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3회  ㅣ  2005-02-01   
조회 :
2005년 2월 1일 (화) / 제 623 회


▣ 한일협정은 끝나지 않았다
# 베일에 싸였던 한일협정 문서, 40년 만에 공개되다.
지난 1월 17일, 40년 만에 한일협정 문서의 일부가 공개되었다. 일 본 미쓰비시 중공업에 끌려갔다 피폭된 정창희 씨 등 한국인 6명 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회사 측이 한일협정 으로 인해 개인청구권이 사라졌다고 주장함에 따라 법원은 사실관 계 파악을 위해 외교통상부에 한일협정 문서 공개를 요청, 2년간 의 행정소송 끝에 마침내 문서의 일부가 공개되기에 이른 것. 일제 하 강제동원피해자들의 권리 요구 때마다 번번이 배상 문제의 발 목을 잡아왔던 한일협정, 그러나 한일 양국 모두 공개 불가 입장 을 고수했던 1급 비밀문서. 감추고 싶었던 한일협정의 진실은 무엇 이었나.
# 한일협정, 누구를 위한 협상이었나. 한일협정 당시 우리 정부가 일본에게 받은 돈은 무상지원 3억불을 포함 총 8억불. 징병, 징용 피해자 103만여 명에 대한 보상금 명목 으로 한국에 들어온 이 돈은 그러나 단 9.7%만이 대일 민간청구권 에 대한 보상에 사용되었을 뿐이다. 더구나 훗날 있을지 모를 분쟁 의 소지를 예상해 보상 범위를 명확히 하고자 했던 일본 정부에 비 해 서둘러 협상을 마무리하려 했던 우리 정부. 우리 정부는 왜 그 토록 성급하고 경솔하게 협상을 마무리했던 것일까? 취재진은 김 종필을 비롯한 한일협정의 주역들에게 집요하게 취재를 요청했 다. 그동안 ‘노코멘트’로 일관해왔던 김종필, 그는 과연 입을 열어 진실을 말할 것인가.
#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된 것인가. 한국과 일본 정부는 협정이 체결된 직후인 65년 11월부터 90년대 까지 한일 양국 정부가 한일협정에서 체결한 것은 외교보호권, 즉 개인의 권리에 대해 국가가 보호할 수 있는 권한을 포기한 것이지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시킨 것은 아니라는 입장에 동의해왔다. 그 러나 정작 피해 당사자들이 제기한 대일 청구권 소송은 ‘한일협정 으로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었다’는 이유로 번번이 기각되었고, 우리 정부는 이에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 등 양국 정부는 이중 적인 모습을 보여 왔는데... 피해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청구권이 과연 국가간의 조약으로 소멸될 수 있는 것인가. 소멸되었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로 보아 야 하는 것일까. 40년간 피해자들을 괴롭혀온 문구, ‘완전히, 최종 적으로 해결되었다’는 무엇을 의미하나.
# 한일협정, 끝나지 않았다. 스물 셋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일본에 징용 보내고 당시 젖먹이였 던 딸을 60여 년간 홀로 키워온 경기도 이천의 유복례 할머니. 행 여 돌아온 남편이 찾지 못할까 집 한 번 옮기지 못하고 남편 입을 수의까지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지만 여전히 남편의 생사조차 알 길이 없다. 이제는 노쇠하여 재회를 기약하기 어려워졌지만 남 편의 소식만이라도 알고 눈감고 싶은 마지막 바람은 간절하기만 한데... 피해자 배상, 피해자에 대한 사과, 피해자에 대한 확인 작업... 무 엇 하나 제대로 된 것 없는 불완전한 한일협정. 아픔을 가진 이들 이 이 땅에 존재하는 한 한일 두 나라간의 협상이 끝났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들의 한 맺힌 세월을 누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 가.
< PD수첩-한일협정은 끝나지 않았다 >에서는 40년 만에 일부 가 공개된 한일협정 문서의 내용을 토대로 미흡했던 한일협정을 보완하고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은 없는지 모색해본 다.



?/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