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0회  ㅣ  200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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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23일 (화) / 제 560 회


▣ 내 목숨을 헛되이 말라 - 이경해

온 나라가 한가위의 즐거움에 들떠 있던 지난 9월 10일 저녁, 멕시코 칸쿤에서 전 국민을 경악시킨 비보가 날아들었다. 한국의 농민 운동가 이경해씨가 할복 자살했다는 소식이었다. 우리 농민 을 말살시킬 WTO에 대한 반대 집회를 하기 위해 멕시코 칸쿤에 가 있었던 그는 그와 같은 방법으로 자결을 택한 것이다. 도대체 WTO가 우리 농민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이기에, 현재 우리 농민의 삶은 얼마나 절박한 상황이기에, 머나먼 이국 땅에서 우리 의 농민은 생존을 부르짖으며 할복 자살을 해야만 했는가. 농민들 은 이경해 씨의 삶이 바로 한국 농민의 삶이며 그의 죽음은 바로 우리 농민이 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음을 토로하고 있다.
* 이경해, 상록수를 꿈꾸었으나... 故 이경해씨가 농민을 위해 몸을 던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 다. 지난 1990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UR체제에 반대하며 할복하여 이미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바 있고 농민을 위해 수 십 차례의 단식도 감행한 바 있는 그는, 말 그대로 열혈 농민운동가였다. 농업대학을 졸업했으며 주목받는 영농후계자로 한때 100마리가 넘는 젖소를 사육하며 후계자를 양성하던 소위 잘나가던 농부 이경해씨. 그는 다만 중년의 생활이 도시민과 마찬가지로 내 차를 가지고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삶이길 꿈꾸는 소박한 농부였 다. 평생 땅을 사랑하겠다며 세 딸들에게 흙을 만지게 하고 함께 분뇨를 펐던 그였다. 하지만 한국 농업의 몰락과 더불어 그의 꿈도 산산이 부서졌다. 500만원이 사들이 젖소가 순식간에 150만원으로 폭락하고 그 매입 대금은 부채로 돌아왔다. 농가부채의 부당함과 싸우고자 부채상환 을 끝끝내 거부하고 부인과 함께 가꿨던 5만여평의 농장은 결국 2억원의 헐값에 경매로 넘어가고 말았다. 한국 농정의 실패가 소박한 한 농민을 열혈운동가로 바꾸고 만 것이다. 결국 둘째 딸 의 결혼을 바로 코앞에 남겨두고 먼 이국땅에서의 자결로 파란만 장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성실한 농부에서 열혈 농민운동가로 순탄치 않았던 그의 인생은 그 만의 독특한 사연이 아닌 전 농민 의 한결같은 인생역경과 많이 닮았다고 한다.
* 이 땅에서 농부로 산다는 것 지난 18일 경북 성주에서 열린 故 이경해 씨 추모 집회에서 또 다른 농부 박동호씨가 "이경해 열사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분신 자살을 시도했다. 이경해씨의 죽음이 한 개인의 일이 아닌 전 농민의 문제라는 것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우루과이 라운드, WTO, FTA 등 급변하는 국제 정세는 농산물 개방으로 이어져 농민의 숨통을 조여 오고 무책임하고 졸속한 정부의 농업 정책은 농민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만들고 있다. 이 땅에서 농부 로 산다는 것은 절망적 삶을 의미한다는 농민들의 분노에 찬 목소 리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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