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15일 / 제 658회
무공훈장, 차라리 반납하라
오랫동안 논의되어 오던 ‘상훈법’ 개정 작업이 마무리되면서 지난
11월 5일 개정 ‘상훈법’이 발효됐다. 개정된 ‘상훈법’의 주요 골자
는, 훈장에 대한 치탈(褫奪) 사유가 발생했을 경우, 치탈 안건의 국
무회의 상정 주체를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명시하여 ‘상당한 기간’
안에 이를 반드시 치탈할 것을 의무화한 것이다. 이로써 5.18 및
12.12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의 유죄확정 판결을 받은 핵심 인물들
에 대한 훈장 치탈은 이제 ‘법률적’으로 강제적인 것이 되었다.
15일(화) 방송될 「PD 수첩」은 정치적인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
는 훈장 치탈에 대해 조명한다. 제작진은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긴
급여론조사를 실시하고, 5.18 및 12.12 사건의 핵심 주역 및 고급장
교, 상관의 지시를 받은 하급군인 및 그 유가족 등을 직접 만나보
았다. 특히 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이었던 허화평(許和平)씨가
「PD 수첩」제작진과의 공식인터뷰를 통해 개정 ‘상훈법’의 취지
에 반대하는 입장을 전해왔다.
▶ 장군님의 훈장, 이등병의 훈장. 상관의 명령을 수행한 것도 역
사적 심판의 대상?
개정된 ‘상훈법’은 주로 5.18 및 12.12 사건 주역들의 훈장 치탈 문
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명령
을 받은 하급군인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법률적’ 해석에는 아
직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강원도 정선의 한 마을에
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무력진압작전, 즉 ‘충정작전’에
참가한 김정훈 중사(가명)의 부모가 살고 있다. 당시 작전 도중 사
망한 김 중사는 그 대가로 인헌 무공훈장을 받았다. 제작진과 만
난 김 중사의 부모들은 25년간 아들의 빈자리를 채워온 무공훈장
을 꺼내 보이며 눈물을 지었다.
한편 운전병으로 충정작전에 투입되었다가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한 쪽 눈을 실명한 박기태 상병(가명)도 인헌 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주위사람들에게 자신이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25년 동안 숨겨왔으며, 할 수만 있다면 훈장을 반납하고 싶
다는 뜻을 밝혀왔다. 상관의 명령을 수행하여 충정작전에 투입된
이 하급군인들의 무공훈장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 것인가?
▶ 쿠데타의 주역이 국가유공자?
「PD 수첩」제작진의 확인 결과, 5.18 및 12.12 사건 주역들 중 상
당수는 현재 국가유공자로 국가보훈처에 등록되어 있었다. 이들
중 19명이 국가유공자 자격을 얻는데 있어 1980년 신군부의 주역
이었을 당시 받은 훈장이 공적(功績) 근거로 사용되었음이 확인되
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중 허화평, 허삼수, 박종규씨 등은 1997년 4월의
대법원 유죄확정 판결 이후의 시점에서 1980년 당시의 훈장이 공
적(功績) 근거로 사용되어 국가유공자가 되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5.18 및 12.12 사건으로 대법원 유죄확정 판결을 받은 신군부 주도
세력은 총 14명이었지만, 이 중 정호용, 최세창의 경우만 그 훈장
이 치탈되었을 뿐 나머지 12명에 대해서는 당연히 치탈되었어야
할 훈장이 치탈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훈장이 국가유공자 선
정의 근거로 사용된 경우까지 있었던 것이다.
▶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훈장은 각각 10개. 남발되는 훈장
서훈의 역사
한편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79년 이전의 것을 포함하여 모두 10개
의 훈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그 중에는 대통령 재임 당
시 수훈한 것도 상당수였다. 1983년 당시 총무처 장관 박찬긍씨
등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훈장 서훈
을 의결하는 회의는 만장일치로 ‘대통령인 전두환이 개인 전두환
에게 훈장을 서훈한다’고 결정하였다고 한다.
「PD 수첩」은 뒤틀린 훈장서훈의 기록을 살펴봄으로써, 국가가
개인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인 ‘훈장 서훈’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
지, 역사적으로 단죄된 사건에 개입된 하급군인들의 훈장은 어떻
게 처리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간
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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