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 7일 (일) / 제 55 회

<''정화작전, 삼청계획 5호''의 진실>

삼청교육대 사망자 ''54명 아니다''

88년 정부가 발표한 삼청교육 사망자 54명은 사실과 거리가 먼 것임이 군관계자의 
직접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당시 삼청교육대 교관을 지냈던 o씨는 자신의 부
대에서만 3명의 자해 사망자가 있었던 것으로 증언했다. 이들은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못, 모기약 등을 삼키고 사망했으며, 이들 사망자는 정부 발표 사망자 명단에서
는 누락됐다고 증언했다. 삼청교육대 조교를 지냈던 o씨도 자신이 조교로 있었던 연
대에서만 11명이 사망했고 이들의 개인카드를 자체 폐기했다고 증언해, 국방부의 사
망자 수 축소의혹을 강력히 뒷받침했다.
또한 당시 합수부 수사관으로 삼청교육대 핵심 감찰업무를 담당했던 o씨는 자신이 
직접 확인한 사망자만도 50명 이상에 달하며, 최소한 수백명이 사망했다는 충격적
인 증언을 했다. 그는 정부발표 사망자 54명은 전혀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증언했
다. 

여자삼청교육대  ''입소 인원 축소, 사망자도 있다''

1980년 실시된 삼청교육에는 여자들까지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대상은 주로 윤락여
성, 포주, 숙박업자, 계주 등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평범한 가정주부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입소하면서부터 알몸 신체검사를 받는 
등 견디기 힘든 모욕을 당해야 했으며, 남자들도 받기 힘든 공수훈련을 받아야 했
다. 이들의 교육을 담당한 사람들은 여공수 하사관들로,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이들
로부터 참기 힘든 욕설과 구타 및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피해자들은 교육도중 사망자를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해, 여자삼청교육대에서의 사
망자 은폐의혹을 낳고 있다. 여자 삼청교육 사망자는 지금까지 전혀 알려진바 없었
다. 그러나 여자삼청교육생 사망은 군관계자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되었으며, 지금
까지 발표된 입소자수도 실제보다 축소된 것으로 취재결과 확인되었다. 당초 국방부
가 발표한 여자삼청교육생은 319명. 그러나 화천 오음리에서만 513명이 교육을 받
은 것으로 드러나, 여자 입소자 수 축소 이유에 의혹이 쏠리고 있다.

14살 중학생과 고등학생도 삼청교육

삼청교육 대상에는 고등학생도 대거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
다. 1980년 당시 문교부는 각급 학교에 정화위원회를 설치하고, 품행이 불량하거나 
선도가 불가능한 학생을 차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숫자는 각 학교별로 
할당이 되었으며, 이를 거부한 학교에는 상당한 압력과 불이익이 가해진 것으로 취
재결과 드러났다. 
학생들의 검거는 심지어 수업중인 교실 안에서 일어나기도 하였으며, 두 번씩 삼청
교육대에 끌려가 끝내 퇴학처분된 학생까지 있었다. 삼청교육을 받은 학생은 문교부
가 공식적으로 밝힌 980명, 그러나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취재 결과 드러
나고 있으며, 취재과정에서 15세 미만의 중학생도 다수 삼청교육 대상이 되었던 것
으로 확인되고 있어 충격을 더하고 있다. 

삼청계획5호안은 ''상부로부터 떨어졌다''

1988년 국회 5공특위 청문회 당시 김만기 위원장은 자신이 책임을 지고 입안을 한 것
으로 주장했으며, 허삼수 정화분과 위원은 통치권의 일환으로 순수한 민생치안의 차
원에서 기획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번 취재를 통해 삼청계획안이 정화위원회가 
아닌 상부에서 떨어졌으며, 정화위원회 내부에서 군 출신이 주도했다는 증언이 당
시 정화위원으로 직접 참여했던 한 인사로부터 나왔다. 이는 그동안 삼청계획이 국
보위 정화분과위원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