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9일 (화) / 제 571 회
▣ 남과 북이 버린 사람들, 국군포로
MBC「PD수첩」에서는 중국 내 국군포로들의 열악한 상황, 죽음
을 무릅쓴 한국행의 과정, 그리고 한국사회에 정착한 국군포로들
의 생활을 살펴보고, 그들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은 없는지 알아본
다.
지난 11월 1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공항에서 위조 한국여권을 소
지한 채 한국으로 탈출하려던 국군포로 출신 탈북자 전용일(72)씨
가 중국 공안에 의해 검거된 사건이 있었다. 북한과의 접경지역인
지린성 투먼의 탈북자 수용소로 압송된 전용일씨는 북한으로의 강
제송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이번 주 <조국은 나를 잊
었다>에서는 전용일씨 사건을 살펴보며 중국 내 국군포로의 탈출
정황 및 국내로의 송환 문제 등에 대해 상세히 점검한다.
▶ 국군포로 - 브로커의 표적이 되어버렸다.
국군포로는 귀환할 경우, 일반 탈북자보다 10배 이상의 많은 정착
금을 받는다. 중국 내에 있는 브로커들은 국군포로가 받게되는 밀
린 군 월급 및 연금 등의 수 억 원의 정착금을 노리고 그들에게 접
근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전용일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
생 수일씨는 "10여명의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와 형님을 한국으로
무사히 들어오게 해주겠다고 말하며 돈을 요구해 무척 당황했
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8월 초 입국한 국군포로 출신 정 모씨의
경우도 브로커의 개입으로 한국행이 쉽지 않았다. 중국 옌지의 조
선족 브로커 박씨는 정씨 가족들에게 돈을 요구하며 정씨를 보름
간 가둬놓았다.
▶ 나도 고향에 가고 싶습니다 - 어느 국군포로의 절규
취재팀은 북한의 국경을 넘은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는 한 국
군포로를 극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현재 어느 조선족의 도움으로
연길에서 은신하고 있다는 그는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한
사연을 취재진에게 털어놓았다. 하루 빨리 고향 땅을 밟고 싶다는
그의 절규를 들어본다.
▶ 죽음을 넘는 사람들 - "죽더라도 한국에 가서 죽겠습니
다."
지난 94년 입국한 한국 최초의 국군포로 조창호씨와 지난 98년 국
경을 탈출해 한국으로 온 장무환 씨. 그들은 죽음으로부터의 위협
에도 불구하고 국경을 탈출해서 한국으로 왔다. 탈북 당시의 심정
을 묻는 취재진에게 그들은 "죽더라도 한국에 가서 죽겠다는 심정
으로 탈출했다."며 절박했던 그 당시의 상황을 회고했다. 이렇게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한국행을 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전 일병 구하기'''' 국가의 의무다.
죽기 전에 고향 땅 한번 밟아보겠다며 많은 국군포로들이 북한 국
경을 넘는다. 하지만 그들 중 극소수의 사람만이 한국으로 오는데
성공한다. 그만큼 한국으로 오는 길은 험난하고도 위험하다. 레이
건 대통령은 재임시절, "모든 유해와 실종자를 찾을 때까지 우리
는 당신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라고 연설했다. 이 연설을 미
육군 중앙신원확인소의 슬로건으로 삼고 죽은 병사의 유해를 북으
로부터 받아냈던 미국의 모습과 한국 정부의 그것은 딴판이다.
사선을 뚫고 어렵게 북한 국경을 탈출한 국군포로들이 조국의 정
부와 국민들에게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NGO 단체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때라고 지적한다.
목숨을 걸고 전쟁을 수행했던 국군포로들의 처우에 대한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그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대안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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