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하이킥>으로 귀환한 시트콤의 대부, 김병욱 감독

Q. <거침없이 하이킥>은 어떻게 끌고 갈 생각인가.
김병욱: <거침없이 하이킥>은… 한마디로 고향으로 돌아온 거 같다.
저녁 8시 시간대라 25분이 아니라 35분이라 부담스럽긴 한데 이번에는 풍자를 넣되 멜로에 서사를 확실히 집어넣을 예정이다. 신지와 최민용의 이야기가 그런 건데, 구도 자체는 <연애시대>하고 똑같다.
패러디라는 게 아니라 이혼한 남녀의 멜로를 제대로 다룰 거다.
<귀엽거나 미치거나>에서는 <파리의 연인> 구도를 가지고 패러디를 했는데, 그러면 웃기기만 하지 드라마의 힘이 없어지더라. 회장이 회장 아들보고 연애하지 말라고 했을 때, 원래 드라마적으로 가려면 그걸 거부하고 부딪쳐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냥 순순히 말을 들어버리게 하니까 맥이 빠져버리는 거다. 그런데 저녁 8시에서는 확실한 서사가 있어야 하고, 멜로가 담겨 있어야 하니까 그러면 안 된다. 멜로로 가야 할 부분은 확실히 간다.

Q. <순풍산부인과>를 빼면 지금까지 해온 제목들이 점점 독해지고 있다.
Q.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부터 <똑바로 살아라>와 <귀엽거나 미치거나>더니
Q. 이젠 '하이킥'이다.
김병욱: 아예 타이틀부터 영화 <싸움의 기술>처럼 만화와 실사가 섞인 분위기에서 출연자들이 하이킥이 아니면 로우킥이라도 하게 만들었다. 원래 극중에 나오는 고교생 캐릭터가 크로캅을 좋아하기도 하고. <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건 우리 마음의 반영이다. 작품 초반부터 탐색전 없이 거침없이 하이킥한다는 그런 느낌.
내가 항상 초반에 시동 거는 데 오래 걸렸잖아. 그런데 이제 다른 사람들은 처음부터 다 세게 나가니까. 그래서 거침없이 하이킥을 해보고 싶었다.

"변해가는 가족의 권력구도를 통해 사회 이야기를 하고 싶다"

Q. 왠지 다른 감독들과 달리 나이 들면서 더 독해지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Q. 풍자 수위나 표현 같은 것들이…. 뭐랄까, 얌전한 관찰자에서 짖궂은 악동 같아졌다.
김병욱: 그게… 내 입장에서 얘기하자면 드라마 자체가 거대화되고 산업화되잖아. 그런 것들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게 있다. 옛날에 드라마가 순했을 때는 우리의 풍자 정신도 순했는데. 거대화 산업화되면서 우리도 그만큼 더 비뚤어지는 것 같다. 정치 사회적인 바람을 넣는 것도 그런 것 때문 아닐까.

Q. 그 비뚤어진 풍자는 어떤 방식으로 할 건가. 직접적인 정치 풍자를 할 것인가.
김병욱: 가족을 통한 사회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가족 내의 권력구도에 관심이 많다.
가족 안의 역학관계를 통해 가족이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예를 들어 <순풍산부인과> 때는 오지명이 집안의 경제력이며 권력이며 다 갖고 있었지만 <똑바로 살아라>에서는 아버지가 좀 맹한 부분도 있고 그러지 않나.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아예 며느리가 권력을 갖는다. 나문희 같은 시어머니는 능력이 없고, 박해미가 정준하와 결혼한 뒤 똑똑하게 살림을 잘해서 실권을 쥔 거다. 요즘 가족들 중에 그런 경우도 많지 않나. 그러다 보니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권력구조도 달라지고. 그렇게 변해가는 가족의 권력구도를 통해 사회 이야기를 하고 싶다.

"<위기의 주부들>처럼 미스테리적인 요소를 넣는다"

Q. 새 작품이 나올수록 점점 더 풍자에 신경쓰는 것 같다.
김병욱: 시트콤이 설 자리가 없어서다. 때는 캐릭터만 갖고 시트콤을 만들 수 있다는데 의의를 가졌다. 그런데 그 후에는 시트콤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그러면 시트콤이 드라마와 다른 어떤 차별성을 가지는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드라마처럼 스케일을 크게 할 수도 없으니까. 단지 제작비가 싼 시트콤이 되고 싶지는 않다. 우린 사회적인 약자니까 우리만의 정신이라도 있어야지. 비판이나 풍자가 없으면 시트콤은 존재 의미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리고 <거침없이 하이킥>에는 미스테리적인 요소를 넣을 생각이다. 기존 가족 시트콤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위기의 주부들>처럼 실제로 누군가가 죽어서 어딘가에 묻혀 있고, 그 범인이 누군가에 대한 반전을 계속 보여줄 생각이다. 그리고 결론은 시청자에게 맡기고. 기존 형식을 탈피해야 하니까 여러 노력을 한다. 그럴려면 매일매일 복선이나 단서도 흘려야 하고, 매회 시간 배열도 맞춰야 하는데 그런 게 좀 힘들다.

=== 중략 

Q. 요즘 시트콤은 어떤가.
Q. 최근에는 기존 시트콤은 점점 사라지고 미국식 TV시리즈처럼 장르 자체가 변하는 것 같기도 한데.
김병욱: 흐름이 끊긴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정체성의 문제에서 해결 못 하고 끊긴 거 같다.
노도철 PD의 작품이나 <섹스 앤 더 시티>를 시트콤이라고 말하긴 어렵잖아. 편성상에서는 존재하고 있지만 정체성의 문제 때문에 혼란에 빠져 무너진 상태 같다. 나도 그래서 버틸 수 있는 방법으로 풍자 정신을 선택한 거고. 아마 갈수록 마이너적인 감성이 우선시돼서 공중파로 가기 힘들 것 같고, 결국 케이블로 가야 할 거 같다.

Q. 앞으로 김병욱 PD의 시트콤은 어떻게 흘러갈까. 영화를 계획한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김병욱: 장르를 정한 건 아직 없다. 다만 시트콤이 가지는 물리적인 한계가 되게 크다.
좀더 압축적인 이야기를 하면 좋겠는데, 사실 진입 장벽 같은 게 높잖아.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하는 건 아니잖아.
아무래도 그렇게 따지면 영화를 하게 되지 않을까?
 

(글) 강명석 (<매거진t> 기획위원)
(사진) 이원우 macqueen505@cine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