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 27일 (화) / 제 577 회
▣ 친일파는 살아있다
우리나라의 친일파는 해방 이후 새로운 이익집단들 속에서 이합집
산을 반복하며, 정치와 사회, 경제 전 부문에서 친일파가 다시 득
세하는 불합리가 버젓이 이루어져왔다. 현재 우리 사회의 모순과
질곡까지 강제한 친일파의 실태와 엇나간 역사에 대해 살펴본다.
친일파는 살아있다
지난 7일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여야의원 154명이 공동 발의
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두고
논란이 빚어졌다. 정부 입장을 밝히기 위해 참석한 김주현 행정자
치부 차관은 “처벌 대상과 관련, 후손들이 반발해 국민적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며 사실상 특별법 제정 반대의 입장을 밝혔기 때문
이다. 또한 심사 과정을 지켜봤던 독립유공자협회 등 시민단체 측
은 심사소위에 참석한 일부 국회의원들의 태도가 더 문제였다며,
몇몇 국회의원들이 특별법 손질에 나서며 ‘친일 청산’이란 법의 취
지를 사실상 퇴색시켰다고 말했다. 국민의 대표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국회가 친일 청산을 가로막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시
민단체에서는 취재진에게 6~70년대 이승만이 친일파를 정부 요직
에 대거 등용시킨 사실을 주목해야한다며 친일 진상규명을 가로막
는 국회의원이 이들 친일파들의 후손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파
사후 40년 만에 안두희씨에 의해 김구 암살의 배후로 지목되어 세
간의 화제를 불러모았던 전 특무부대장(현 기무사) 김창룡 씨. 취
재진은 일본 관동군 헌병대 출신으로 독립운동가들을 색출하는 일
에 앞장섰던 그가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국립묘지에 안장되어있다
는 제보를 받고 사실확인에 나섰다. 김씨의 묘는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정권이 이양되던 98년 2월, 어수선한 시기를 타서
이장되었다. 시민단체들은 그의 묘는 정권인수기의 어수선함을 노
려 전격 이장된 것으로, 기무사 내부의 누군가에 의해 조직적으로
계획된 일이라는 주장을 폈다. 친일로 불명예를 안고 인적이 드문
야산에 조용히 묻혀야만했던 친일파 - 김창룡 씨. 취재진은 유족들
과 국방부 관계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그를 국립묘지에 안장시킨
배후를 추적했다.
친일파 후손의 땅 찾기 소송
최근 인천 시민들에게 반환될 예정인 부평의 한 미군기지를 둘러
싸고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7년에 걸친 지역시민운동의 성과로 인
천 시민들에게 반환될 예정인 부평의 이 땅에 대해서 이완용과 함
께 친일파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송병준의 후손이 소유권을 주장하
는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확인결과, 이번 소송 대상인 3천 평
(시가 60억)은 전체 13만 평 대지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송대상이 아닌 나머지 13만 평의 현재 시가는 6천억
원. 송 씨측은 3천 평의 땅을 되찾으면 전액 사회를 위해 쓰겠다며
소송 동기를 밝혔다. 하지만 이번 소송에서 이길 경우 시가 6천억
상당인 나머지 땅에 대한 권리가 송씨에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송
씨의 기증 의사는 설득력이 약해보였다. 실제로 취재결과 부평 기
지 주변에서는 ‘송씨’가 택지 브로커와 함께 토지 매매를 시도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어렵게 만났던 송씨의 변호사 이모 씨
는 송씨로부터 전액 기증의 약정서를 작성하는 조건으로 소송에
임했다고 밝혔다. 그가 취재진에게 보여준 약정서의 진실을 「PD
수첩」에서 공개한다. 친일파 후손의 땅 찾기 소송, 법원은 과연
역사의 편에 설 것인가?
친일 청산은 과거가 아닌 오늘의 문제
김활란 상 제정에서부터 홍난파 기념사업에 이르기까지 친일혐의
자에 대한 기념사업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학재단의 설립자
로서 일제시대 여성계의 대표적인 친일파인 ‘황신덕’. 황씨의 후손
들로 이루어진 사학 재단은 그녀의 친일 행각을 덮어둔 채 J여고
학생들을 상대로 각종 기념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기념 사업의 정
당성을 묻는 취재진에게 재단 측은 ‘친일이냐 애국이냐는 보는 시
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라며 설립자의 친일행위에 대한 문제제기
는 ‘보는 시각 차’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친일혐의자들의 경우 친일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기 전
까지는 기념관 건립, 동상 제정 등의 기념 사업은 유보되어야한다
는 견해를 내놓았다. 대중을 상대로 한 기념사업들이 자칫 친일이
라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기념사업 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 지도층의 친일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가 그 후손들과 후학들에 의해 차단되는 학계 현실에 있
다. 모교 미대 교수들의 친일 행각을 논문에 인용했다는 이유로 재
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서울대 김민수 교수는 5년째 학교 측과 싸우
고 있다. 김교수는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친일 청산’은 금기
인 것 같다며 취재진에게 씁쓸한 심경을 토로했다. 친일행위에 대
한 국가적 차원의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는 한 친일문제는 현재
형일 수밖에 없다. 역사적 과오를 덮어두는 것은 미래를 위해 바람
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친일문제의 극복 없이는 우리 사회의 진보
란 기대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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