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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 소재다양화는 성공, 한국적 감수성은?

 

한국에는 전문직 드라마가 없다고 한다. 전문직종을 그리는 드라마라고 해놓고는 결국 병원, 대학, 법정에서 연애하는 드라마가 돼버린 전례가 많아서다. 그 점에서 MBC ‘하얀거탑’은 확실한 전문직 드라마로 분류될만하다. 멜로적 요소는 거의 없고 의사들 세계만 나온다.

하지만 대학병원 내 의사들의 권력관계에 너무 치중돼 있다. 병원 내 치열한 암투는 새로운 게 아니라 일본소설과 드라마에서 이미 다뤄진 내용이다.

 

의사들도 맹장염 수술 정도는 할 수 있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치밀하게 설치된 수술실 세트와 현란한 특수효과에 긴박감 있게 진행되는 극적 전개 등 매력적인 요소를 제법 갖췄다.

 

캐스팅도 그 정도면 훌륭하다. 끊임없이 권력을 추구하는 야심가 장준혁(김명민), 우유부단한 휴머니스트 최도영(이선균), 미국 유학파로 온건합리주의자인 노민국(차인표) 등 뚜렷한 성격의 주연급 캐릭터 외에도 우용길 부원장(김창완), 이주완 외과 과장(이정길) 등 중년배우들의 야누스적이고 입체적인 연기도 살아 꿈틀거리는 듯하다.

 

‘하얀거탑’은 소재 부족에 허덕이는 한국 드라마의 소재 다양성 측면에서 크게 돋보인다.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불륜 등으로 식상해진 스토리를 질질 늘리는 우리 드라마 스타일과 달리 다양하고 새로운 소재의 이야기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일본 드라마에 눈이 확 뜨일 수밖에 없다. ‘연애시대’가 주목받은 것도 우리의 전형적 멜로극 행태를 탈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연거탑’에는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 요소가 많아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종신직처럼 돼 있는 일본과 달리 조교수 부교수 교수들이 일정기간 돌아가며 맡고 있는 대학병원 과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올인하는 모습도 그렇거니와 외과 과장(이정길)이 젊은 교수(차인표) 앞에서 무릎을 꿇는 행위는 우리에겐 너무나 낯설다. 의과대학 교수 부인회의 활약 또한 우리에게는 개연성이 떨어진다.

 

병원이라는 세계는 기본적으로 병마와 싸우는 환자의 고통, 이를 치료하는 의사의 애환, 환자 가족의 안타까운 상황들, 이 세 가지로 구성돼 있다. 의학드라마가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어느 쪽을 강하게 부각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제작진의 자유다. 하지만 환자는 있는게 좋다. ‘하얀거탑’에는 소아간암 환자인 진주를 빼놓으면 별 환자가 없다. 그래서 ‘하얀거탑’은 의학드라마가 아니라 정치드라마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는 우리가 ‘하얀거탑’을 보며 무엇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와 연관된다. 의사들끼리 과장 자리를 놓고 물밑 거래를 하는 게 흥미진진하게 다가올까? 아니면 장준혁의 뛰어난 의술에 놀라면서 시청할 수 있을까? 둘 다 우리에겐 가깝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도 감정만이라도 공유하면 되는데 그 감정을 소화하기에는 벅차다.

 

이는 전문직인 의사의 생활과 그들 사이의 첨예한 갈등이 초반 호기심을 자극했음에도 갈수록 시청자와 멀어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 점에서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의 사랑과 성장을 다루는 SBS ‘외과의사 봉달희’가 우리 정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이주완 교수의 딸로 사회운동을 하는 이윤진(송선미)의 역할도 아직 어색하다.

 

‘하얀거탑’이 앞으로는 의료 사고로 인한 법정드라마 방향으로 전개될 예정이다. 이 이야기를 한국적인 감수성으로 녹여내는 것이 드라마의 궁극적인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






2007-02-02 (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