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26일 (일) / 제 59 회
▶ 한반도 전쟁위기 1994 · 2003 / 연출 : 최승호
*전쟁위기 속의 무기력한 한국 지도부-미국은 협의하지 않았다
94년 1월부터 미국 정부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
한 군비증강을 실행에 옮겼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들여오고 아
파치헬기, 대포병레이더 등 많은 군비가 증강됐으며 주요 항만과
공항을 점검했다. 만약의 경우 영변 폭격을 하기 위해 전략 공군
의 점검도 이뤄졌다. 폭격에 사용될 레이저 유도폭탄의 부족분을
보충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영삼대통령의 정부는 미국이 유사시 전쟁을 결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군비증강에 대한 정보는 적시에 제공되지
못했고 미국 정부가 결심하면 통보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미국방
성은 영변폭격을 고려하며 시뮬레이션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한국
국방부는 물론 대통령에게도 자신들이 대안의 하나로 영변폭격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94년 6월 위기가 극점에 달하자 미국은 한반도에 본격적인 병력 배
치를 결심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대규모 병력 배치에 대해 북한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보냈다.
병력 증강 통보를 받은 레이니 주한미대사는 청와대로 가서 주한
미국인을 소개시켜야겠다고 통보했다. 그제야 청와대는 미국이 전
쟁을 감수할 수 있는 태세라는 것을 알아채고 우왕좌왕하기 시작
했다. 김영삼대통령은 레이니대사에게 “당신들이 주한미국인을 소
개하려는 것은 북한과 전쟁을 하려는 것 아니냐. 절대로 전쟁은 안
된다. 클린턴대통령에게 그렇게 보고하라”고 말했다. 다음날 클린
턴대통령이 전화를 해오자 김영삼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내가 대통
령으로 있는 이상 우리 60만 군대는 한 명도 못움직입니다. ... 당
신들이야 비행기로 공습하면 되지만 그 즉시 북한은 휴전선에서
남한의 주요 도시를 일제히 포격할 겁니다.”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취재에 의하면 미국은 당시 영변폭격을
감행하려는 순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병력증강이 이뤄질 경우 북
한이 휴전선에서 군사행동을 시작하고, 북한을 선제 제압하기 위
해 미국이 영변 폭격을 포함한 대규모 폭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
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김영삼 대통령을 비롯한 수뇌부는 미
국이 어떤 군사적 대안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4천만
국민의 생존권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지도자인 대통령이 미국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한미관계의 불균형과 군
사적 종속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순간이었다.
*94년 위기는 막을 수 있었다.
94년 6월 전쟁위기가 고조됐을 때 카터 전대통령은 북한을 방문했
고 김일성주석과의 합의가 이뤄져 위기상황이 종식됐다. 이후 미
국과 북한 협상팀이 ‘카터-김일성 합의’를 몇 달 동안 수정 보완한
결과 나온 것이 ‘제네바 합의’다.
그러나 과연 전쟁위기를 겪지 않았으면 그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
을 것인가. 당시 미국 협상팀의 핵심인사들은 인터뷰에서 ‘제네바
합의’의 틀이 이미 93년 10월에 북한에 의해 제시됐다고 말했다.
협상팀의 일원이었던 케네스 퀴노네스씨(94년 당시 미국무부 북한
담당 데스크)는 “북한의 제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미국과 북미
간의 대화에 시샘을 한 남한이 협상을 그르쳤다”고 비판했다.
퀴노네스씨에 의하면 93년 10월 자신이 코델 애커만의원(동아시
아 태평양 문제 담당 하원 외교소위원회 위원장)의 일행으로 북한
을 방문했을 때 북한측 협상팀 수석대표인 강석주(당시 북한 외교
부 부부장)에게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원하는 것과 양보할 수 있는
것을 문서에 적어달라고 요구했으며 강석주는 ‘북측의 요구사항
과 양보할 수 있는 사항’을 적어 그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그 내용
은 미국이 경수로를 제공하고 외교관계 정상화 등 관계 증진을 약
속하면 북한은 핵시설에 대한 임시 및 정기사찰을 허용하고, 핵시
설을 동결한다는 것이었고 이는 전쟁 위기 이후 체결된 94년 10월
제네바 합의의 내용과 거의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 내용은 ‘일괄타
결안’이라고 불렸는데 당시 퀴노네스는 물론 갈루치 미국 협상팀
수석대표도 이 내용이 합리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북한과의 ‘일괄
타결’을 시도하기로 했다.
*2003년,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것인가?
부시대통령은 여러 차례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다”고 밝혀왔지
만 미국의 군사전략은 그렇지 않다. 2002년 9월 발표된 ‘국가안보
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는 북한을 선제공격 대
상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NPR(핵태세검토보고서)에서는 핵
무기를 이용한 선제공격이 가능한 국가로 북한을 들고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미국의 군사전략과 선제 공격의 가능성을
검토해 본다.
*미국은 한국과 협의할 것인가?
2002년 여름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
는 방안’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이 보고는 제거 행동에 나설 때 한
국정부와 사전 협의를 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었다고 보도됐다. 취
재진이 만난 미국 전문가들 대다수는 한국 정부와의 협의 없는 북
한 공격이 불가능하다고 부인했지만 일부 전문가는 충분히 가능하
다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한국정부와 미국정부간에 북한 핵문제
에 대한 대처전략이 다를수록 미국은 만약의 경우 ‘협의하지 않은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94년 당시 미국정부가 보여준 태도를 볼 때 전혀
기우가 아니다. 설사 협의한다해도 최종 순간의 협의는 한국으로
하여금 선택지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전문
가들은 이것이 한미관계의 현실이며 타국에 안보를 맡기는 국가
의 한계라고 말한다. 한국군의 전시 작전권은 주한미군사령관에
게 있으며 ‘데프컨 3 이상의 경계 태세가 되면 작전권은 자동적으
로 미군에게 넘어가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한국의 현실은 전쟁이
냐 평화냐를 우리 손으로 결정할 수 없는 딜레마를 노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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