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26일 (화) / 제 632 회
▣ 우리 엄마는 필리핀 (가제)
영주시 문수면의 작은 시골 마을, 20년 만에 처음 아이가 태어났
다. 동네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는 이 아이는 한국 아빠와
베트남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이른바 코시안(한국인과 아시아계
외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2세). 새로 태어나는 아이는 모두 코
시안인 마을도, 아이라고는 오로지 코시안 뿐인 마을도 농촌지역
에서는 드물지 않다.
지난해 외국 여성과 결혼한 한국 남성은 2만 5천명, 국제결혼
10% 시대를 방증이라도 하듯, 코시안의 숫자 역시 빠르게 증가하
고 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며 먼 나라로 시집온 국제 결혼 이주 여성
들과, 국내에서 신부를 구하지 못해 외국에서 신부감를 데려오는
한국 남성들. 그들이 꾸린 가정은 과연 행복하기만 한 걸까? 그들
의 자녀들은 올바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인가? 이 전국
의 수많은 국제결혼 가정을 직접 찾아가, 국제결혼 가정의 현주소
를 긴급 점검한다.
* 가난을 견디다 못해 정신을 놓은 엄마, 안젤라.
필리핀 여성 안젤라는 한국에 시집오면서 말을 잃었다. 큰 기대를
안고 찾아온 한국 땅이었지만, 정작 그녀가 맞닥뜨린 것은 생활 능
력이 없는 남편과 나이든 시어머니, 상상치 못했던 극심한 가난뿐
이었다. 그녀의 정신은 점차 황폐해졌다. 급기야 정신병원에 입원
하기에 이르지만, 안젤라는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않고 병원을
뛰쳐나왔다. 그녀는 오늘도 커다란 겨울 점퍼 속에 몸을 감추고 길
거리를 헤매고 다닌다.
안젤라를 만나기 위해 나주로 내려간 취재진은 그녀의 어린 딸을
만났다. 몸져 누운 할머니, 무기력한 아버지와 함께 환기도 되지
않아 곰팡내가 진동하는 골방에서 자라고 있는 그녀의 여섯 살배
기 딸. 취재진을 붙잡고 놓지 않을만큼 아이는 정에 굶주렸다. 엄
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의 정서 상태는 우려스러울 정도로 불
안했다.
* ‘며느리’라고 어서 저런 게 들어와서! - 좁혀지지 않는 문화
차이
메리제인은 얼마 전 아이 셋 중 작은 아이 둘을 데리고 집을 나왔
다.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걸핏하면 “필리핀으로 돌아가라”며 욕
설을 퍼붓는 시어머니를 견디다 못해 쉼터로 피해 온 것이다. 그녀
는 지금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 아이들의 양육권만 얻을 수 있다
면 아이들을 먼저 필리핀으로 보내고, 돈을 조금 벌어 하루라도 빨
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메리제인 시어머니의 말을 달랐다. 게으르고 살림 꼼꼼하
지 못한 며느리가 시어머니는 내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 고
집 세고 순종적이지 않은 며느리가 시어머니는 못내 불만이었다
고.
국제 결혼 가정이 흔들리는 원인 중 하나는, 문화차이에 의한 시
부모와 며느리간의 갈등이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며느리를 ‘게
으르다’ ‘버릇없다’고 윽박지르는 시부모와, 한국의 가족문화를 이
해하지 못해 진정한 식구가 되지 못하고 겉도는 이방인 며느리들.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그들이 서로의 거리를 좁힐 방법은 과연 없
는 것일까?
* 엄마 보고 싶어 - 고통 속에 버려지는 아이들
필리핀 여성 플로렌드는 불법체류자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남
편은 무능할 뿐 아니라 가혹한 폭력으로 플로렌드를 위협했다. 시
부모는 플로렌드가 혹여 도망갈지 모른다며 아이가 5살이 되도록
국적 취득에 동의해주지 않았다. 집을 나와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그녀에게 집에 두고 온 아들은 가슴을 저리게 하는 고통이자 살아
가는 이유다.
엄마와 떨어져 아빠, 할머니 하고만 살고 있는 수민이는 엄마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 품에 달려들어 안
기지도 않는다. 엄마는 수민이의 말을 이해하지도 차분하게 들어
주지도 못한다. 필리핀에서 온 엄마는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둡고 소극적이던 수민이는 1년 전부터 어린이집을 다
니면서 조금씩 밝고 씩씩한 아이로 변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일까? 엄마와의 소통 부족이 불러일으키는 아이의
정서적 불안정, 언어 발달 부진, 학습 장애 등 국제결혼 가정의 아
이들이 노출되기 쉬운 위험 요소들을 짚어 봤다.
* 국제 결혼의 함정, 해결 방법은 없는가?
국제 결혼 가정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과제는 언어 차이
를 극복하는 것.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지원
하는 기본적인 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와 시
민단체를 중심으로 ‘이주여성 한글교육’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이 그나마 반가운 일. 이들이 당당한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
리 잡을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지원해야할 것은 무엇인지 모색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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