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般若)의 생애
반야(般若)는 원래 신돈의 집에 있던 여자 노예이며 첩이었다. [고려사]에는 그녀의 아들인 우왕의 출생 관련 기록이 나오는데, 이 기록에 따르면 공민왕 23년(1374)에 왕이 암살당하고, 그 해에 우왕이 즉위하였는데, 그때 나이가 10살이었다고 되어 있다. 즉 우왕은 공민왕 14년(1365)에 태어난 것이다. 우왕은 7월생이므로 반야가 임신한 것은 공민왕 13년(1364)년
늦가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노국공주가 공민왕 14년 2월에 사망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반야는 노국공주가 죽기 전에 공민왕과 만났고, 임신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반야와 공민왕의 만남은 신돈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신돈은 공민왕에게 아들을 낳을만한
여자가 있다고 하면서 반야를 소개하였고, 왕은 반야를 가까이하여 뒤에 우왕이 되는
아들 모니노(牟尼奴)를 낳았다. 하지만 반야가 원래 신돈의 첩이었던 까닭에 구설수를
피하기 위해 반야와 모니노는 꽤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반야는 신돈의 친구인 스님 능우(能祐)의 어머니 집에서 모니노를 낳았고,
능우의 어머니가 얼마간 모니노를 양육하다가 신돈의 집으로 보냈다.

반야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은 공민왕 17년 9월인데, 이때부터 그녀는 매달 30석씩 쌀을 받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는 신돈의 실각과 더불어 지워지기
시작했다. 공민왕은 20년(1371) 7월에 신돈을 숙청하고, 곧바로 모니노를 명덕태후의 궁전에 데리고 왔다. 왕은 22년 7월에 모니노에게 우(禑)라는 이름을 주고, 강녕부원대군(江寧府院大君)으로 봉하였는데, 암살 직전인 23년 9월에는 이전에 죽은 궁인(宮人) 한씨가 강녕대군의 어머니라고 하면서 한씨의 아버지부터 증조부까지 3대와 외조부를 추증하였다. 며칠 뒤에
공민왕이 죽고 우왕이 즉위하였는데, 우왕은 11월에 한씨에게 순정왕후(順靜王后)라는
시호를 올렸다. 이로써 우왕의 생모인 반야는 고려 왕실에서 완벽하게 지워졌다.

여기에 충격을 받은 반야는 우왕 2년(1376) 3월의 어느 날 밤에 명덕태후의 궁에 몰래
들어와서 울부짖으며 “내가 진짜로 주상을 낳았는데, 어찌하여 한씨를 어머니로 삼았는가?”
라고 외쳤다. 태후가 반야를 내쫓자 수시중(守侍中) 이인임이 반야를 옥에 가두고
담당부서로 하여금 취조하게 했다. 이때 반야가 새로 지은 문을 가리키면서
“만일 하늘이 나의 원통함을 안다면 이 문이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라고 부르짖었는데,
그 말대로 문이 허물어졌다. 이를 본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긴 했지만, 어느 누구도
노예이면서 신돈의 여자이기도 했던 반야를 고려 왕실과 연결시키고 싶어하지 않았다.
반야는 임진강에 던져져 죽음을 맞았다.

우왕이 되는 아들 모니노(牟尼奴)를 안고 있는 반야




2006-05-02(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