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연출 김병욱)의 거의 모든 캐릭터가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것과 대조적으로 유독 시청자의 반응이 시원찮았던 신지의 연기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초창기 그녀에게 씌워졌던 변덕스럽고 얄미운 ‘비호감 캐릭터’라는 타이틀도 사라져가고 있다. 신지 캐릭터는 아픔을 딛고 성장하고 있다.

신지가 초반 힘든 시절을 보낸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김병욱PD의 시트콤은 ‘논스톱’류와 달리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배우는 뜨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홍렬은 개그맨으로 최전성기에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캐스팅됐고, 박경림은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귀엽거나 미치거나’에 출연했지만 크게 빛을 보지못했다.

오히려 그 프로그램에서는 신구나 박영규, 소유진 등 전문 연기자들이 캐릭터의 매력을 발산시켰다. 드라마적인 요소가 결합돼 정통연기가 요구되는 김병욱 시트콤은 연기력이 달리는 배우들은 성공하기 힘들다. 따라서 연기 경험이 부족해 심리연기가 미숙한 개그맨이나 가수들은 고전하기 쉽다.(윤호는 발성은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눈빛이 살아있고 캐릭터의 도움을 받아 인기를 끌 수 있었다).

더구나 신지 캐릭터는 결코 만만치 않은 캐릭터다. 결혼한 지 몇년만에 이혼하고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와서는 일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사랑의 감정도 정리가 안되는 등 심리 연기가 필요한 인물이다.

신지는 정말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맡았다면 돋보일 수 있는 캐릭터다. 신지는 남성중심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일이 우선’인 주체적 여성이다. 현실적이면서도 진보적이다. 하지만 연기 경험이 전무한 신지가 초창기 1차원적 연기를 펼치는 바람에 캐릭터의 단점만 부각됐다.

일이 우선인 여성이라는 점이 부각되지 않고 모성애가 결핍된 여자로 보였다는 점이다. 일을 위해 모성을 일시적으로 후퇴시킬 수 있는 캐릭터가 모성이 전혀 없는 여성으로 바뀌어버렸다.

게다가 남편이었던 민용에게 떼를 쓸 때도 정(情)이라는 감정을 섞어서 전달해야, 하지만 표면적인 행위에만 충실해 ‘비호감 여성’이라는 이미지까지 얻었다.

신지가 이혼 후 독립하기 위해 뮤지컬 극단 일을 하다가 캐스팅이 여의치 않자 해미가 자존심을 접고 오페라 단장에게 부탁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신지는 그런 상황에서도 열심히 하지 않아 기회를 잃고 만다. 이 에피소드는 신지에게는 결정타였다. 마라톤을 하다가 중간에 넘어진 꼴이었다. 시청자들은 “일도 못하는 게 이혼은 왜 했냐” “저따위로 하려고 이혼했냐”며 신지를 질타했다.

신지의 연기력 부진에 제작진의 배려 부족까지 겹쳐 최악의 상황까지 온 것 이다. 신지는 많이 울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신지에게는 코미디 에피소드가 없어졌다. 매번 코미디로 깔깔거리게 만든 박해미 이순재 민용 준하 민정과는 대조적이었다.

돈이 없는 신지가 두살박이 아들 준이의 기저귀와 옷을 구입하기 위해 치른 마트 세일 쟁탈전과 뮤지컬 극단에서 잘려 백수 신세에서 아주버니(준하)와 가진 동병상련의 시간, 준이가 아픈데도 연락이 안돼 순재에게 혼나는 신지(사정도 모르고) 등은 신지를 불쌍한 모습으로 만드려는 노골적인 에피소드다. 시청자로 하여금 안쓰럽기도 하고 동정심이 생기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신지의 연기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었다. 그동안 상처를 많이 받은 덕분인지 신지는 스스로도 정신적으로 성장했다. 마음고생을 많이 해 우는 신은 금세 소화한다고 한다. 인물에 배우들의 실명을 사용하는 ‘하이킥’은 이 점이 캐릭터에 직접 반영된다. 신지의 실제 아픔이 극중 일(뮤지컬, 작곡)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이미지를 주고, 또 사랑의 아픔으로, 모성애를 깨닫는 계기로 작용한 셈이다.

실제 신지는 강한 여자다. 음반 일정도 겹쳐 스케줄상 ‘하이킥’에서 중도하차할 수 있었는데도 자신이 계속하겠다고 고집했다고 한다. 지금 물러나면 다른 일에도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신지는 마라톤에서 한번 넘어지는 바람에 남들은 반환점을 돌아 CF도 찍고 여유를 부리고 있는데 혼자 열심히 뛰고 있다. 이순재는 “CF 혼자 못 찍은 신지가 안 됐지만 의젓하다”고 신지를 격려해줬다. 표인봉도 ‘순풍산부인과’에서 연기할 때 마지막에야 CF를 찍을 수 있었다.

지금 신지의 연기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다. 자신의 전남편과 친구와의 관계를 인정해야하는 신지의 속은 쓰릴 것이다.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초창기와는 달라져 있다. 이런 추세라면 신지가 연기에 첫 도전한 ‘하이킥’이 끝나는 날에는 유종의 미를 맺을 수 있을 것 같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