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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0회 ㅣ 2005-0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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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8일 (화) / 제 6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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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분석, 미군 전차 사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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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격 검증, 3년 만에 공개된 1,000 페이지 수사 기록
‘미군 전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이 일어난 지 3년. 유족측은
“수사기록을 공개하라”고 수사 당국에 요구해왔으나, 검찰은 “외
교관계 등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며 공개를 거부
해왔다. 지난 5월 27일 대법원은 수사기록을 공개 못할 이유가 없
다며 즉시 공개 판결을 내렸다. 마침내 미군 수사대(CID)의 수사
기록과 주요 증인들의 진술서가 낱낱이 공개되었다. PD수첩팀은 1
천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수사 기록과 비공개 증거 사진 등을 입수
해 사건의 진실을 면밀히 검증했다.
* 사고 15초 전까지도 운전병과 전차장은 교신했다.
사건 직후 사고 전차장 페르난도 니노는 “운전병에게 4번에나 사
고의 위험을 알렸다”고 진술했다. 반면 운전병 마크 워커는 “네 번
째 경고만 들었을 뿐이며 그때는 이미 늦었다”고 진술했다. 결국
운전병과 전차장 사이의 ‘통신 장애’가 사고의 주된 원인이라는 것
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워커와 니노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훈련
전 운전병의 마이크로폰을 교체한 후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출발
했으며, 운행 중에도 둘 사이에는 무리없이 교신이 이루어졌다.
운전병과 전차장은 사고가 나기 15초 전에 “맞은편 차선에서 거칠
게 운행하는 버스에 대해 인터콤을 통해 교신을 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설혹 전차장 니노의 주장처럼 사고 그 순간에만 이유없이 통
신 장애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가 무죄인 것은 아니다. 전차장이
팔을 뻗어 운전병의 어깨를 칠 수 있었던 것이다. 전차장과 운전
병 사이의 거리는 82cm에 불과하다. 니노는 “너무 당황해 얼어서
(frozen) 미처 그 생각을 못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 마주오던 장갑차 승무원들은 멈추라는 고함과 수신호를 보냈다.
당시 사고는 마주오던 장갑차를 피하기 위해 급하게 방향을 트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사고 전차는 사고가
나기 전에 이미 마주오던 장갑차와 교행 한 후, 두 번째 장갑차와
다시 교행하기 위해 우측으로 차체를 붙인 다음 반듯하게 여중생
방향으로 10여 미터 진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기 때문에 시
신의 방향이 도로와 평행했던 것이다. 마주오던 장갑차의 승무원
들은 “사고 지점 30미터 전방에서부터 멈추라고 고함을 치고 두 팔
로 가위표(X)를 그려 수신호를 보냈다”고 진술하고 있다. 사고전
차 운전병의 우측 사각지대에 여중생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로 추
정되며, 다만 그가 왜 마주오던 장갑차의 이러한 수신호를 보지 못
했는지는 의문이다. 운전병이 전방의 수신호를 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새로운 증언이 나왔다. 당시 운전병 워커는
이들의 수신호를 보았으나 “그것이 멈추라는 뜻인지 알아채지 못
했다”고 한다.
* 미군 당사자들의 생생한 증언.
사고의 직접 당사자인 니노와 워커는 이미 미국으로 돌아가 군을
떠난 상태. 그들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추적 끝에
사고 전차의 운전병 워커를 접촉할 수 있었다. 아직도 사고의 후유
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워커는 여전히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4시간 이상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차장 니노의 행방은 더욱 묘연했다. 추적에 추적을 거듭하여 한
교도소의 교도관으로 근무 중인 그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취재팀
에게 인터뷰 대가로 ‘1천 달러’의 돈을 요구했다. 사고 전차의 바
로 앞 차량을 운전하고 있던 조슈아 레이, 그는 사고 상황을 가감
없이 들려주며 중대장 메이슨의 지휘책임을 지적했다. ‘여중생을
주의하라’는 경고 내용이 무전으로 전달됐다는 중대장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중대장이 타고 있던 컨보이 차량의 운전병 폭
스는 “이전의 중대장은 비슷한 경우 무전을 보냈지만, 당시 중대장
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운전병 워커의 변호사 가이워
맥은 “3년이 지난 지금에야 진실을 공개한다”며 재판이 적절하게
진행되었다면, “사고전차장 니노의 과실은 명백한 유죄이며, 중대
장도 지휘책임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증언한다.
이 사건이 남긴 의미는 무엇인가? 사고 발생 후 3회에 걸쳐 ‘미군
전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을 추적 방송하였던 < PD수첩 >.
이번 수사기록 공개를 계기로 < PD수첩 >은 사고의 최초 목격자,
사건의 당사자, 촛불시위에 대한 다른 의견 등 다양한 인물과 목소
리들을 취재했다. 사건의 실체를 명백히 밝히고 재구성하면서, 두
여중생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남긴 의미를 조명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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