던 점, 나의 다짐 등)

    A.  프로그램이 "... 말할 수..."라 주된 촬영이 인터뷰입니다.
      취재하는 PD야 출연자와 열심히 대화하느라 잠시도 한눈 팔 새 없지만 뒤에 있는 스탭들은...
      특히 조명 스탭들! 조명장비를 셋팅하고 난 후 하릴 없이 퍼질러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데.
      조용한 방안에서 출연자의 나직한 인터뷰 목소리는 어찌나 '자장가'처럼 들리는지.
      간혹 정적을 깨는 코 고는 소리에 아연실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려웠던 점은 주로 섭외입니다. 다른 팀도 마찬가지겠지만 낯을 가리시는 분들이 많아서.
      특히 MBC하곤 상종 안하시겠다는 분들이 많아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명성이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섭외는 점점 어려워만 집니다.

      나의 다짐. "두드려라 열릴 것이오. 구하라 얻을 것이다"

  Q3. 연출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은.. 그리고 그 이유는?

    A. 사과나무. 사과나무 장학생 코너를 연출했는데,
      학생들을 위해서 뭔가 해 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Q4. (프로그램과 별개의 질문) 내인생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A.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닌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가 섭외하려고 전화하면 십중 팔 구는 이렇게 얘기하는데. 제가 똑같은 답변을 하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