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변화의 조짐은 우선 신돈이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크게 성장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공민왕은 매우 다정다감한 사람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시기심이 많고 잔인하여서
심복이라고 해도 권세가 커지면 이를 질투하고 경계하다가 정치 생명을 끊거나 죽였다.
왕의 이같은 성품을 잘 알고 있던 신돈은 등용되기 전부터 뒤에 숙청당할 것을 우려하였다.
그런 까닭에 참소하고 이간질하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공민왕의 약속을 받은 뒤에야
정계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부처님과 하늘에 맹세했던 공민왕의 약속은 공민왕 18년(1369)을 전후하여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이 해 2월에 신돈은 5도 도사심관(五道都事審官)이 되려고 하였다.
이미 영도첨의사사사(領都僉議使司事), 판중방감찰사사(判重房監察司事),
제조승록사사(提調僧錄司事), 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를 겸하여 정무, 군사, 감찰,
승정(僧政), 음양(陰陽)을 한꺼번에 관장한, 고려 역사상 최고의 권력을 가진 신하가
되었음에도 신돈은 더 나아가 지방을 통제하는 권력까지 달라고 공민왕에게 요구한
것이었다. 이전과는 달리 신돈이 먼저 공민왕에게 관직을 요구한 것은 권력에 대한
그의 인식이 달라졌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공민왕은 신돈이 그 정도의 권력까지 갖기를 원하지 않았다. 왕은 두 차례나 강력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고, 신돈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때부터 공민왕은 신돈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거두기 시작하였다. 이듬해 7월에 전라도를 시찰하러 간 최용소(崔龍蘇)가 신돈을
본 후에야 공민왕을 알현하였다고 하여 곤장을 맞았다. 이 사건은 커져버린 신돈의 권력에
대해 왕이 신경을 쓰고 있다는 근거로 삼기에 충분하다.

같은 해 10월에 왕은 겨울에 천둥이 치고 나무에 얼음이 언다는 사소한 자연 현상을 크게
부각시킴과 동시에 전민추정도감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춘부 등을
질책하면서 친히 정사를 처리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자연의 조화를 책임진 사람은
판서운관사 신돈이었고, 전민추정도감의 최고 책임자 또한 신돈이었다.
즉 왕의 질책은 신돈을 직접 겨냥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직접 정사를 보겠다고 했으니
이는 신돈에게서 권력을 회수하겠다는 뜻이었다. 이용가치가 떨어진 신돈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해야 할 순간이 차츰 다가오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