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9월 12일 / 제 1 회

서울, 제주도, 미국 등 6개월여의 현지 취재 통해 제주 4·3과 직접 연관있는 증언자들
의 증언과 자료 확보,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제주 4·3의 진상 규명.

※ 증언과 비밀문서 통해 밝혀진 진실들 넷 

1. 대량학살 계획인 제주 초토화 작전에 미국 책임을 밝히는 증거 확보  
2. 좌익 토벌로 인한 희생자의 대다수가 양민임을 밝히는 증거 확보  
3. 제주 4·3을 일으켰던 좌익 세력의 실체 확인  
4. 새롭게 드러난 양민 학살 매장지 공개


해방 직후의 혼란 정국에서 빚어진 현대사의 최대 비극 제주 4·3! 
5·10 단선반대를 기치로 시작된 좌익 무장봉기는 이후 군·경 진압군의 가혹한 토벌
이 시작된 이후 제주도 전체를 피로 물들게 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30만 제주도 인
구에서 공식적인 희생자만도 3만여명에 이르는 등 많은 사람들이 공산 폭도라는 이
름으로 희생당했는데….

MBC-TV가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 첫 시간으
로 ''제주 4·3''이 9월 12일 밤 11시 30분에 55분동안 방송된다. ''제주 4·3''에서는 6개월
여간에 걸친 서울, 제주도, 미국 등 현지 취재를 통해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증언
자들의 증언과 자료를 확보하여, 반세기가 지나도록 역사 속에 묻혀 있었던 제주 4·3
의 진상을 규명한다.

☞ 주요 내용 - 증언과 비밀문서를 통해 밝혀진 진실들! 

 1. 대량학살 계획인 제주 초토화 작전에 미국 책임을 밝히는 증거 확보!

제주 4·3은 남한이 미군정의 통치하에 있었던 1948년 4월 3일 발생했다. 이 시기 미 
군정은 남한 전반에 걸쳐 치안과 행정을 총괄하고 있었다. 따라서 제주 4·3 진압 과
정에서 미국의 책임 부분을 밝히는 것은 진상을 밝히는 데에 중요한 과제였다.

당시 제주도 주둔 9연대 故김익렬 연대장도 자신의 유고에서, 초기 진압 과정에서 
미 군사고문단으로부터 강경 진압인 초토화 작전 제의를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하
지만 미국은 대량 학살 계획인 초토화 작전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 일어났기 
때문에 강경 진압에 대한 책임은 남한 정부가 져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이번 취재 과정에서 초기 진압과정에서부터 초토화 작전까지 미국의 책임을 
밝히는 결정적인 문서와 증언을 확보했다. 미 극동 함대와 제3함정 소속 함대가 공조
해서 제주 인근 해안을 봉쇄하고 있었다는 문서와, 이를 뒷받침하는 당시 계엄사령
관이었던 남상휘 장군의 증언, 그리고 "한국군은 인식하지 못한 채 미국을 대신해 피
를 흘리고 있다."는 내용의 당시 미 군사고문단 로버츠 단장의 개인 비밀 편지를 전
격 공개한다.

2. 좌익 토벌로 인한 희생자의 대다수가 양민임을 밝히는 증거 확보! 

제주 4·3이 발발하자 이승만은 "제주도에 빨갱이를 빨리 소탕하라."고 말한다. 또한 
경무부장인 조병옥도 무조건적인 소탕 작전을 명령하는 등 제주도를 좌익의 소굴로 
보는 것이 당시 지도층의 전반적인 생각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학살된 3만여 명의 희생자들은 지금껏 공산 폭도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어렵게 입수한 당시 한국 군사고문단 반더풀 상사의 비밀 편지에 의하면 3만
여 명의 희생자 가운데 다수가 무고한 양민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3. 제주 4·3을 일으켰던 좌익 세력의 실체를 확인! 

일본 나라현에 거주하고 있는 前무장대원 김시종씨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50년만
에 제주 4·3과 남로당과의 관계, 그리고 당시 무장대의 실체를 증언한다. 그는 증언
에서 제주 4·3은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이 없는 상태에서 모험주의적으로 일어난 봉
기였다고 고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