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25일 (화) / 제 530 회
▶ 대통령의 취임사, 그 후 5년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
그러나 IMF라는 국가적 위기사항 앞에서 이러한 의미는 되새길 틈
조차 없었다. 대통령의 취임사는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땀과 눈물’
을 호소하며 곳곳에서 목이 메였고 개혁은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5년의 임기가 끝난 지금, 김대중 정부는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까? IMF 극복과 노벨상 수상, 그리고 남북간의 평화정착이라는 성
과에도 불구하고 집권 후반기에 집중적으로 터진 각종 게이트와
일련의 개혁정책의 실패는 김대중 정부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는 이 날, 김대중 정부 지난 5년간
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봄으로써 새정부의 과제가 무엇인지 냉정
히 밝혀본다.
DJ 노믹스 -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IMF 외환 위기는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에 절대절명의 극복 과제
였다. 당선자 시절에서 집권초기 1년 동안 벌어진 숨가쁜 경제외교
와 국민들의 뼈저린 고통 감내를 통해 외환위기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극복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취임사와 99년 8.15
경축사에서 밝힌 이른바 ‘경제 개혁 5+3 원칙’은 한국 경제의 구조
적 요인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IMF 위기 극
복과 경제 개혁의 한계를 엄정하게 돌아본다.
햇볕 정책 -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김대중 정부는 대통령 자신이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상징해
온 만큼 그에 걸맞은 개혁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족법 개
정, 모성보호법 제정 등 여성정책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포함, 의문
사 진상규명,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 정책
들이 추진됐다. 특히 ‘햇볕 정책’으로 표현되는 대북포용정책은 남
북정상회담을 통한 남북한의 평화, 공존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
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대북송금 문제는
‘비밀주의’라는 비판과 함께 정책 결정에서의 투명성 확보라는 과
제를 다음 정부에 남겼다.
의욕적인 3대 개혁 정책 - 개혁은 있으나 내실이 부족하다
김대중 정부의 집행력이 저하되고 지지율이 급락한 데는 의
욕적으로 실시했던 생활상의 개혁과제들이 표류하면서 극적으로
드러났다. 취임사에서 밝혔던 교육개혁과제는 2001년 수능 쇼크에
서 문제점을 천하에 드러내게 되었는데, 교육주체들 간의 합의와
여건 조성 없이 단기업적 주의로 추진되는 정책의 한계를 보여주
었다. 치밀한 준비 없이 시행된 정책이 이익집단의 힘에 밀릴 때,
국민들이 겪게 되는 부담이 무엇인가를 의약분업 사태는 보여주었
다. 초기 대언론 유화정책에서 세무조사라는 칼을 꺼내들었던 후
반기까지, 언론 개혁에 대해서는 뚜렷한 기조와 정책이 부실했음
을 보여주었다.
미완의 개혁 - 그 원인과 결과
미완의 개혁들은 결국 각종 권력형 비리 사건과 어우러져 김대중
정권은 결정적 타격을 받았다. ‘국민이 없는 국민의 정부’라는 소리
를 들어야만 했고 통치력은 급속히 약화되었다. 미완의 개혁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김대중 정권의 한계는 무엇이었는지 짚어본다.
PD 수첩은 이러한 김대중 정부의 5년을 분석함으로써, 김대중 정
부와 똑같이 여소야대의 상황 속에서 출범하는 차기 정부가 타산
지석으로 삼아 가야할 방향을 시사해 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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