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4회  ㅣ  200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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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18일 / 제 654회


긴급르포, 통곡의 파키스탄
지난 8일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최소 2만5천명, 부상자는 6만 3천여 명에 이른다고 파키스탄 정부가 공식 발표했으나 실질적 피 해 집계는 그 이상으로 추정된다. 갈라진 땅 사이로 한 마을이 사라지고 무너진 건물더미의 바다에 서는 통곡소리가 울리는, 파키스탄의 현장은 죽음의 도시를 방불 케 했다. PD수첩 취재진이 10일 긴급 출국해 참혹한 죽음의 현장을 취재했 다. ◈ 긴급 르포, 죽음의 현장들 지진 직후인 10일 출국한 취재진은 카라치를 경유 이슬라마바드 에 도착해 피해가 극심한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주도 무자파라바 드와 이슬라마바드, 노스웨스트 프론티어의 만세라, 발라코트 지 역을 집중 취재했다. 차만 보면 빵을 달라며 따라오는 현지인들에 게 먹던 빵까지 나눠주며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는 생활이 취재 내 내 계속되었고 두 세 번의 여진을 겪어야 했으나 흔들리는 차 안에 서 취재진은 이동을 강행했다.
사망자 2만 5천명? 20만 명! 가히 그 집계를 가늠할 수도 없다는 진 앙지인 무자파라바드에 취재진이 도착했을 때 이미 마을 하나가 쓸려 내려가 강을 막은 상태였고 무자파라바드 근처로 가는 길과 무자파라바드에서 인도령 스리나가르까지 가는 길 역시 폐쇄돼 있 었다. 전화선, 전기, 물 모든 것이 두절돼 있었다. 일을 나가지 않 았던 여자들과 학교에서 수업을 받던 아이들의 피해가 커 무너진 학교에서 부모들은 맨손으로 건물 잔해들을 파내 아이들을 찾고 있었다. 특히 발라코트와 인근 산간지역에선 한 마을이 통째로 사라져 ‘죽 음의 마을’이 속출했는데 발라코트의 북쪽으로 3시간 거리의 그노 치 산간마을은 완전히 무너져 내려 땅위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 았다. 마을 인구 300명 중 50명이 사망했고 부상자가 60명에 이름 에도 마을 전체가 완전히 고립된 탓에 부상을 당한 한 어린 아이 의 아버지는 4시간 동안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향했으나 마을 밖으 로 나가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파키스탄의 술탄 장군은 지도에 서 몇 마을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
마을마다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땅 바닥 에서 자며 다가오는 겨울을 걱정했다. 5.6 여진이 있던 10월 12일 새벽 (현지시간) 이슬라마바드에서 135km 떨어진 지역의 사람들 은 건물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했다. 산 자들은 산 자들대로 공포 에 시달리고 있었다. ◈ 동행 취재! - 죽음의 마을, 고향을 찾는 사람들 “도와주세요, 열심히 일해서 제가 갚을게요” 13일 대림동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열린 파키스탄 지진피해 지원 촉구 기자회견에서 눈물로 지원을 읍소하는 파키스탄 이주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족들의 생사도 확인할 길이 없는 이 들은 한국에 보다 적극적인 지원대책을 요청했고 가족들이 죽거 나 피해를 입은 동료들이 속출하면서 슬픔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돈이 없어서 혹은 다시 입국하지 못할까 두 려워 감히 그들은 고향 길로 향하지 못하고 있었다.
취재진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한국 땅을 밟은 자신에게 8 일의 지진이 재앙 이상으로 다가온다며 절규하는 유니스 씨를 만 날 수 있었다. 무자파라바드가 고향인 그는 아내와 자식들이 모두 죽고 친척들만 몇 명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고 했다. 고향으 로 가 상황을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안타까운 유니스 씨의 귀 향길에 취재진이 동행했다.
우리나라 나이로 스물다섯의 청년 아윱은 일찍부터 철이 들어 가 족을 부양할 생각으로 한국 기업에 연수생으로 왔다고 했다. 통신 이 두절돼 가라치에 사는 친구를 통해 인편으로 가족의 소식을 알 아냈다는 피해상황은 참혹했다. 9명의 가족들 중 그의 어머니는 심 한 부상으로 병원에 있고 형과 형수, 여동생 하나를 잃었다. 남동 생 셋은 건물 잔해 더미에 갇혀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 다. 12시간을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는 아윱은 최대피해지 역으로 연일 방송되는 고향 발라코트의 현장을 보며 초조함을 감 추지 못했다. 그를 방문한 날에도 비통한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었 던 아윱은 마침내 떠나는 날,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의약품 을 챙겼다. 그 길에 어렵게 취재진이 동행했다. ◈ 신의 시험인가, 구조인력으로도 역부족 지진이 발생하고 채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일본, 유럽국가들은 경쟁하듯 지원책을 발표했다. 파키스탄 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는 영국 등 외국 구조팀까지 가세해 구조 작업을 벌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카슈미르 등 파키스탄의 북부 산악도시에는 구조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진앙지인 파키스탄 령의 수도 무자파라바드는 도시의 90%가 무너 져 1만 1천명이 숨졌고 음식과 식수가 떨어지고 전기도 끊겼다. 군 병원도 지진에 무너지고 의료진도 모자라 부상자들은 심각한 상 태에도 불구하고 이슬라마바드 병원으로 이송되길 기다려야 했 다. 부상자가 밀려오는 종합병원에서는 의료진과 의약품, 병실이 부족해 치료를 받아보지도 못하고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 다. 이 외에도 끊긴 길로 인해 구조대원들이 조속히 파견되지 못하고 파키스탄의 북부 산악도시처럼 구호 물품이 도착되지 않는 곳도 있었다. 취재진은 이동 중 한 조그만 마을에서 “살려달라, 살려달 라” 외치는 남자의 소리를 들었다. 무너진 건물 틈 사이에 끼인 남 자를 발견 후 구조대원을 불러왔지만 장비가 없어 구조에 실패, 장 비를 구한 후 세 번째에 갔을 때 남자는 이미 죽어 있었다. 또한 건 물더미에 깔려 손이 잘리거나 다리가 잘린 사람들 뿐 아니라 몸이 반쯤 땅 속에 묻힌 채로 구조를 받지 못한 사람이 알라를 찾는 상 황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한국 구호팀들 중 재난지역에서 사랑의 의료 활동을 해 온 ''그린닥 터스''에서는 긴급의료팀을 발라코트로 이동해 의료활동을 벌이고 있었고 ''기아대책 구호팀''은 도로가 붕괴돼 고립된 파티카 마을에 헬기를 타고 들어가 의료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취재진은 이슬라 마바드의 마르갈라 아파트가 무너진 현장에서 생존자를 구조해내 는 ''선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극적으로 목숨을 구한 현지 교민들을 만나 생생한 당시 상황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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