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도 선택하는 고감도
궁녀지(誌)’라는 선전 문구 아래로 ‘궁녀 센스2’라는 잡지 제목이 선명하다. 살포시 옷고름을 매만지는 표지 모델 이영애가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커버스토리의 제목은 ‘궁녀 장금이 섹시하냐, 의녀 장금이 섹시하냐’. 도발적이다. 표제 아래로는 ‘창간호, 중종 십년 값
100냥’이라고 친절하게 적혀 있다. 도대체 이 잡지의 정체는 뭘까.
MBC 드라마 ‘대장금’이 시청률 50%를 넘나드는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시청자들도 화면 건너편에 앉아 있기만 하는
게 아니다. 작품과 관련한 콘텐츠를 스스로 생산하면서 ‘능동적인 소비’를 즐기고 있는 열광적 팬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가상 잡지를 만들어 패러디
문화의 향연을 벌인다. 패러디와 포토샵 기능으로 별의별 ‘비틀기’가 다 나오는 인터넷 세대의 실력 발휘다. ‘월간 궁녀’ ‘월간 의녀’에 이은
‘궁녀 센스2’는 드라마 ‘대장금’과 관련해 나온 가상의 인터넷 잡지들 중 단연 압권이다.
승은(承恩)을 입은 연생이가 표지 모델로 등장한 ‘월간 궁녀’라든지,
장금이가 의녀로 변신한 이후 출간된 ‘월간 의녀’는 마치 진짜 실재하는 여성 잡지인 양 그럴듯해 보인다. 이 가상 잡지들은 이미 ‘다음’
‘싸이클럽’ 등 인터넷 유명 사이트에서 인기를 얻고 있고, 네티즌들은 이메일 등을 통해 빛의 속도로 유통시키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네티즌이 만든 가상의 잡지 하나가 현실 세계에서도 최고의 인기잡지로 부상하고 있는 것. MBC
‘대장금’을 즐겨보는 40대 샐러리맨 김승현씨는 “아이들이 표지를 출력해서 보여주길래 처음에는 진짜 잡지인 줄 알았다”면서 “아이들이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보고 ‘정기구독하자’고 놀리더라”며 어이없어했다.
가상 잡지들의 기사 제목도 독자와 시청자들이 배를 안고 넘어지게 만든다. ‘참을 만큼 참았다, 독수공방 중전마마
분통’, ‘승은 입어 특별상궁 된 수라간 연생 독점 인터뷰’ ‘몸짱종사관 바닷가 몸통 모음집’ 등이 드라마 출연진 얼굴을 떠올리게 하면서 폭소
혹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든다.
창간이 조금 앞섰던 ‘월간 궁녀’와 ‘월간 의녀’만 해도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한 표지 한 장만 달랑 있던
것이지만, ‘궁녀 센스2’로 넘어오면서 실제 기사들도 담아내기 시작했다. 마우스로 클릭해서 기사와 광고 등 모두 29쪽을 차례로 넘길 수 있도록
띄워놓았다. 화면에 뜬 ‘궁녀 센스2’의 12쪽을 클릭해서 펼치면 “최근 문정왕후의 자서전 ‘대밀총떡 한 접시’에 불만을 품은 중종이 후궁침실에
연일 행차로 맞서자 문정왕후는 이니셜궁녀 폭로라는 초강경자세를 보였다”라는 문장이 반긴다.
이 기발한 이미지와 문자 언어의 생산 주체는 누구일까. ‘대장금’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애호 대장금’이라는 제목의
공식 팬클럽이 있다. ‘월간 궁녀’를 만들었다는 허승혁(아이디 리디팍스·reedyfox)씨는 홈페이지에 띄워놓은 글에서 “무늬만 대학생인
아웃사이더”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대장금을 보는 동안 머릿속은 온통 버닝(burning)상태가 된다”고 했다. 또 ‘궁녀 센스2’를 제작한
네티즌에게 연락을 하자 그는 “나는 뒤에서 만드는 일에만 관심이 있으니 내 이름을 공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면서 “읽었던 신문과 잡지의 기사에
‘대장금’의 등장인물들을 끼워넣어 패러디했다”고 말했다.
iMBC의 홍보담당인 김지수씨는 “지난해 여름 드라마 ‘다모’ 때부터 이런 네티즌 참여에 불이 붙었다”고 했다.
당시 네티즌들은 이 ‘퓨전사극’의 무대가 됐던 장소의 이름을 빌려 ‘한성좌포청신보’ 등을 제작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드라마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고, 김희애의 열연이 인상적이었던 SBS드라마 ‘완전한 사랑’ 때도 ‘완사신문’ 등을 만들며 능동적으로
개입해왔다.
문화평론가 김동식씨는 “같은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는 의미가 있을 것 같다”면서
“개별적인 자신만의 애정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싶은 소망이 투여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