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만 하면 무슨 재미 … 난 비튼다!
즐겨보는 TV 연속극을 놓치지 않고 보기 위해 가슴 졸이며 종종걸음으로 퇴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뒤 프로그램을 예약녹화할 수 있는 VTR이 나오고, 인터넷에서 다시보기가 가능해졌으며, 최근에는 지상파DMB 휴대전화까지 등장하면서 드라마광들은 행복해졌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 정해진 드라마 스토리에 여전히 울고 웃으며 가슴 졸인다면 당신은 아직 구세대다.

명장면 캡처해 말풍선 … 패러디 포스터.웹진서 진화

음악.동영상을 파일형태로 소비하는 신세대에겐 TV드라마도 '갖고 노는' 하나의 콘텐트일 뿐이다.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TV드라마는 인터넷에 동영상 파일 형태로 바로 올라오기 때문에 이들은 드라마도 파일형태로 다운받아 소비한다. 이들은 미리 짜인 드라마 스토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동영상 캡처에 능한 이들의 능숙한 클릭에 드라마 주인공은 희화화된 캐릭터로 바뀌고, 전혀 새로운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드라마 패러디는 젊은 층의 인터넷 문화의 한 형태로 자리 잡았고, 원본인 드라마보다 패러디 자체를 즐기는 네티즌들도 늘고 있다.

최근 패러디 대상으로 가장 각광받는 드라마는 MBC 대하드라마 '신돈'이다. 극중 신돈(손창민 분)이 '하하하하…'라고 미친 듯이 웃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던지 손창민의 표정과 웃음소리를 소재로 한 패러디물이 쏟아졌다. 영화포스터 패러디, 패러디 댓글, 사진 합성물 등이 쏟아지는 가운데 요즘 가장 눈에 띄는 패러디는 '드라툰'이다. 드라마와 카툰의 합성어인 드라툰은 캡처한 드라마 장면을 네 컷 또는 그 이상의 만화로 만들고 말풍선에 재치있는 대사를 달아놓은 것이다. 영화 포스터 패러디나 패러디 뉴스 일색이던 드라마 패러디가 한층 진화한 셈이다.

최근에는 '신돈'에서 원현스님역을 맡은 오만석이 '신입사원'의 주인공 에릭과 닮았다는 점을 모티브로 두 드라마를 절묘하게 섞어놓은 '원현스님의 꿈' 편이 큰 인기를 끌었다. 강릉대군(공민왕)이 노국공주의 목욕장면을 훔쳐보다가 나중에 신돈인 것을 알고 허탈해하는 '응큼한 강릉대군' 편도 네티즌들의 배꼽을 빼놓았다.

이같은 드라툰 열기가 제작진도 싫지않은 눈치다. '신돈'의 정운현 책임PD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담은 신돈의 웃음이 요즘 젊은이들의 가벼운 냉소주의와 맞물려 패러디 대상이 된 것 같다"며 "패러디화된다는 것은 드라마가 젊은 층에게 관심을 끌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드라마 시나리오를 나름대로 재미있게 해석한 '가상 시나리오'도 인기를 끌고 있는 패러디물이다. 화제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경우 한 네티즌이 만든 가상 결말(지금까지의 내용은 죽은 주인공들이 만들어낸 가상이었다는 영화 '식스센스'식 반전)이 드라마의 진짜 결말보다 더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iMBC 관계자는 "'굳세어라 금순아'나 '단팥빵'의 경우 네티즌이 만든 가상 시나리오가 워낙 인기를 끌어 홈피에 가상 시나리오 코너를 따로 만들어줬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디시인사이드의 '드라마갤러리'를 담당하는 김선옥 팀장은 "드라마 홈피에 패러디 코너가 생겨날 정도로 드라마 패러디문화는 일부 네티즌들의 놀이를 넘어서 주요한 인터넷 문화가 됐다"고 분석했다.

드라마 내용을 기사타이틀로 패러디해 잡지표지 형태로 만든 '패러디 웹진'은 이미 패러디물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대표적인 한류 드라마 '대장금'을 본떠 '월간 궁녀''궁녀 센스' '월간 의녀' 등이 인기를 끈 데 이어 요즘에는 '월간 신도니안'(신돈), '영웅불멸'(불멸의 이순신), '웨딩'(웨딩) 등이 화제에 오르고 있다. 잡지 표지를 연상시키는 지면에 '충격비화''특종르포''독점 인터뷰' 등의 재치있는 기사 타이틀을 읽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다는 게 네티즌들의 평가다.

SBS 대하드라마 '서동요'의 경우 네티즌들이 직접 홈피를 운영한다. SBSi의 김민선 과장은 "네티즌들이 방송 콘텐트를 재해석, 패러디 등의 창작물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며 "이같은 트렌드를 반영해 드라마 홈피 운영을 아예 네티즌들에게 맡기는 일종의 실험을 시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요 드라마 내용을 모 이동통신회사의 광고로 패러디한 '서동 생활백서'는 서동요 관련 패러디물 중 가장 인기가 높다.
정현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