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22일 (화) / 제 516 회
▣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 - 북파공작원
지난 3월 15일 세종문화회관 앞 , LP 가스통과 쇠파이프가 동원
된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HID 북파공작 설악동지회’ 회원 250
여명이 ‘실체인정’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것. 이들
은 국가가 세 번 속였다며 울분을 토했다. 물색관의 감언이설에 속
은 입대, 훈련과정에서의 참혹한 인권유린, 제대후 지켜지지 않은
보상문제가 그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국내 정치공작에도 이용되었
다고 토로하는데... 사회적 불평등과 편견, 그리고 무책임한 정부
로 인해 여전히 우리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있는 북파공작원
들!!! PD 수첩에서는 북파공작원의 참혹한 인권유린과 함께, 그들
이 사회를 상대로 싸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심층 취재했다.
참혹한 인권유린! 우리는 인간이고 싶었다!
북파공작원들의 훈련내용을 담은 영상물이 설악동지회에 의해
공개됐다. 일반인으로서는 그 존재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은밀한 부
대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나드는 가혹한 훈련에 견디다못해 상당
수 공작원들이 도망을 치거나 자살하기도 했다는 것. 실제로 82년
2월 탈영을 한 목철호씨는 ‘지휘관의 강요’로 인해 동료들에게 맞
아죽은 것으로 드러났다. 박한식씨의 경우 역시 구타 후 체육관 고
리에 매달려 있다가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가혹한 구타와 훈련
을 이기고 무사히 제대를 하더라도 십수년동안 사회에 적응을 제
대로 못하고 정신적인 후유증을 앓고 있는 대원들도 많았다. 더 기
막힌 사실은 부모의 부고조차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회와
철저히 격리되어 휴가도 외박도 없이 수년동안 그들이 받은 참혹
한 인권유린. 동료들과 유가족들의 증언을 토대로 하나하나 파헤
쳐 본다
국가가 벌인 사기행각! “돈 없고 빽없는 사람만을 선출했다”
생활안정자금과 평생직업 보장 등에 속아 입대를 하고 혹독한 훈
련을 받았지만 정작 사회에 나온 그들에게는 그 어떤 보상도 없었
다. 도리어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국가를 위한 침묵하라는 압력 그
리고 사회의 편견과 오해뿐이었다. 2002년 2월 일괄적으로 발송된
전사통지서는 가족의 생사를 기다리던 수많은 유가족들의 할말을
잃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죽거나 행방불명되어도 문제가 일어나
지 않을 사람들만을 선택했다는 물색관의 말처럼 그들은 철저하
게 이용당하고 버려진 것이다. 더구나 제대 후 정치 공작에 이용되
는 경우조차 허다했다. 국가를 위해 일했지만 안보를 이유로 버려
진 북파공작원, 국가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가.
우리도 북파공작원이다!
3월 15일에 이어 9월 29일에도 HID 설악동지회 회원들의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인정하고 명예를 회복해
달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 지난해 ‘국가 유공자 예우․지원법’이 개
정되면서 이 문제는 해결되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
가 발생한 것일까. 2001년 12월 개정된 법에는 72년까지 활동한 북
파공작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되어있다. 문제는 72년 이후
에 활동한 HID 북파공작원들. 어떤 대책도 제시받지 못한 그들이
지난 3월 시위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9월 국정감사와 시위 이후,
정부는 60년대부터 94년까지 활동한 북파공작원들에게 11월부터
위로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10월 1일 발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80
년 이후의 북파공작원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인정을 하지 않고 있
다.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과격한 시위
에 나선 북파공작원들과 빠른 해결보다는 방치한 채 시간을 끌고
있는 정부. 과연 정부와 이들 사이에 해결의 실마리는 없는 것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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