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 웃으면 복이 와요 > 이민호PD의 제작일지
박수홍을 기다리며...(2005.02.07)

* 2003년 2월 어느날 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나는 지금 극성스런 모기들과 사투를 벌이며 6미리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공항입국장 문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잠시 후면 윤정수가 도착할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촬영은 시작된다. 어쨌든 나는 그가 입국장을 빠져나오는 장면을 놓쳐서는 안된다.

모기들이 자꾸 입으로 들어간다. 연신 침을 내뱉는 내 주위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입국하는 외국인들의 짐이라도 들어줘서 팁이라도 얻어 보려는 어른들... 무작정 구걸이 목적인 아이들... 국제선 항공기가 들어올 쯤이면 이렇게 모인 사람들로 공항 입국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이런 공항 풍경을 그 후론 참 자주 보게 되었지만 그 때는 처음이라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오늘 새벽 다카에 왔다. 오전에는 비자 문제로 영사를 만났다.
'이게 근데 도대체 무슨 프로그램이죠?' 내 명함을 한 참이나 살펴보던 영사의 첫마디가 그랬다. 영사가 이제 갓 태어난 <아시아 아시아>를 알 리가 없지. 차근 차근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해줬다. 취지는 공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장비라고는 작은 비디오 카메라 하나에, 출연자 포함 4명의 초미니 촬영팀을 이끌고 온 나를 그는 도통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여러 가지 확인 과정을 거친 후에야 그는 우리가 데려가려는 출연자 가족의 한국행 비자 발급을 약속해 주었다. 이제 정수가 도착하면 '외국인 노동자, 비뿌'의 가족을 만나러 갈 것이다.

'사스(SARS)' 공포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덕분에 요즘 비행기 좌석은 텅텅 비어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2003년 여름 사스 공포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일반석 좌석 팔걸이들을 젖혀 만든 '특등석 베드'에 누워 비행기를 타고 다녔다.)
승객이 별로 없어서인지 입국장을 빠져나오는 정수의 모습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정수는 약간 놀란 눈치다. 사람들 틈에 낀 채로 나는 카메라를 돌린다. 이것이 <아시아 아시아> 첫 해외 촬영의 시작인 셈이다...



* 그로부터 약 2년 후.
  2005년 1월 9일 새벽.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지진해일로 온 나라가 피해를 입은 섬나라의 공항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취재진과 구호 단체 사람들로 전례없이 붐비고 있다.
나는 지금 수홍이를 기다리고 있다.
며칠 전 피해지역이 고향인 스리랑카 노동자 '하미드'와 함께 이곳에 왔다. 정수와 함께 그가 살던 마을을 촬영하고 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라져 버린 비극속에서도 다행히 하미드의 가족들은 무사했다. 생사를 몰라 애태우던 하미드가 웃음을 되찾았다. 그렇지만 폐허 그대로 방치된 도시를 뒤로 하고 돌아온 우리 일행은 무거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 한명의 스리랑카 노동자, '아노라'가 지금 수홍과 함께 오고 있다. 그의 가족과 고향은 과연 무사할까? 왜 이렇게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비극이 일어나는 것인지...

돌이켜보면 스탈린 시대에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우리 민족, 고려인의 비극도 이에 못지 않았다. 천재지변도 아니고 인간이 만든 비극이란 점에서 더 어처구니 없는 참사였다. 헤아릴 수 없는 동포들이 차가운 중앙 아시아의 동토에서 어이없이 굶어 죽었다. 그러나 모진 고난을 이기고 살아남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지금 남겨진 것은 또 다른 이산의 고통뿐이었다. <아시아 아시아>가 만난 많은 고려인 동포들이 아직도 비극의 굴레를 벗어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60년만에 겨우 고향땅을 밟을 수 있었던 일본군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비극은 또 어떤가? 그 할머니들의 국적 회복과 뿌리찾기를 도와 드리며 <아시아 아시아>의 대장정은 끝을 맺었다.

작년 5월 그렇게 <아시아 아시아>가 막을 내리면서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가을엔 코미디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사실 예능 프로듀서가 거의 17개월 동안을 슬픔의 현장에 주로 있었다는 것도 참 특이한 일이다.

그러던 어느날... 느긋하게 누워 TV를 보다가 지진해일로 어려움에 처한 스리랑카 노동자들의 사연을 알게 된 것은 작년 12월 30일 밤. <아시아 아시아>를 연출하며 두 번이나 방문한 나라여서인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예전 <아시아 아시아> 제작진 모두 비슷한 느낌이었나보다.
1월 2일, 그 사람들이 다시 뭉쳤고, 겨우 3일만인 1월 6일에 우리는 스리랑카에 올 수 있었다. 출연자, 작가들의 그런 진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스케쥴이었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종영한지 반년이 넘었는데도 '이게 근데 도대체 무슨 프로그램이죠?' 라는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많은 분들이 <아시아 아시아>를 기억하고 기꺼이 도움을 주셨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 먼저 온 우리들은 콜롬보 공항에서 '아노라'와 수홍이를 기다리고 있다.
공항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2년전 어느 날, <아시아 아시아> 첫 촬영때도 그랬었는데... 그 후 프로그램을 계속하면서 눈물 속에서도 언제나 웃음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했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런 자연의 대재앙앞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을지...

비행기의 착륙 시그널이 전광판에 떴다.
나는 지금 극성스런 모기들과 사투를 벌이며 6미리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공항입국장 문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잠시 후면 박수홍이 도착할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촬영은 시작된다. 어쨌든 나는 그가 입국장을 빠져나오는 장면을 놓쳐서는 안된다.

아노라의 고향까지는 차로 6,7시간. 밤새 달리면 아침에는 도착할 수 있겠지. 그곳에서 웃음과 희망도 함께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