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하지만 위험하다. 웹2.0시대, 인터넷 주권을 사용자 중심으로 돌린다는 점에서 ‘UCC 열풍’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아직 UCC는 무질서와 혼돈의 미디어다. 넓고 깊은 UCC의 바다는 조작의 흔적을 감쪽같이 숨기고, 나의 창작물에서 쉽게 내 이름을 지워버리기도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낚이기만 할 것인가, 위험하고 믿을 수 없다고 피하기만 할 것인가. UCC 열풍을 둘러싼 고민들을 들여다봤다.
▲ ‘약일까, 독일까’ 고심하는 기업들
기업들은 ‘UCC 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잘 이용하면 수십억원의 광고 비용을 절감하고 더욱 쉽게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지만 반대로 하나의 동영상이나 글로 인해 애써 쌓아온 기업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통제불가능한 상황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정보들이 계속 유통된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지난 14~15일 열린 ‘웹2.0&UCC 마케팅 컨퍼런스 2007(플루토 미디어, 코리아인터넷닷컴 주최)’에서는 기업들의 UCC 활용방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논의됐다. ‘메트릭스’의 조일상 대표는 “최근 매스미디어가 소재 발굴을 인터넷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 인터넷 상에서 논란이 시작되면 곧바로 증폭되는 양태를 띤다”고 지적하고 “구매에 미치는 영향을 넘어서 잘못 대응할 시에는 기업이 중대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누리꾼들은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를 ‘大기업’과 ‘小비자’의 관계로 파악하고 똘똘 뭉치는 경향이 더 강해진다. 잘 알려지지 않은 양질의 제품에 대한 정보도 빠르게 퍼지지만, 억울한 일에 대한 경험담이나 불량제품에 대한 정보는 ‘고발심리’를 타고 더욱 빠르게 유통된다. 기업들은 광고모델들의 이미지 실추만큼이나, 프로블로거들 혹은 누리꾼들 사이에서 강력한 ‘구력(口力)’을 가진 이들의 손끝에 신경쓰게 됐다.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시위는 설득과 타협으로 해결할 수도 있지만,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불매운동은 수습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위험하지만 잘만 이용하면 상상 이상의 효과를 낼 수도 있다. ‘크림에이드’의 강찬구 대표는 “블로그를 잘만 활용하면 ‘일석N조(一石N鳥)’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강대표는 ‘구글’과 ‘애플’, ‘닌텐도’ 등의 기업이 블로거들 사이에서 인기인 이유로 고객들의 이야기를 적극 수용·공유하는 점, 고객과 투명하게 소통(communication)하는 점 등을 꼽았다. 강대표는 이어 “소통과정이나 내용이 즐겁고, 입소문을 많이 탈수록(viral) 더욱 좋다”며 “이처럼 활발한 상호작용은 기존 열성고객들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한편 잠재고객들을 매료시킨다”고 분석했다.
기업이 UCC를 통해 얼마나 긍정적으로 다가가느냐는 사용자들에게 ‘즐길거리’를 얼마나 제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좋은 제품, 서비스와 함께 새로운 정보, 새로운 아이디어로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즐길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 중요해졌다. 옥션의 최상기 이노베이션마케팅팀장은 “쇼핑은 단순히 사는 것만이 아니라 즐기는 것(Shopping is not only ‘Buying’, but ‘Playing’)”이라고 분석했다. 기업의 화법(話法)을 바꾸는 것이다.
대기업보다는 인터넷 기반의 중소기업들이 UCC를 마케팅에 훨씬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옥션의 미용세제 분야 최고 매출은 수제 비누를 만들어 파는 한 주부가 올리고 있다. 지난해까지 해당분야 최고 매출은 대기업의 폼클렌징이 차지했으나 소비자들의 호의적인 상품평에 힘입어 순위가 바뀐 것이다. 옥션 소비자들은 특정 택배서비스에 대해 잇따라 불만을 제기해 택배 업체들의 서비스 품질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다음, 네이버, 엠파스, 싸이월드 등도 동영상 UCC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검색기능에 동영상 검색기능을 추가하고 더 많은 동영상 UCC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미 상당한 수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포털사이트들도 동영상 전문 사이트들과 손잡고 그들로부터 UCC를 제공받고 있다.
▲다다익선 UCC, 저작권 문제는?
기업들은 더 많은 화제 UCC를 만들어내고, 더 많은 사용자들의 참여를 바라지만 콘텐츠 저작권에 대한 문제는 명확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특히 방송사들의 경우 저작권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방송은 우선 UCC 양산의 기반을 조성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간의 상호발전을 꾀하는 모양새다. 주요 방송사 홈페이지는 UCC 동영상의 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달초 KBS가 ‘내콘’(http://ucc.kbs.co.kr), 지난해 여름 SBS가 ‘넷TV’(http://netv.sbs.co.kr)란 웹 상의 공간을 각각 설치했다. 이는 누리꾼들이 각종 방송 콘텐츠의 패러디 동영상을 게재할 수 있도록 한 사이버 공간이다. MBC도 최근 기존의 ‘드라마펀’(http://dramafun.imbc.com)을 개편해 네티즌의 참여 기회를 늘렸다.
MBC는 2월중 인기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미방영 영상을 홈페이지에 클립(수분짜리 짧은 동영상) 형태로 제공할 예정이다. MBC 국내사업팀 관계자는 “봄개편 때 다른 포털에도 동영상 클립을 제공할지 여부를 놓고 논의가 진행 중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MBC ID ‘드라쿨라’ ‘도깨비’ 등 누리꾼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각종 드라마를 패러디하고 있다. 홈페이지에는 이들을 위해 별도 메뉴를 열어 활동기반을 마련해줬다. SBS 홈페이지도 유능한 UCC 생산자 50명을 ‘전문 콘텐츠 크리에이터’라는 직함을 주고 활동을 보장하고 있다.
불법복제가 만연한 동영상 UCC 분야에서 원료 무상제공 이벤트를 벌여 UCC를 양성화한다는 게 방송사들의 방침이다. ‘문화 콘텐츠 공급’을 통한 UCC의 저변 확대를 꾀하는 것이다. 동영상 UCC 사이트 측에서도 공중파의 인기프로그램 배포를 철저히 막으려 노력 중이라고 밝히지만 완벽한 통제는 사실상 힘들다. 게다가 원료로 제공된 장면들을 사용자가 임의로 편집해 2차, 3차의 제작물을 내놓는다면 원작자를 누구로 보아야 하는지도 문제다. 패러디물의 경우 해당 프로그램의 인기를 증명해주는 척도로 원제작자 측에서도 기분좋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같은 편집 동영상에서 수익이 생겨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업의 콘텐츠뿐 아니라 개인의 제작물도 ‘펌질’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이를 위해 ‘CCL(Creative Commons License-제작자가 자신의 제작물에 이용권한과 범위에 대해 표시하는 것)’ 등의 방법이 제안되고 있지만 아직 저작권 문제는 과도기적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동영상 전문 사이트 유투브도 저작권 소송 논란에 휩싸여 있다.
대부분 동영상 포털은 UCC 동영상의 ‘유통경로 추적’ 시스템을 갖춰 저작자에게 자신의 동영상이 어떤 경로로 복제·확산되고 있는지 등의 정보를 알려준다. 하지만 이는 저작권의 소재를 누리꾼들에게 알려준다기보다, 저작자에게 감시의 책임을 맡기는 형식에 가깝다. 이같은 문제에 따라 엠군·엠엔캐스트 등 일부 업체는 최근 ‘워터마크’(저작권 표시 이미지 삽입)를 적용해 동영상에 저작자를 명시하는 체계를 도입 중이다.
엠엔캐스트 관계자는 “현재 유통되는 UCC동영상 가운데 순수창작물(User Generated Contents)보다는 2차편집물(User Modified Contents)이 월등히 많아 아직 첨예한 저작권 다툼은 드물다”며 “각 업체들이 대책 마련에 착수한 만큼 UGC 기반의 UCC문화가 정착될 때쯤이면 어느 정도 저작권 보호 방안이 마련되지 않을까 한다”고 전망했다.
▲“잘 낚이셨습니다” 낚시와 조작의 위험
UCC가 범람하면서 앞으로는 ‘질(質)’의 문제가 핵심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UCC는 진입장벽이 제로에 가깝다는 점에서 의도를 가지고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터넷에서는 누리꾼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가짜 동영상을 배포하는 이른바 ‘낚시질’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9월 개를 풍선에 띄워 날려버리는 여성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논란이 됐다.
‘개풍녀’로 명명된 이 여성을 두고 비난이 이어졌지만 이는 한 인터넷기업의 낚시 광고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개풍녀 논란은 당시 일본 후지TV에도 보도됐다. 지난해 초 황우석 논문조작 파동때는 일부 지지자들이 ‘줄기세포 사실로 확인’ 식의 가짜 기사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일도 있었다.
최근 등장한 ‘도자기녀(남자친구를 위해 도자기를 만드는 여성), ‘소주녀(소주병에 담긴 액체를 하루 종일 마시는 여성)’ 등의 동영상은 누리꾼들로부터 ‘낚시’ 의혹을 사고 있다. 길거리 캐스팅이나 오디션보다 ‘인터넷 스타’로 누리꾼들의 지지를 얻는 게 스타가 되는 새 등용문이기 때문이다. 이달 초에도 고교생들이 여고생 성추행 동영상을 조작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들 청소년은 “UCC가 상업적·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기 위해 자작극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서이종 교수는 “이번 고교생들의 사례는 가짜 동영상들이 유포됨으로 인해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가를 잘 보여준다”며 “학생들의 의도가 무엇이든 우리 사회 전체가 ‘낚인’ 셈인데, 누리꾼들의 책임의식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 “가짜들이 지속적으로 난무하면 좋은 댓글과 콘텐츠마저 의심받고 거부당해, 급기야 쌍방향의 공론장인 인터넷이 저질 쓰레기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실련 미디어워치 한상희 팀장은 “기존 방송에서 ‘리얼’을 추구한 일부 프로그램이 가짜 화면을 다큐인양 내보내는 등 잘못이 있었다”면서 “공공성을 추구하는 방송조차 들통난 다음에야 ‘죄송하다’는 식으로 나왔는데 일반인들이라고 못 따라할 이유가 없다”고 방송을 비판했다.
▲인터넷의 ‘보이지 않는 손’을 움직여라
낚시와 조작의 위험 속에서 ‘진짜 정보’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균관대 경영학과 이석규 교수는 “정보는 중립적인 것이고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칼과 같다”며 “온라인상의 ‘보이지 않는 손’을 어떻게 구현시킬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인터넷상에서 정보는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니만큼 일단은 정보에 대한 사용자들의 판단력을 믿고 스스로 자정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시인사이드’의 김유식 대표는 “동영상의 경우 아직 상당한 신뢰를 얻고 있기 때문에 누리꾼들을 속여넘기는 데 유리한 실정”이라며 “하지만 텍스트 시절 낚시글이 차츰 줄어가듯이 동영상에 대해서도 검증체계가 마련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SBSi’의 김민선 과장도 “현재 홈페이지에 업로드되는 UCC 동영상을 전수조사하는 실정”이라며 “튀려고 자극적인 동영상을 만들어내는 일각의 누리꾼들 탓”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부작용은 아직 UCC 정착 초기라서 그런 것”이라며 “빠르게 향상되고 있는 누리꾼들의 선별 능력을 바탕으로 결국 동영상 기반의 UCC 문화도 자정능력을 갖출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언론학부 이중식 교수는 “해당 콘텐츠의 진위 여부를 즉각 알아채기에는 현재 미디어 환경이 지나치게 복잡하다”며 “과거처럼 명망있는 저자나 언론사 등 신뢰할 수 있는 곳에서만 콘텐츠가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교수는 수용자 자신이 제시된 콘텐츠에 매몰되지 않을 만한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콘텐츠 수용자들이 옳음과 그름의 ‘중간 영역’에 선 채 해당 콘텐츠에 대한 거리감각을 익혀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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