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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특집 리뷰> 80년 5월 두 개의 내란
작성일 : 2006.05.17
조회 : 

5.18 25주년 특집 80년 5월, 두 개의 내란

 MBC스페셜-2005년 5월 17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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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항쟁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실은 제대로 규명되고 있지 않다. 특집 다큐 「80년 5월, 두 개의 내란」에서는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과 신군부, 이들에게 맞서 투쟁한 광주 시민들, 피해자이면서도 참극의 주범으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았던 김대중의 국면별 움직임을 분석하고, 당시 군 고위 관계자와 광주 현지 지휘관들의 증언을 통해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진실에 한발 더 다가서려 시도했다.

1. 5.17 비상계엄확대는 전두환과 신군부가 급조한 작전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 권정달의 진술에 의하면, 당초 비상계엄 확대조치는 5월 20일 이후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5.15 대규모 학생시위 등 국민적 민주화 열기를 감지한 신군부 세력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전군주요지휘관 회의를 통해 군의 의지를 모아 대통령을 압박했고 5월 17일 밤, 무장군인들이 도열한 국무회의장에서 국무위원들은 8분 만에 계엄확대를 결의했다.

2. 전차와 무장헬리콥터를 동원하여 광주사태를 신속히 진압하라!

당시 광주 현지 지휘책임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육군참모차장 황영시는 무장 헬리콥터와 전차를 동원해서라도 사태를 신속히 진압할 것을 수 차례 강요했다. 또한 지휘체계가 2원화되어,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현지 사령관의 명령을 듣지 않고 특전사령관 정호용의 말에 절대 복종했다.

3. 50일간의 지하 공화국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철저히 조작된‘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신군부는 김대중을 비롯한 재야 민주 인사 수십여 명을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두 달간 가두어놓고 갖은 고문과 협박, 회유를 통해 내란음모사건의 시나리오를 창작해냈다. 학생 시위를 배후조종하여 폭력 사태를 일으키고, 흥분한 민중이 합세하면 군과의 유혈충돌을 일으켜 정부를 전복시킨 뒤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내각을 구성, 집권하려 했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4. 피고인 김대중, 사형

전두환은 광주사태의 모든 원인을 김대중에게 돌린 뒤 사형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내란 예비음모의 법정 최고형은 무기징역. 결국 김대중은 70년대 일본에서의 반유신투쟁 당시 인연을 맺었던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의장직 수락과 관련, 국가보안법상 반국가 단체 수괴 혐의로 육군군법회의와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5. 신춘 계획 4호

제 11대 대통령으로 등극한 전두환은 쿠데타로 얻은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받기 위하여 레이건 美대통령을 접견하려 했다. 전두환 방미와 김대중 사면을 둘러싼 한미간의 비밀 협상 프로젝트에는‘신춘 계획 4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당시 협상을 진행한 손장래 주미공사는 김대중의 대법원 사형 판결과 연이어 발표된 감형 날짜가 전두환의 방미 일정에 맞추어 계산된 것이라고 말한다. 열흘 간의 방미 일정 동안 레이건이 전두환에게 내준 시간은 단 10분, 이를 위해 한국이 준 것과 받은 것은 무엇인가. 쌀 추가 수입과 무기 구입의사를 밝힌 비밀 문서 공개.

 

5.18 특집 내 친구 김동관

 MBC스페셜-2006년 5월 14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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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친구

사회운동가에서 늦깎이 법조인이 된 나, 전성은 최근 대학동창모임에서 오랜 친구의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학창시절 함께 혼란한 시대를 고민했던 친구 동관이가 정신병원에 있다는 것! 활달한 성격, 잘생긴 외모로 대학시절 킹카로 통했던 친구 동관이. 대체 내 친구 김동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 80년 5월 이후 시작된 정신질환

1979년 5월 군 입대. 9월 특전사 3공수여단 본부대 배치. 10월 부마항쟁 투입. 이후 12.12 군사 쿠데타를 거쳐 80년 5월 광주항쟁 진압군 투입까지. 굴곡 있는 지난 현대사의 중심에 섰던 김동관. 그러나 광주에서 돌아 온 직후, 동관은 지나가는 군인에게 시비를 걸고, 시민에게 총을 겨눈 특전사를 쏴 죽여야 한다는 등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제대 후, 82년부터 시작된 긴 정신병원 생활. 외아들의 정신병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어머니는 긴 병수발에 눈물도 말라버렸다. 술에 취해 무서운 눈빛으로 ‘폭도가 온다’며 고함을 지르는 모습을 본 친구들은 친구가 무섭다며 떠나갔다. 11년 간의 결혼생활도 파경을 맞았다. 발작이 시작되면 이성을 잃고 칼을 드는 남편을 피해 아이를 업고 산으로 도망가야 했던 아찔한 결혼생활의 연속. 갓 중학생이 된 외아들이 떠올리는 아빠는 ‘무서운 괴물’이다.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친구 동관. 그러나 26년 동안 그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은 군인에 대한 분노와 증오이다.

3. 특전사 3공수여단 동료의 증언 - 5월 피바다가 된 광주 거리

80년 5월 20일. 7공수와 11공수의 시위 진압 사흘째, 3공수여단이 광주시내에 추가 투입되었다. 동관과 함께 광주에 투입됐던 3공수여단 본부대 소속 이상래 씨가 본 당시 광주역전은 피바다였다. 악화된 시내 상황에서 3공수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본부대 병력까지 실탄을 지급하고 광주역으로 내보냈다.또 동관과 함께 근무했던 3공수 본부대 행정병 장현일 씨는 군 생활에서 동관이 보인 정체성의 혼란을 구체적으로 기억해냈다. 과연 김동관이 광주에서 겪은 기억은 무엇일까?

4. 후유증에 시달리는 진압군 사병들    

한 선교원에서 만난 7공수여단 출신 사병 단모 씨는 광주 이후 불면증과 대인기피 증세를 보이다 급기야 정신착란 상태에서 형수를 살해했다. ‘형수가 너를 죽이려 한다’는 환청 때문이었다. 20사단 62연대 출신 김응래 씨는 시민군이 쏜 총에 옆에 있던 동료들이 죽는 것을 본 후 정신분열 증세를 보였다. 그는 남동생에게, 당시 시민군 학생들을 보고 ‘네가 떠올라 총을 쏘지 않았다’고 했다. 증세가 심해진 그는 2003년, 퇴원한 지 8일 만에 철길에서 사고사를 당했다.

5. 26년 만에 말문을 열다!

동관과의 MT를 계획한 친구들. 늦은 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동관이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광주에 대한 기억을 꺼낸 것이다. 3공수가 주둔했던 전남대로 돌격한 시민군 버스. 그리고 그가 목격한 충격적 진실! 광주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에게 지급된 실탄을 안 쏘는 것. 그것 밖에 없었다고 했다.

6. 시대의 아픔이 낳은 또 다른 김동관. 그리고 치유의 가능성

인천에서 5.18 꽃집을 운영하는 이광석 씨는 진압군에게 붙잡혀 고문 후유증으로 동관과 같은 정신지체 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그는 지금도 진압군이 잡으러 오는 꿈에 시달리지만 군인들 역시 또 다른 5.18의 희생자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지난 4월. 친구들의 주선으로 정신재활 전문가인 아주대 정신과 이영문 교수를 만난 김동관. 교수는 적극적인 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동관의 사회복귀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26년 만에 시도하는 제대의 몸짓. 그는 이제 과거의 기억을 털고 비로소 사회에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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