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9일 (일) / 제 65 회
▶ 서해교전과 NLL / 연출 : 이채훈
한반도의 화약고, NLL
2002년 6월 교전 직후 언론과 정치권은 도주하는 북 경비정을 격침
시키지 않았다며 군의 실패한 작전으로 매도했다. 뿐만 아니라 99
년 1차 교전 당시 스틱스 미사일과 실크윔 미사일의 가공할 위력
을 평가했던 한 신문은 북한의 스커트 미사일 성능을 폄하하는 등
말을 바꾸면서까지 전쟁을 부추기기도 했다.
사실 서해 5도 주변 해역은 군함, 해안포, 미사일 등 남과 북의 모
든 해군력이 결집돼있는 한반도의 화약고. 군사적 분쟁 가능성이
높을뿐더러 분쟁이 벌어질 경우에는 양쪽의 집중화된 화력에 의해
서 확전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하지만 교전 3일만에 군은 교전
당시 우리 해군의 안일한 대처를 비난하는 보수 언론들과 정치권
의 강경한 여론몰이에 의해 선제공격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교전규
칙을 바꾸어버렸다. 경고방송 등 초기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경고
사격 및 직접 사격 단계에 돌입할 수 있도록 해상 교전규칙을 수정
한 것인데.. 이제 한반도의 화약고, 서해 5도 주변 해역에서의 충
돌 가능성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NLL은 해상 군사분계선인가, 불법적 유령선인가
1953년 7월 27일, 2년 6개월간의 기나긴 협상 끝에 결국 당시의 전
선 접촉선을 육상 군사분계선으로 하는 정전협정이 조인됐다. 하
지만 서해 5도만 유엔사 관할 하에 두기로 하고 해상 분계선에 대
해서는 합의하지 못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지금의 NLL이 실효적
인 해상 군사분계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전협정 직후인 53년 8
월 30일 유엔군사령관이었던 클라크가 설정, 북한에 통보했고, 이
에 대해 북한은 지난 50여년간 묵인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은 오히려 교전지역을 자기들 영해라고, 또한 NLL은 자신들이 인
정하지 않은 유령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73년 12월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서해 5도는 유엔사 관할이나 섬 주변의
물은 한방울도 손 못댄다''며 황해도-경기도 도경계선이 해상분계
선임을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그 후 매년 수차례의 NLL 월선을
감행, 99년 교전 직후 있었던 장성급회담 등 최근까지도 계속해서
NLL에 대한 이의를 제기해왔다.
미국 현지의 국립자료보관소에 보관된 수많은 정전협정과 클라크
관련 자료들에서도 NLL이 53년에 설정됐다는 증거는 찾을 수가
없었다. 또한 국방부 자료실에서 어렵게 해군본부 작전기밀 제
1235호로 하달한 작전명령이 있었다는 사실은 발견했지만, 3급 비
밀이었던 문서는 소각되고 없었다. 과연 NLL은 남북이 합의한 해
상 군사분계선인가, 아니면 유엔사 측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작전
명령선''에 불과한 것인가.
전 유엔사 특별고문 이문항 씨, 58년 설정설 주장
30년간 유엔사 특별고문이었던 이문항 씨는 53년에 NLL이 설정됐
다는 주장들을 부정한다. 56-7년부터 시작된 남한 어부들의 납북
을 막기 위해 어로저지선을 설치하고 이와 함께 북한 해군의 성장
을 견제, 충돌을 막기 위해 일방적으로 58년 NLL을 설정한 것이라
고.
아울러 유엔사 문서들 어디에서도 NLL이 53년에 설정됐다는 내용
을 본적이 없고, 지금까지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정전협정 당사자였던 유엔사는 북측의 NLL 월선에 대해 영해 침
범이라는 언급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89
년 국방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유엔군사령관은 NLL의 단순한 월
선은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NLL 문제
는 남북에 의해 해결돼야한다는 것이 현재 유엔사의 공식 입장이
다.
77년 미 국무성 지도 최초 공개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박춘호 교수에 따르면, 그리고 한반도
주변 바다에는 확정된 경계선이 없고, 2002년 고속정이 침몰한 지
점은 연평도에서 14해리 밖에 있는 공해상이라고. 더불어 NLL만
넘어오면 영해 침범이라고 몰아부치는 건 잘못된 인식이라고 경고
한다. 77년 미국 국무성에서 발간한 지도에서 연평도 주변 해역 대
부분이 북한의 영해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한 NLL 문제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국제해양법재판소
에서도 해결할 수 없다고 한다. 결국 남북이 해결해야하는 과제로
남겨진 것인데..
지난 2월 20일 북한 전투기 한 대가 NLL을 남하했다. 바로 앞서 북
측은 판문점 대표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의 봉쇄는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반박했다. 더 이상 북한이 정전협정을 이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3월 1일 연평도 어장
에서는 또다시 꽃게잡이가 시작됐다. 동해 바닷길에 이어 육상의
군사분계선도 열렸지만 서해는 여전히 한반도의 화약고로 남아있
다.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과 확전 가능성이 잠재돼있는 곳, 서해상
에서의 또다른 희생을 막기 위해서 NLL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협
상을 서둘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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