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18일 (화) / 제 533 회
▣ 죽은자가 말하는 진실, 검시(檢屍)
자신의 아내와 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이도행씨에게
무죄판결이 확정되었다. 사형과 무죄를 오가며 8년간 계속되었던
법정 공방이 마침내 막을 내린 것이다. “치과의사 모녀살해사건”
이라 불린 이 사건은 경찰과 검찰의 수사관행과 검시제도에 중대
한 경고를 하고 있다. 고문과 강압에 의해 이루어지는 수사와 기소
는 사라져 가고 있지만, 아직 과학적인 감식과 전문가에 의한 법의
학적 검시는 걸음마 단계에 있다. 올바른 검시제도의 확립을 가로
막고 있는 현실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해본다.
치과의사 모녀살해사건이 남긴 것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의 최대쟁점은 피해자의 사망시간이었다.
사망시간이 남편 출근시간인 오전 7시 이전이면 남편이 범인이고,
7시 이후면 제 3의 인물이 범인이었다. 시체에서 드러나는 반점과
강직 정도 그리고 위 소화물의 상태를 근거로 사망추정시각이 7시
이전이라며 검찰은 이도행씨를 기소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기초
자료는 너무나 부실한 것이었다. 오히려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법
의학적 근거들은 7시 이후에 사망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었다.
또한 두 번에 걸쳐서 진행된 화재 재현실험은 발화시각이 8시
30분경이라는 것을 과학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검찰은 지연화재
의 가능성만을 추정할 뿐, 7시 이전에 화재가 시작되었다는 어떠
한 입증도 못한 상황이다.
당시 사건현장에 출동한 현장 감식반은 사망시각추정에 결정적
인 사체의 직장온도조차 재지 않았고, 사체가 담겨있던 욕조물의
온도도 며칠이 지난 후 당시 수사관 손등에 떨어진 물의 온도를 추
정한 것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시체가 보여주는 수많은 사실들을
법의학자들이 보지 못하고 이루어지고 있는 현행 검시제도의 맹점
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건 당사자인 남편 이도행씨를 직접 만나 그동안 담아왔던 심
경을 생생하게 들었다. 이도행씨는 진범은 반드시 잡힐 것이며, 공
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즉각 재수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엉성한 검시제도가 생사람잡는다
부검소견만을 중시한 무리한 수사로 인해 범인이 되는 경우도 있
다. 아내 살해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8개월간 감옥
생활을 했던 한현수 씨. 우유배달을 위해 타고 가던 트럭의 문이
저절로 열리면서 졸고 있던 부인이 차도로 떨어져 사망한 사고였
다. 그러나 경찰수사과정에서 이 사건은 보험금을 노린 살인사건
으로 변질되었다. 근거는 국과수의 부검감정서. 사망한 부인의 두
개골에서 발견된 손상이 ‘교통사고시 동반할 수 있는 손상소견이
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내용때문이었다. 수사과정에 단 한 번의
자백도 없었지만 1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억울한 감옥생활에 당뇨까지 얻어 현재 투병생활 중인 한씨. 극
심한 대인기피증세에 시달리며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파탄
난 그의 인생은 잘못된 수사와 검시제도의 폐해를 보여주는 한 단
면일뿐이다.
3만원짜리 시체 검안서,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자연사나 병사를 제외한 변사의 경우, 현행법상 일반 외과의사는
물론 치과의사나 한의사도 검시를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또한
그 비용은 단돈 3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너무나 형식적으로 진행
되고 있다. 시체에 담겨있는 진실이 미처 법의학적으로 확인되기
도 전에 화장되고 있는 셈이다.
의혹이 있는 사망사건의 경우 검시를 할 수 있는 전문가가 현장에
출동해야 하며, 전문가의 소견을 바탕으로 부검여부가 결정되어
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법의학적 소견이 부족한 수사팀과 검찰이
수사상의 편의만을 이유로 부검이 결정되는 상황이다. 사건 현장
에 수사형사와 현장감식팀 그리고 법의학 검시관이 함께 출동하
는 미국의 검시제도를 통해 우리나라가 가야할 방향을 조망해보았
다.
취재 과정중에 서울 시경 감식팀과 일부 법의학자들이 변사 현
장에 함께 출동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도 카메라에 잡혔다. 비
록 제도적으로 보장되지는 못하고 있지만, 경찰감식팀과 뜻있는
법의학자들이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변사사건
의 경우에 이루어지는 현장감식과 실제 검시의 모습이 국내 최초
로 공개된다.
이번 < PD수첩 >은 치과의사 모녀살해사건을 통해 드러난 현장감
식과 법의학의 문제 즉, 한국의 검시제도를 진단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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