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9회  ㅣ  200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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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11일 (화) / 제 589 회


▣ 55년간의 침묵, 민간인 학살

이번 주「PD수첩」<55년 간의 침묵, 민간인 학살> 편에서는 한국 전쟁 전후 발생한 민간인 학살의 현장을 밀착 취재하고, 이들의 명 예를 회복시킬 수 있는 ''''민간인 희생사건 진상규명 통합특별법'''' 제 정이 시급함을 강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55년 만에 드러나는, 그 날 학살의 현장! 그들은 왜, 얼마나 죽어갔던 것일까? 침묵을 강요당해 온 세월, 이제야 드러나는 진실들, 말없는 유골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 2002년 태풍 ''''루사''''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드러난 유골

요즘 마산 여양리에서는 55년 전 학살된 민간인들의 유골 발굴 작 업이 한창이다. 이곳이 발견된 지 2년 만에 발굴작업이 시작되는 속사정을 알아보고, 현재까지 수습된 40여 구의 유골과 유품을 공 개한다.
그리고 200여 구의 유골이 더 매장된 것으로 추측되는 폐광도 최초 로 공개한다. 유골의 주인은 보도 연맹원으로 추정되는데, 그 날 의 현장을 목격한 주민들과 매장에 동원된 사람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당시 상황을 들어본다.
* 전국을 누비며 밝힌 민간인 학살 보고서
1. 김천에서 발견된 유골은 형무소재소자가 맞나? 또 그 유골은 왜 재매장 되었나?

2003년 5월, 김천형무소에서 약14㎞ 떨어진 곳에서 유해와 탄피가 발견되었다. 유가족들은 김천형무소에서 수감되어있던 가족들이 학살당한 것이라 주장했으며, 목격자와 <김천시지>의 기록도 이 를 뒷받침했다. 반면 법무부에서는 당시 재소자들을 대구형무소 로 이관했다고 일축했다.
그 자리에 묻힌 그들은 누구였을까? 재소자라면 왜 집단학살 되었 을까? 1년 만에 다시 찾은 매장지역의 유골은 다시 땅속으로 자취 를 감추고 있었는데, 유골이 재 매장된 이유는 또 무엇일까?
2. 96년 특별법이 제정됐는데도 거창 유가족회는 왜 반발하 나?
거창민간인 학살의 경우, 96년 제정된 특별법에 따라 행정자치부 산하의 거창지원단이 명예회복과 위령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 른 지역에 비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상당히 진전되었음에도 불 구하고, 유족들은 정부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거창 유족회를 만 나 그 진의를 파악해본다.
3. 고양시 금정굴에는 누가 묻혔나?
2002년 고양시의회에서 ''''금정굴 희생자 위령사업 촉구결의안''''이 상정되었을 때 지역보수단체는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펼쳤다. 이유 는 "경찰과 우익청년단에 의한 민간인이 학살되었다는 주장만 듣 고 위령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수단체 역시 인민군 과 좌익에 의해 학살당한 우익들이 금정굴에 묻혀있다고 주장하 고 있다. 과연 금정굴에 묻혀있는 유골들은 누구이며, 누구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인가?
4. 단양 곡계굴은 제2의 노근리?
400여명의 마을주민과 피난민이 모여있던 곡계굴 앞에 비행기 4대 가 폭격을 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었다. 당시 생존자들은 미군 에 의해 자행된 것이라고 증언하며 "노근리 사건과 같은 대우를 해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관계당국은 노근리 사건 해결 이후 에 "좀더 지켜보자"는 답변 뿐 아직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다. 곡계 굴에 비행기를 투하한 것이 미군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외에도 제작진은 해남, 함평, 문경, 고양, 아산 등 전국을 누비 며 학살의 현장을 담았다.
* 61년 혁명재판 당시, 진상규명하려는 유족회에 공소 제기한 검찰관 최초인터뷰
4·19민중운동으로 나라의 숨통이 트였을 때, 국회 차원의 민간인학 살 진상조사단이 구성되었고, 유족들도 전국을 누비며 진실을 파 헤치려 노력했다. 하지만 5.16의 군홧발이 등장하면서 모든 상황 은 역전되었다.
애써 유골을 수습해 안장해 놓은 합장묘는 소리없이 파헤쳐지고, 유족회 간부들은 이적행위를 죄명으로 전원 혁명재판소에 회부되 었던 것이다. 유족회 간부에게 공소를 제기한 검찰관을 직접 만나 혁명재판이 진행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들어본다.
*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누가 가로막나
지난 2월 민간인희생사건 진상규명법이 국회에 상정되기 전 국회 밖에서는 법안 제정을 둘러싸고 상당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유족 들은 길바닥에 유골을 펼쳐놓고 오열을 했는가하면, 보수단체 회 원들은 태극기를 들고나와 "나라를 지키자"고 소리쳤던 것이다. 상 반된 입장을 보여주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한편, 국회에서는 민간인희생사건 진상규명법이 2번이나 상정되었 지만 결국 제정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통합특별법이 부결된 잠시 후에 개별(거창지역) 유족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법 안이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통합법 제정은 부결되고 개별 보상법은 가결된 그 내막을 들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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