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디지털 치매는 극복 가능한가?"
며칠 전에 수첩에 끼워두면서 늘 요긴하게 써먹던 전화번호부를 어떻게 된 연유인지 모르지만 잃어 먹었다.

그 속에는 친척과 각급 학교별 친구 그리고 주요 거래처 등 비교적 중요도가 놓은 사람들의 인적 사항과 전화번호가 적힌 것이어서 잃어버린 지 보름이 넘었지만 지금도 가슴이 짠하다.

디지털 시대에 전화번호는 휴대폰에 입력해 놓으면 될 것이지 무슨 구질 맞게 수첩을 사용하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이것도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휴대폰을 잃어버려 수첩을 잃어버린 것도 보다 더 큰 낭패를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 비하면 그나마 전화번호부 수첩은 그렇게 크게 걱정을 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따로 한 부를 더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분실했을 때를 대비하고 살아야 하면 이미 치매 초기단계에 들어섰을지 모른다. 그런 만큼 더욱 용의주도하게 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 요즘처럼 눈이 팽팽 돌아가는 속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전화번호부를 선호해왔다. 물론 휴대폰을 사용할 줄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남들처럼 신년축하 메시지도 다 보내고 회의 중에 문자메시지 다 보내고 할 것은 다 한다. 그런데 왜 굳이 따로 전화 번호부를 사용하냐고 물으신다면 디지털 치매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모든 생활이 참 많이 편리해졌다. 그 중에 하나가 전화 걸기다. 휴대폰에 이름과 전화번화만 입력해 놓으면 만사가 형통이다. 이름 검색으로 전화번호를 찾아주고 이걸로 전화도 하고 메시지도 보내고 컬러메일도 보내고 이 메일도 받고 말 그대로 엄청난 기능성과 융합성을 자랑하는 게 요즘 휴대폰이다.

그런데 회사 직원들과 식사를 하면서 전화번호를 몇 개나 기억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대답은 많아야 서 너 개 정도였다. 요즘은 따로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성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질문을 해놓고 가만 생각해보니 나도 집전화와 식구들 몇 명의 번호를 제외하고는 기억하는 것이 거의 없다. 옛날에는 최소한 20여 개는 외우고 다녔는데 이건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의학적인 치매가 아니라 모두가 디지털 치매에 걸려있는 것이다. 디지털 치매에 대한 의학적 용어는 성인집중 장애 증상(adult ADD)이란 용어를 쓴다. 또 id나 pw(비밀번호)를 잃어버려 로그온은 할 수 없는 상태를 ‘Logonorrhea’이란 용어를 쓰거나 휴대폰의 저장 번호를 사용하다가 더 이상 전화번호를 기억할 수 없는 상태를 ‘Telamnesia’라는 신조어가 나왔다고 한다.

전화번호 얘기가 나오니까 노래가사 얘기까지 해야겠다. 노래는 못하지만 가사외우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던 시절이 있는데 요즘은 노래가사가 통 생각이 나질 않는다. 회사 직원들도 마찬가지란다. 이것도 디지털 치매현상 중의 하나다.

노래방에서 화면을 보아야 가사가 생각나는 현상은 옛날 가사를 외워서 노래를 부르던 시절과 비교하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랩이 등장한 이후 가사도 귀에 조차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른바 한국 말의 리듬이 깨져버린 것이다.

젊은 층 사이에도 가사가 금방 이해되지 않는다는 얘기고 보면 역시 아날로그식 생활방식이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도 필요할 때가 있구나 생각이 든다. 디지털 시대가 깊숙이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아날로그가 지닌 장점을 디지털이 대신 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치매 증후군을 보이는 분야는 전화번호나 노래가사뿐만 아니다. 네비게이션의 보급으로 ‘길 치매’도 늘어나고, ‘주소 치매’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어느 뉴스에서 눈길을 끌었던 것이 주판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계산 조차 제대로 되지 않으니 주판이 등장했다는 것인데 웃고 넘길 일은 분명 아닌 것 같다. 문제는 디지털 치매를 앞으로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여러 가지 해법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디지털이 편리하긴 분명하지만 가끔씩은 일부러라도 불편해 보는 것이 디지털 치매를 극복하는 데는 필요하지 않나 싶다.

내 방에는 플립형 탁상 시계가 하나 있다. 보는 사람마다 어디서 구했는지 묻는다. 이 시계는 분명 디지털 방식으로 작동되나 시간 넘어가는 것은 아날로그식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조화되는 세상이 오히려 이상향이 아닌가 싶다.

갈수록 디지털 세상으로 빠져드는 삶에 조금이라도 저항을 해보는 것이 최소한의 치매 방지책이라고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면서 정초부터 잃어버린 전화번호부를 다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동근 대표
<약력>
81년 외대 영어과 졸업
90년 동경특파원
2000년 보도국 국제부장
2001년 보도제작부장
2003년 ㈜iMBC 대표이사 사장(현)
   
  ㈜ iMBC
2000년 3월 회사 설립
2002년 2월 벤처기업 등록
2003년 4월 방송콘텐츠 유료화
2005년 1월 코스닥 상장

임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