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5일 (화) / 제 641 회
국적포기 25년, 병역기피의 역사
병역의 의무를 마치기 전에는 국적을 선택할 수 없게 한 국적법 개
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두 달, 이미 국적포기를 통해 병역을 기
피할 수 없게 하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었지만 국민들의 국적포기
자들에 대한 분노는 여전하다. 더욱이 지난달 28일 이들에 대해 재
외동포로서의 혜택을 박탈하자는 내용을 담은 재외동포법 개정안
의 국회 통과가 무산되며 인터넷 공간은 다시 국적포기 논란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PD수첩 제작진은 지난 한 달여간 해외 여행과 유학이 자유화된 80
년대 초반이후 2004년 11월 11일까지(2004년 11월 12일부터 2005
년 5월까지는 1, 2편에서 분석)의 국적포기자 4500여명의 자료를
입수하여 역추적, 부모, 조부모 등을 분석해보았다. 그 결과 국적
포기가 이미 오랜 세월동안 고위층의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
어 왔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전현직 고위공직자 42명, 외교관 3명, 국공립대 교수 255
명.
PD수첩이 추적한 4500여명 가운데 부모 혹은 조부모의 직업을 확
인, 고위층으로 분류할 수 있었던 사람의 수는 약 1200여명. 그 가
운데에는 8선 국회의원이자 국회의장 출신의 이만섭을 비롯하여
前 내무부장관 오치성, 前 경제부총리 최각규, 전두환 前 대통령
의 친형 전기환, 前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 은행감독원장 출신의
2선 국회의원 이원조, 육군대장 출신의 소준열, 공군참모총장 출신
의 김성룡, 그리고 현직 국회의원인 정의화의 자손까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전현직 고위공직자 42명을 비롯하여 국공립대 교수
255명, 국책연구원 63명, 외교관 3명 등 전현직 공무원 363명이 포
함돼있어 공직자의 도덕 불감증을 엿볼 수 있었다.
▣ 국가원로, 군 장성 출신, 학계, 언론계...
전 연세대 총장 이모씨, 전 대한민국 헌정회 회장 김모씨, 전 방송
문화진흥회 김모 이사장등 각계 원로가 두루 포함되어 있었으며 ,
전 지역 TV방송사 회장, 전 유력 주간지 회장, 전 방송사 부국장
등 전직 언론계 유력자 뿐 아니라 모 라디오방송 이사장, 유력 신
문사 이사, 유력 월간지 이사, 유력 신문사 논설위원, 모 케이블
TV 보도국장 등 전, 현직 언론계 인사도 18명이 포함되어 있었
다.
또한 서울대 교수 69명, 연세대 교수 41명, 고려대 교수 47명, 한국
과학기술원 33명 등 국공립대 교수 255명과 사립대 교수 544명을
포함, 무려 총 799명의 학계인사가 포함되어 이번에도 지성의 상징
인 학계가 단연 국적이탈을 가장 많이 시킨 그룹으로 분류되었다.
4성장군 출신 2명 등 장군 출신 11명도 포함돼 국방의 의무를 외
치며 오늘날의 군을 만들어온 군 원로들이 과연 자격이 있는지 의
문을 낳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국적포기자 부모의 학력을 분석한 결과 학력이 파악된 1222
명 중 서울대 출신이 560명으로 전체의 45.8%를 차지했고 연세대
145명(11.8%), 고려대 84명(6.8%), 육군사관학교 출신 11명(1%)
등이었다. 특히 다수를 차지하는 서울대 출신자들이 한국 사회 내
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비해 현격한 차이를 보인 책임감은 놀
랍지 않을 수 없다.
▣ 1998년 6월, 국적포기를 통한 병역기피의 역사 시작되다.
PD수첩이 지난 25년 간의 국적포기 역사를 분석한 결과 국적포기
를 병역기피 수단으로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98년 6월
부터인 것으로 나타났다. 왜 이 시기인가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
었다.
우선 81년 처음 해외여행 및 유학자유화조치로 해외 출생한 아들
들이 만 17세가 되었다. 그런데 98년 6월 국적법에 18세 이상 남성
의 경우 병역을 필한 경우에 한해서만 국적선택이 가능하도록 하
는 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1998년 6월, 6백
여 명이 한꺼번에 병무비리에 연루되었던 원용수 준위 사건이 터
지며 더 이상 불법적인 루트를 통한 병역면탈이 어려워지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이러한 여러 조건은 국적포기를 통한
병역기피가 늘어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80년 이후 97년까지 17년간 남녀의 비율 차이가 거의 발견되지 않
았던 만 17세 연령의 국적포기 성별 비율은 98년을 기점으로 큰 차
이로 벌어지게 된다. 97년까지 매년 한두 명에 불과하던 17세 남성
의 국적포기자수는 98년 88명을 시작으로 99년 120명, 2003년 417
명 등 꾸준한 증가세를 이어왔다. 98년부터 2004년 11월까지의 여
성 17세 국적포기자가 총 19명에 불과한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루었
다. 반면 미대사관 측이 PD수첩 제작진에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1년간 미국 시민권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선택한 25세 이하
남성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 또 다른 병역기피의 수단이 존재한다
지난 6월말 시행된 새 국적법으로 병역면탈을 목적으로 하는 국적
포기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법무
부는 개인의 이중국적 소유여부에 대해 본인이 직접 당국에 사실
을 알리지 않는 이상 정확한 이중국적자의 수를 파악하기란 현실
적으로 어렵다고 말한다. 출입국사무소 역시 이중국적자의 경우
입국과 출국 시 서로 다른 여권으로 출입할 경우 그들을 색출해내
는 것은 불가능함을 인정했다. 이중국적자의 경우 병역의무가 부
과된다 해도 그 시기 한국 땅을 빠져나가 병역의 의무를 피하는 것
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 한 미국 변호사가 PD수첩에
증언한 바에 따르면 한국명 ‘김철수’(가명)란 이중국적자는 미국에
서 ‘마이클 김’이라는 미국 여권을 만들어 자유롭게 한국을 출입국
하고 있으며 병역문제로부터 완전히 초월해 있다고 한다.
▣ 1, 2차 세계대전 영국 고위층의 1/4 사망. 한국의 고위층
은?
전쟁역사학자인 마이클 풋(Michael R.D Foot) 옥스퍼드대 교수
에 따르면 1,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사회계층 별 치사율을 보면
군복을 입은 사람들의 1/8이 사망했고, 대학을 나온 또는 다니는
사람들의 1/5이 사망했으며 고위층의 1/4이 사망했다고 한다. 뿐
만 아니라 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앤드류 왕자가 최우선 공격 목
표가 될 것을 알면서도 가장 위험한 함대에 가장 위험한 임무를 자
임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한국전쟁 당시 서울시민들에게는 안심하라고
방송을 하고서 이승만대통령과 장관, 국회의원들은 서울을 빠져나
갔고, 곧 바로 한강다리를 끊어버린 것에서 보듯 고위층의 책임감
을 보여준 기록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표명렬 전 예비역준장
은 “월남에서 4960명의 병사들이 전사했지만 그 중에 장군 아들,
장관 아들, 국회의원 아들이 한 사람도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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