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대의 외면을 받던 저녁 8시20분 일일드라마 시간대에 방영되는 ‘거침없이 하이킥’은, 어떻게 네티즌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다양한 광고스타들을 배출했을까. 무엇이 달랐을까.

# 촘촘히 얽혀있는 캐릭터의 향연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단연 빛나는 것은 캐릭터였다. 기존 시트콤이 매우 전형적이고 예상가능한 인물들을 창조해 ‘커플놀이’를 통해 재미를 창조했다면, ‘거침없이 하이킥’은 우리 주변에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인물들을 선보였다.

캐릭터가 복잡해지니 인물간 갈등도 다양해졌다. 이들 인물은 거의 모든 출연자들과 긴장상태에 놓였다. 박해미로 예를 들면, 기 세고 오지랖 넓은 그는 이순재의 실력경쟁 상대가 되고, 나문희의 얄미운 며느리가 되고, 정준하에겐 닭살스러운 부인이 되고, 마찬가지로 기가 센 이민용의 적수가 된다. 신지와는 예전 동서지간으로 사이가 좋지 않다.

또 이민용은 학교에서는 ‘미친개’라는 엄한 선생님으로 꼴등 유미와 갈등하고, 서민정과는 달콤한 로맨스를, 신지와는 애절한 미련을 표현하는 동시에 집에서는 박해미·이순재 등 오지랖 넓은 인물들과 맞서게 된다. 또 형 정준하의 콤플렉스를 자극하고, 사촌인 민호와 윤호의 문제에도 깊게 관여한다. 이렇게 그 어떤 인물을 중심에 놔도 다른 캐릭터와 갈등 성립이 가능한 이런 구조는 몇 안되는 가족구성원 안에서 수많은 에피소드를 쏟아낼 수 있었다.

# 일상적으로 풀어내는 불편한 관계

‘거침없이 하이킥’에는 일반 드라마였다면 심각했을지도 모르는 순간들이 자주 등장한다. 박해미가 시어머니 나문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때, 사제지간인 서민정과 이윤호가 입을 맞추게 될때, 이민용이 전처의 친구인 서민정에게 마음이 흔들릴 때 등 ‘거침없이 하이킥’의 인물들은 사실 불편한 관계를 맺고 있다.

시트콤은 비난을 받거나 분위기가 어두울 수도 있는 소재에 정면돌파했다. 박해미는 매사에 자기 의견을 뚜렷하게 밝히면서도 시어머니와의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열어두면서 새로운 고부 관계에 대한 담론을 끌어냈다. 때로는 보수적인 시청자들로부터 불평이 쏟아졌지만, 시트콤은 캐릭터의 중심을 잃지 않았다.

최근에는 이민용이 서민정에게 청혼을 하고, 그에게 미련이 있는 신지가 갈등하는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서민정과 신지를 각각 지지하는 세력이 극명하게 나뉘어 어떻게 해도 제작진이 욕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거침없이 하이킥’은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 본격적으로 추구하는 ‘미드’의 한국화

이 시트콤은 ‘미드’를 가장 적극적으로 차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유미네 집을 둘러싼 살인사건을 다룬 에피소드에서는 정준하가 아예 ‘CSI 과학수사대’의 한 요원으로 변신, 배경음악과 영상까지 그대로 재연했다. 박해미의 변비를 둘러싼 이민용과 박해미의 대립을 다룬 에피소드에서는 1분1초를 다루는 긴박함을 ‘24’의 형식으로 표현했다. 수시로 시계를 보여주면서, 각 등장인물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형식이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위기의 주부들’로 볼 수 있다. ‘누구나 더러운 빨래감이 있다’는 모토로 만들어져 단란해 보이는 가족들의 각종 음모와 배신 등을 다룬 이 드라마는 ‘거침없이 하이킥’의 각 인물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인물들도 숨겨온 지난 과거들이 ‘까도 까도 또 나오는 양파’처럼 자리했다. 무식해보이기만 했던 유미가 진짜 간첩의 딸이었다거나, 박해미가 정준하를 택한 이유가 다른남자에 대한 복수 때문이었다거나, 서민정이 학창시절 뚱뚱했다거나 하는 설정이 계속 추가되면서, 인물들도 생동감 넘치게 변해갔다.

이는 한정된 등장인물로도 시즌제로 이야기를 늘여나갈 수 있는 미국드라마·시트콤과 매우 닮은 지점이다.

스포츠월드 이혜린 기자 rinny@sportsworld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