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3일 (일) / 제 48 회

<김일성 항일투쟁의 진실>

1. 김일성은 가짜다?

1930년대 만주지역에는 김일성이라는 이름의 독립군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루 저
녁에도 몇 백 리를 간다는 <전설의 김일성 장군>은 당시 만주의 주민들에게 조국독
립의 희망을 안겨주고 있었다. 그의 이름이 국내에 알려진 것은 이른바 보천보 습격 
사건을 통해서였다. 1937년 6월 4일 압록강 연안, 함남 갑산군 보천보의 일본주재소
등을 김일성 부대가 습격한 것을 당시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은 크게 보도하였다. 이
후 1945년 10월 14일 평양환영대회에 소련 군정과 함께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
낸 김일성. 오랜 항일투쟁을 해온 전설적 장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은 모습에 사
람들은 김일성이 가짜라고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 후. 김일성은 조선민주주
의인민공화국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라 오랜 기간동안 북한을 통치하며 자신의 항
일경력을 부풀려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 가짜설은 박정희 정권 하 <이명영>이라는 학자에 의해 집대성된다. 만주군
관학교를 나와 장교로 복무했던 박정희에게는 북한 김일성의 항일경력이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 김일성을 연구한 이명영은 <4인의 김일성론>에서 북한의 김
일성은 보천보 습격 사건을 이끈 독립운동가 김일성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명영
의 저서를 참고한 허동찬 역시 <2인의 김일성론>을 주장하며 북한의 김일성이 자신
의 항일투쟁을 과장했다고 주장한다. 

전 남로당 총책을 역임한 박갑동이 말하는 가짜 김일성, 조선민주당 조만식의 비서
를 지낸 박재창이 말하는 김일성, 전 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 선우진, 전 광복군 김우
전, 김유길이 김일성 가짜설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2. 중국현지취재

제작진은 김일성의 항일운동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중국현지취재를 통해 방송 사상 
최초로 중요 시기별로 김일성의 유격활동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눈이 많이 내린 
악조건 속에서도 중국 <안도>를 찾아가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이 살았고, 김일성
이 항일유격대 조직을 결의했다는 소사하 마을을 찾을 수 있었다.
중국 <왕청>을 찾아간 제작진이 발견한 것은 <소왕청항일유격대근거지>였다. 안도
의 유격대를 이끌고 왕청유격대와 합류한 김일성은 유격대의 정치위원으로서 1933
년 봄, 이른바 소왕청 전투에 참가하여 일제토벌대를 상대했다. 왕청유격대원들이 
만든 유격근거지는 과연 어떤 곳인가? 1940년 3월, 김일성 부대는 대마록구 전투를 
치르게 된다. 대마록구 또는 홍기하 전투라고 불리는 이 전투에서 김일성이 지휘하
는 제2방면군이 매복작전을 펼쳐 일제토벌대 145명의 마에다 부대에 치명적인 타격
을 입힌다. 그 전말을 알기 위해 <홍기하>를 취재, 세종연구소 이종석 박사와 함께 
<홍기하전투유적지>기념비를 중국현지에서 최초로 확인하였다. 또한 김일성이 다
녔다는 길림 육문중학을 현지 취재하였다. 송화강 강변에 위치한 육문중학에서 김일
성은 과연 어떤 어린시절을 보냈는가?

3. 사상최초 자료공개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선, 김일성의 소년시절부터 45년 해방까지의 일대기가 담긴 사
진들이 총망라되었다. 또한 김일성이 37년 보천보 습격 사건에 가담했음을 증명하
는 유일무이한 문헌 <혜산사건 판결문>과 김일성의 유격대 시절부터 88여단 시절까
지 함께 한 여성 빨치산 대원 <김선>, 이미 고인이 되었으나 그녀가 남긴 증언을 비
롯하여 동북항일연군시절부터 88여단 시절까지 김일성의 상관이었던 중국인 <주보
중>이 쓴 일기를 최초로 공개한다. 주보중은 부하였던 김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