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교양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방송 : 1999.9.12~ 일요일 밤 11시 30분
2005(3/20 첫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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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2000~1999
최승호 | 이채훈 | 김환균 | 한홍석 | 오상광 | 이모현 | 채환규 | 조준묵 | 이규정 |


1.약력

1967. 서울 출생
1986.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입학
1991. 입사

-주요 연출작 : 10시 임성훈입니다, 피디수첩, TV속의 TV, 다큐멘터리 성공시대,
와! e 멋진 세상 등

2.아이템 선정이유

‘동맹속의 섹스’ : 한반도에서 기지촌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공간이다. 아니 잊고 싶은 공간이다. 애써 무시하며 그 존재를 부정해왔지만 사실은 기지촌은 한반도의 모든 모순이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곳이기도 하다. 한미간의 민족주권의 문제, 분단의 문제, 빈곤의 문제, 성차별의 문제, 가부장제도의 문제 등등. 우리는 흔히 기지촌에서의 매매춘이 일부 타락한 여성들의 타락한 돈벌이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한미양국의 굳건한 안보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양국 정부 주도로 벌어진 일종의 공창(公娼) 관리 행위였다. 1970년대의 ‘기지촌 정화운동’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한미 양국의 추악한 매춘 거래와 이 가운데에서 철저히 이용당하고 버림받은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돌아보는 일은, 이 프로그램에서 유일하게 남겨진 인권의 마지막 사각지대를 아우르는 일이 될 것이다.

‘한미관계의 두 그림자-소파(SOFA)' : 미선이, 효순이 이전에도 이미 수많은 미선이, 효순이가 있었고 불평등한 소파는 있어왔다. 1966년 체결된 소파는 단순한 하나의 협정이 아니라 1945년 이 땅에 미군이 처음 발을 디딘 이후의 한미관계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바로미터였다. 이제 사람들은 소파 라는 말만 들어도 식상하게 생각하지만 1966년 첫 소파 체결 당시 한미양국의 서로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치열한 권력투쟁과 전략, 전술, 그리고 대타협의 과정을 본다면 아마도 우리가 소파에 대해 너무도 몰랐고 너무도 쉽게 개정을 논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해방후부터 1966년 첫 소파 체결까지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바라고 있는 평등한 소파 개정의 전제조건은 과연 무엇인지 밝히고자 한다.

3. 방송을 준비하며...

연출 경력 12년차의 흔히 말하는 중견 피디 소리를 듣는 연배가 되었지만 지금도 새로운 프로그램을 맡을 때마다 매 번 설레고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특히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더욱 심했는데, 아마도 그간의 이 프로그램이 쌓아 온 명성이 가져다 준 부담감이 더해진 때문일까! 제작에 들어가기 전 뭔가 도움이 될까하고 모니터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필모그래피와 각각의 작품들은 또 어찌나 대단하던지 차라리 보지 말 것을...
이후 두어달 동안 자주 악몽을 꿨다. 깨고 나면 무슨 꿈이었는지도 모를 불분명한, 그냥 막연한 무채색의 공간에서 길을 잃고 우왕좌왕 헤매는 꿈이었다. 꿈도 그러했고 프로그램의 진행도 그러했다. 모든 것이 혼돈이었고 미로였다. 하지만 그러기를 몇 달, 이제는 그 속에서 길을 찾고 방향을 잡아 나가면서 나 자신도 미처 몰랐던 우리 현대사의 한 부분을 이제 시청자들과 공유하려 한다.
누군가는 말했다. 안타까움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라고. 제작이 진행되면서 차츰차츰 진실이 베일을 벗는 동안, 처음엔 화가 났다. 이 땅이 싫었고 이 역사가 싫었다. 나는 왜 이러한 땅에서 태어났는가!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분노는 점차 안타까움으로 바뀌어갔다. 지난 6월, 시청 앞 광장을 붉게 물들이며 모두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던 시청자들의 깊은 조국애에,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내가 느낀 안타까움을 보탤 수만 있다면 지난 몇 달간의 나의 악몽은 행복한 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