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우승해야 본전.

정규묵 기자 mook@mbc.co.kr

* 삼성, 그 돈 가지고 우승 못하면 본전(?)

프로야구 개막이 있기 며칠 전에 열렸던 미디어데이.
8개구단 감독들의 올 시즌 출사표를 들어보는 자리에서. 8개구단 감독들은 대부분 거액을 베팅해 FA를 잡는데 성공한 삼성을 우승 후보로 꼽았다. 그러면서 롯데 양상문 감독은 삼성 선동렬 감독을 향해 "스페인의 레알마드리드도 호화진용을 갖추고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는 말로 삼성을 비꼬았다.
(결론적으론 삼성은 우승했고, 양상문 감독은 꼴찌탈출과 5위라는 희망을 남기고도 재계약에 실패했다.)

삼성은 보란 듯이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시즌 내내 두산과 선두 다툼을 벌였지만 무난히 1위를 달성했다. 그 만큼 투자했는데, 우승못하는게 이상하다라는 소리도 나왔다. 삼성으로서도 우승해야 기껏 본전을 찾는셈이였다. 하지만 다들 한국시리즈 우승은 힘들거라고 얘기했다.
두산의 상승세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

두산은 정규시즌 막판 SK에 밀려 3위로 내려앉았지만, 마지막 투혼으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여기엔 라이벌 LG가 정규시즌 마지막 날 2위 SK를 잡은 공이 매우 컸다. 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 3연승을 거두고 한국시리즈에 올라온 두산 김경문 감독은 패기에 찼다. 삼성마저도 꺾을 태세였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우리팀에는 큰 문제점이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선동렬 감독보다 더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결과는 4대0 완패.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삼성에 무릎을 꿇었다. 선발진은 제 역할을 다 해 줬지만, 타선은 끝내 터지지 않았다. 이래서 단기전은 투수 놀음이라 했던가?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패한 뒤 다시 한 번 패배의 쓴 잔을 들이켰고, 팬들 역시 우승에 도취해 춤판을 벌인 삼성 선수들 앞에서 다시 한 번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야했다.

* 숨은 MVP는 권오준(?)

삼성의 우승을 놓고 모두들 선동렬 감독의 지도력을 1순위로 꼽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는 역시 지키는 야구의 대가였다. 타자보다는 투수에서 승부가 갈릴 것이라는 그의 말은 예언처럼 들어맞았다. 무엇보다 철저한 분업화와 선수 관리, 그리도 선수에 대한 믿음이 빛났다.

선동렬 감독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요즘 투수중에 권오준의 볼이 제일 좋다고 자신했다. 한 때 손바닥이 피가 안 통해 경기에서 빠지곤 했던 권오준을? 과연 구위가 어떤지 정말 궁금했다. 얄미울 정도로 모든 인터뷰에 자신감이 넘쳤던 선동렬 감독의 말이 틀리지는 않을까

하지만 결국 빈말은 아니었다. 부상당한 박종호 대신 깜짝 활약을 보인 김재걸, MVP를 탄 오승환 역시 삼성 우승의 숨은 주역이긴 하지만, 권오준의 투구는 말그대로 압권이었다. 6회 넘어 두산의 추격의 불씨를 살릴 때 쯤이면 저승사자와 같이 나타나 두산 공격의 숨통을 끊어놨다. 빠른 직구와 코너웍, 승부구로 가져간 체인지업은 '삼성의 일류주의' 투구다웠다.

오승환이 MVP를 타긴 했지만, 2차전 연장전에 나와 무실점 투구를 한 것을 빼고는 오승환은 사실 권오준이 차려준 밥상을 그냥 먹기만 한 셈이었다. 단지 권오준은 중간에 나왔기 때문에 언론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진 듯한 인상이었다. 지난해 프로야구 신인상 시상식에서도 군대까지 갔다온 권오준은 준우승팀의 핸디캡을 안고 현대 오재영에게 신인왕을 내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또 다시 MVP를 받진 못했다. 상복이 없는 사나일까. 한국시리즈 우승 후 팀 선배들이 잠실 구장의 파브존에 홈런을 날려 삼성 파브 TV를 결혼 선물로 준다했는데, MVP를 못탄 것보다 파브를 타지 못한 것이 더 아쉽다고 했다.

비록 상복이 없으면 어떻하랴...권오준의 투구는 삼성과 두산 뿐 아니라 프로야구 팬들에게 삼성이 추구하는 명품투구로 기억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