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억지스럽기도 했고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청자들은 동시간대에 방송되는 심각한 사랑 이야기보다는 즐거움을 선택했다. 가부장의 구태를
유지하면서도 허점 많은 대장 순재와 구박 받는 시어머니 문희, 맹한 듯하지만 귀여운 여선생 민정과 까칠하고 무심한 듯하지만 속 깊은 동료교사
민용, OK를 연발하는 똑똑한 며느리 해미와 불쌍한 백수 남편 준하…. 이들이 매일 저녁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은 회식이나 데이트 자리에서도 단골
화젯거리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런 재미를 누릴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인기리에 방영돼 온 MBC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연출 김병욱·이하 하이킥)이 다음달 13일 종영된다. 지난해11월 6일 첫 전파를
탄 하이킥은 한의사인 이순재를 비롯한 3대 가족 구성원과 주변인물들이 매회 독특한 개성을 앞세워 좌충우돌하며 시청자에게 평일 저녁 웃음폭탄을
던졌다. 이들이 보여준 다소 과장된 연기는 하루하루 빠듯한 살림살이에다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이전투구식 정치판 싸움에 지친 시청자들에게는
‘피로 해소제’ 역할도 했다. 하이킥은 웃음뿐 아니라 변화하는 세태와 인간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아픔도 드러내 직장인, 주부, 학생 모두 “내
처지와 같다” 는 공감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종방을 향해 치닫고 있는 ‘하이킥’을 결산해 본다.
◆인기몰이의 비결은=전작인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등 김병욱 PD의 작품이 늘 그러하듯 하이킥 역시 대학생 등
특정 계층을 겨냥하지 않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가족시트콤으로 ‘대중성’을 확보했다. 여기에다 주·조연 가릴 것 없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캐릭터들의 궁합도 잘 맞았다는 분석이다.
세속적인 권위를 중시하고 돈을 좋아하는 한의사역의 이순재는 극의 중심축으로, 근엄의 껍데기를 벗고 완전히 망가져 시청자들에게 다가갔다.
야한 동영상을 몰래 보다 들켜 채신머리없는 영감으로 전락하는 수모(?)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노장투혼에 시청자들은 ‘야동순재’라는 애칭을
만들어 친근감을 표현했다. 특히 하이킥은 ‘순풍산부인과’ 오지명,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의 신구가 맡은 역할과 같이 근엄한
중견배우를 여지없이 주책없는 노인으로 만들어 시청자들이 부담없이 극의 재미를 만끽하게 만드는 김병욱 시트콤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이라는
평가다.
또 남편에게 늘 무시당하며 시어머니 노릇은커녕 똑똑한 며느리에게 당하기만 하는 할머니 문희, 항상 자신감에 차 있는 한의사 엄마 해미,
형제지만 대조적인 민호·윤호 등 모두가 변화하는 세태 속의 권위를 잃어가는 가장의 쓸쓸함, 남편과 며느리에게 치이는 시어머니, 요즘의 잘난
며느리, 신세대식 사랑법, 청소년들의 고민 등을 잘 엮어내 공감대를 확산시켰다.
1997년 청춘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을 연출한 케이블 채널 tvN 송창의 대표는 “3대가 나오는 가족극으로 연령에 관계없어 모두가
볼 수 있는 데다 핵가족이 만연한 환경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등 구성원의 희로애락을 정확히 표현했다”며 “노장배우의 탄탄한 연기력을
중심에 내세우면서 가능성 있는 신인들을 중용해 정확히 배역을 안배했고, 배우들의 개성을 최대한 살려 발휘할 수 있게 한 게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남긴 점은=야동순재를 비롯한 OK해미, 까칠민용, 토끼민정, 열공민호, 멍청유미, 식신준하 등 출연자 전원이 별명을 얻었으며 시중에
화제가 됐다. 이들의 인기는 CF 대박으로 이어졌다. 중견배우 이순재는 7개, 청춘스타 정일우는 5개 CF에 출연하는 등 출연진 전원이 혼자
또는 조를 이뤄 앞다퉈 CF모델로 변신했다. 이들이 출연한 제품광고는 현재 18개.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여 부수입도 짭짤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말썽꾸러기이지만 잘생겨 여학생들의 인기가 많은 윤호역의 정일우는 무명에서 일약 청소년들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하이킥은 MBC에 효자노릇까지 했다. 하이킥의 방송시간은 프라임타임인 오후 8시대다. 이전에 시트콤 방송시간은 오후 6∼7시대였으나
MBC는 하이킥의 가능성을 보고 처음으로 연속극 시간대인 8시대에 시트콤을 방송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하이킥의 시청률이 17∼20%대를
유지하면서 경쟁사에 비해 처져 있던 ‘뉴스데스크’의 시청률도 덩달아 오르는 등 평일 저녁 황금시간대 채널고정 효과를 거뒀다는 게 MBC의
분석이다.
한편 최근 극을 미스터리물로 몰아가면서 유미(박민영)의 하차를 암시하는 내용으로 팬들의 애를 태운 하이킥 제작진은 종영을 앞두고 결말에
대해 철통 보안을 유지해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돋우고 있다. 하이킥의 후속작으로는 사진관을 무대로 펼쳐지는 가족 시트콤 ‘김치 치즈 스마일’을
다음달 23일부터 방송할 예정이다. 청춘 시트콤 ‘논스톱’을 연출한 전진수 PD가 메가폰을 잡는다.
박태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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