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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황병국 감독 "배우는 이제 그만, 연기보다 연출이 더 쉬워" [영화人]

기사입력2025-05-14 16:26


영화 '야당'으로 14년 만에 메가폰을 든 감독 황병국을 만났다. '야당'은 대한민국 마약판을 설계하는 브로커 ‘야당’,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검사’, 마약 범죄 소탕에 모든 것을 건 ‘형사’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엮이며 펼쳐지는 범죄 액션 영화.

영화 '태양은 없다'의 조감독 출신으로 '나의 결혼 원정기', '특수본'의 연출, '부당거래', '의뢰인', '고령화 가족', '베테랑', '내부자들', '검사외전', '아수라', '서울의 봄'의 조연, 단역, 우정 출연 등 다수 작품에서 배우로서, 그리고 감독으로서 다양한 경력을 쌓아 온 황병국 감독이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라는 허들이 있는 '야당'임에도 개봉 3주 만에 250만 관객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뿐 아니라 2025년 한국영화 개봉작 흥행 1위를 달성, 개봉 이후에도 무너지지 않는 실관람객 평점 등 놀라운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야당'의 황병국 감독 "배우는 이제 그만, 연기보다 연출이 더 쉬워" [영화人]

"'야당' 연출자 황병국"라는 소개에 놀라는 이들도 있겠지만, 황 감독의 영화 인생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그 시작점은 다름 아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E.T."였다. "어릴때 그 영화를 보고 영화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영화감독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스필버그 같은 감독이 되고 싶었냐는 질문엔 고개를 갸웃한다. "꼭 그분처럼 되고 싶다기보단,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웃음과 행복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말이죠."

영화에 대한 꿈은 해외 유학으로도 이어졌다. 일본에서 영어 공부를 했던 특별한 이유도 있었다. "어려서부터 영화의 매력에 빠져 형들이랑 프랑스 문화원 같은 곳에서 영화를 자주 봤어요. 그때 본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작품에 큰 충격을 받았고, 그분이 만든 학교에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황 감독은 일본 영화학교에서 대학수업을 받고 이후에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영화 교육의 차이를 체감했다.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건 시나리오를 공모해서 뽑힌 작품만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는 시스템이었어요. 제작비도 학교에서 지원해줬고, 상영 후에는 전교생과 교수들이 모여 냉정한 품평회를 했죠. 눈물을 흘리며 뛰쳐나가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그런 문화는 없었던 것 같아요."

한국과 일본 영화 교육을 비교하며 그는 "한국은 매 학기 단편을 무조건 만들어야 하니까 때론 시나리오가 부족한 상태에서 억지로 찍게 되기도 해요. 반면, 일본은 선별된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저에겐 더 맞았던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황병국 감독은 일본에서 유학한 뒤 본격적으로 한국 현장에 뛰어들었고, 동시녹음과 연출부를 거쳐 2005년 "나의 결혼 원정기"로 데뷔했다. "정말 좋아하는 영화고, 제 인생의 영화 같아요. 하지만 시장이 변했죠."

그는 미드 '24'나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작품들이 유행하던 시기를 회고하며, 관객이 원하는 이야기의 방향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나의 결혼 원정기' 같은 영화는 이제 올드한 스타일이 되어버렸어요. 그런 영화엔 투자가 잘 이뤄지지도 않고요."

그래서 그는 주어진 시나리오를 연출한 '특수본', 그리고 미국식 시리즈물의 구조를 실험한 '오프라인' 같은 작품들로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오프라인은 저한테 하나의 터닝포인트였어요. 이야기의 결을 다르게 가져가보려 했던 실험이었죠."

이렇게 영화 감독의 길을 걷던 황병국 감독은 뜻밖에 배우로서도 긴 시간 현장을 지키게 된다. 연출부로 일하던 시절, 김성수 감독의 작품마다 한 신씩 얼굴을 내비쳤던 그는 이후 자연스럽게 연기 활동을 병행하게 됐다. "왜 저를 출연시키셨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근데 늘 매 영화마다 한 씬씩은 출연했죠."

연기의 시작은 대학원 시절, 박정범 감독(훗날 '무산일기' 연출)의 단편영화에서였다. "40대 공장장 역할을 맡아달라고 해서 그냥 품앗이 개념으로 출연했는데, 그 작품이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그 영화를 심사했던 류승환 감독의 눈에 띈 그는 이후 류 감독의 단편 프로젝트에 캐스팅됐고, 이는 장편영화 '부당거래' 속 국선 변호사 역할로 이어졌다.

작은 역할이었지만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마인드였기에 그냥 현장에 갈수 없었다고. "실제 국선 변호사를 두 분 만나서 취재도 했어요. 한 건당 받는 수당이 29만7천 원이더라고요. 그런 것들도 다 감안해서 캐릭터를 준비했죠." 촬영 전날, 감독이 의상을 바꾸는 디테일 하나에도 그는 방향을 읽었다. "처음엔 아주 단정한 슈트를 입혔는데, 감독님이 후줄근한 옷으로 바꾸셨어요. 그걸 보고 아, 이 캐릭터는 전형적인 변호사가 아니겠구나 싶더라고요. 밤새 내일 연기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원래 대본에 없었던 '제가 국선 변호하면 얼마 받는지 아세요? 30만원 받아요, 30만원' 대사도 만들어서 넣고 장면의 디테일들을 고민해갔죠."

이후 그는 1년에 몇 편씩 꾸준히 배우로 출연했다. 어떤 때는 아는 감독의 요청으로, 또 어떤 때는 전혀 모르는 후배 감독들의 현장에도 기꺼이 섰다. "감독도 현장을 떠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직접 영화를 찍지 않더라도 현장에서 스태프와 배우들을 익히고, 새로운 시스템도 보고. 저한테는 좋은 훈련이자 경험이었죠."

'야당'의 황병국 감독 "배우는 이제 그만, 연기보다 연출이 더 쉬워" [영화人]

연기를 통해 그는 때때로 현장의 기쁨과 동시에 쓸쓸함도 느꼈다고 고백한다. "촬영장에 가면 되게 좋아요. 현장 밥차도 먹고, 오랜만에 스태프들이랑도 만나고. 근데 촬영 끝나고 집에 혼자 돌아올 때는 속상하더라고요. 저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는데…."라며 황병국 감독은 울컥하기도 했다.

그런 마음들이 쌓여, 결국 지금의 영화 '야당'으로 이어졌다고 그는 말한다. "그때그때 속상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차곡차곡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그렇게 해서 지금 이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황병국 감독은 연출자이자 배우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레 배우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실 감독들이 배우를 잘 모를 때가 많아요. 현장에서도 스태프들과는 친형제처럼 지내지만, 배우와는 살짝 거리감이 있죠." 감독과 배우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서게 해준 것은 직접 연기 현장을 경험한 덕분이었다.

연기를 해보니 배우의 입장에서 보이는 세계는 확연히 달랐다. 특히 단편적인 장면만을 받고 연기를 해야 할 때, 전체 맥락을 모르고 감정을 설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길도 가봤다, 저 길도 가봤다 하면서 여러 시도를 하게 되는데, 그러면 에너지 소모가 굉장히 커요."

그래서 그는 연출자로서 배우들에게 최대한 명확한 길을 제시해 주려 했다고. "저는 배우들에게 확실한 디렉션을 주고, 그 안에서 준비해서 와서 모든 것을 쏟아붓고 갈 수 있게끔 하는 편이에요. 그게 배우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다른 감독의 작품에 배우로 출연할 때도 자신만의 준비 방식은 남다르다. "감독이 감독을 캐스팅한다는 게 쉽진 않지만, 연출자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지점들을 더 준비해가려고 하죠." 다만, 향후 배우로서 더 보여주고 싶은 바는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연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저는 연출이 조금 더 쉽습니다. 연기는 감히 제가 잘한다고 말할 수 없는 분야예요."

그런 그가 연출자로서 더욱 펼쳐보고 싶은 세계는 사회적 맥락 안에서의 사람들 이야기다. "기술적 성취보다는 우리 사회, 우리 공동체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이번 영화 '야당'처럼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작품에 대한 애정도 깊다. 특히 그는 최근 수년간 깊이 취재해온 '마약' 문제를 언급하며, 언젠가 이를 본격적으로 영화화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마약 이야기를 꼭 한번 제대로 다뤄보고 싶어요. 취재를 하다 보니 점점 사명감이 생기더라고요.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더 커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그 심각성과 위험성을 알리고 싶어요."

그에게 연출은 단순한 이야기 전달이 아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함께 들여다보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더 많은 질문을 품고, 더 많은 이야기를 준비하는 그다. '야당'의 시즌2 여부는 아직 미정이지만, 그의 다음 행보는 이미 또 다른 현실 속으로 향하고 있다.

iMBC연예 김경희 | 영상 오창종 | 사진 고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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