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D수첩 700회 특집 바로가기 >
[PD수첩]에 새겨진 700개의 얼굴을 만나다
[PD수첩]은 지난 16년 동안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의 한 가운데 있던 수많은 인
물들의 상처와 아픔을 다루어왔다. 그들의 울고 웃던 얼굴은 같은 시대를 공유한 바
로 우리 자신의 얼굴이었다. 이에 [PD수첩] 700회 특집 1부에서는 그동안 제작진이
만났던 인물들의 사건과 사연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발자취를 돌아봄으로써 그 의
미를 되새기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안성기, 최유라, 윤도현 - 그들이 추억하는 [PD수첩]
전임 MC들의 오프닝 인사와 함께 영화배우 안성기, 방송인 최유라, 가수 윤도현씨
등 우리 시대와 세대를 대표하는 3인의 [PD수첩]을 사랑하는 스타들이 직접 출연하
여 진행과 내레이션을 맡았다. 그들이 기억하는 ‘얼굴’의 주인공들을 통해 숨 가쁘게
달려온 [PD수첩]의 16년을 돌아보았다.
얼굴, 그 첫 번째 이야기 - 아픈 역사의 곪은 상처들, 이제는 치유되어야 한다
80년 5월 18일 광주. 국가에 의해 자행된 폭력은 많은 이들을 충격과 고통의 세월로
몰아넣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5․18 진압의 총체적 계획과 발포명령자 공
개, 행방불명자와 관련된 암매장 의혹 조사 등의 문제는 우리 시대의 숙제로 남아있
다.
그러나 광주 대학살의 중심에 서 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 어떤 변명조차 없이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지난 3월, 무공훈장 중 최고라는 태극무공훈장을 비롯하여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자기 자신’에게 수여한 훈장 등 총 9개의 서훈이 취소되었다. 그
러나 행정자치부가 재차 반납을 요구했음에도 훈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전두환, 그
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의 ‘얼굴’로 기억되고 있는가?
한반도를 극심한 이념대립의 소용돌이로 몰고 갔던 해방 후 한국전쟁. 50년 서울 수
복 후, 부역자 처벌 과정에서 재판도 없이 무차별 처형이 이루어진 ‘금정굴 양민 학
살’은 분단비극의 쓰라린 역사적 증거였다. 95년 153개의 유골이 발굴된 이래 11년
이 지난 2006년 5월이 되어서야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가 시
작되었다. 반세기를 땅 속에서 침묵해야 했던 무고한 희생자들. 그들은 이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WTO KILLS FARMER!"
"WTO가 농민을 죽인다!"고 절규하며 지난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농산물 개방 반
대를 외치다 자결한 故이경해씨. 그의 외침은 한국 농업의 위기를 걱정하는 한 농민
의 절박한 몸짓이었다. 동시에 그의 죽음은 전 국민이 농업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한
국 농업의 현실을 깨닫는 촉발의 계기가 되었다. [PD수첩]제작진은 3년이 지난 지금
도 故이경해씨의 정신이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어 타오르고 있음을 제주 FTA협상
저지 시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대한민국 울분의 역사 속에서 상처받은 얼굴들은 바로 우리가 어루만져야
할 아픈 역사의 산 증인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얼굴, 그 두 번째 이야기 -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1994년 가슴과 배가 붙은 채 태어난 유리, 유정이 자매. 이듬해 온 국민의 염려와 관
심 속에 분리수술에는 성공했지만 언니인 유리는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치료해
야 했고, 동생 유정이는 하반신이 마비되어 재활치료가 필요했다. 12년이 지난 현
재, 그들은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을까? 제작진이 찾아가 보았다.
한국과 베트남이 1992년 정식 수교를 맺게 되면서 많은 한국남성들이 사업을 목적으
로 베트남을 오갔다. 방울이는 지난 97년 16살 베트남 여성 미쭈와 50대 중반 한국남
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즉 新라이따이한이었다. [PD수첩] 방송 이후 후원회와
병원의 도움으로 뇌성마비인 방울이를 한국으로 데려왔지만, 심한 뇌 기형으로 수술
이 어려워 베트남으로 돌아가야 했던 방울이. 그 후 6년, [PD수첩] 제작진이 수소문
끝에 찾아낸 방울이의 모습을 공개한다!
종군위안부로 캄보디아에 끌려가 50여년의 세월을 이국땅에 살면서 이름도, 가족
도, 모국어도 잊어버리고 살아 온 훈 할머니.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이름과 혈육을
되찾았지만, 결국 캄보디아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제작진은 훈 할머니의 한국
과 캄보디아 가족을 만나 혈육을 되찾은 이후부터 임종하기까지의 생활을 들어 보았
다.
얼굴, 그 세 번째 이야기 - 문밖의 서민과 문안의 지도층
그 견고한 벽을 허물기 위하여
[PD수첩]은 1990년 첫 방송 이후 지속적으로 노동자와 세입자 문제에 관해 다루어
왔다. 1회에 방영됐던 ‘하늘로 이사 간 사람들’에서 전셋돈이 없어 자살을 선택했던
이들. 그 설움은 16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피코 아줌마 열 받았다’ 편
에서 다룬 비정규직 노동자들 문제 역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 지도층의 왜곡된 행태는 밝고 투명한 사회를 염원하는 국민의 마음
을 어둡게 했다. [PD수첩]은 그들만의 결혼에서 국적포기까지, 견고한 철옹성 안에
서 대한민국을 움직이고 있는 지도층의 허울만 근사한 모습과 그 씁쓸한 세태의 기
록을 윤도현의 씩씩한 목소리로 되돌아보았다.
[PD수]은 노동자와 서민의 애환을 담는 동시에 지도층의 부조리를 비판함으로써
둘 사이에 놓인 굳건한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지난 16년 역사의 얼
굴들이 증언하는 두 계층 사이의 괴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진실의 두 얼굴 - 황우석 사태, 1년 만에 최초로 [PD수첩]팀이 입을 열다.
[PD수첩]과 황우석 사태. 1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PD수첩]에 붙는 꼬리표이다.
방영 당시 줄기세포의 진위 여부와 취재윤리에 관한 논란이 뒤엉키며 사상 초유의
대국민 사과에 이어 방송 중단의 사태로 가기까지 급박했던 하루하루의 기록. 그리
고 2005년 12월 15일 [PD수첩]의 황우석 보도가 중단 위기를 딛고 다시 전파를 탈
수 있었던 숨 막히는 반전의 현장! 1년여 만에 처음으로 밝히는 생생한 제작 후기를
‘제작진’의 증언을 통해 직접 들어보았다.
그렇다면 황우석 사태의 소용돌이 속에서 [PD수첩]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상식의 저항을 거쳐 얻어낸 진실의 가치와 그 두 얼굴. [PD수첩] 700
회 특집 1부에서는 과연 우리시대 진실의 의미가 무엇인지 성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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