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 김형우 기자] 사랑에 실패한 여인, 나라 세개 거침없이 뚝딱! 한국 역사상 손꼽히는
여걸인 소서노. 그녀가 재조명받고 있다.
이유는 50%시청률을 넘나들며 국민드라마로 자리매김한 MBC 월화극
‘주몽’덕분.
이 드라마에서 소서노(한혜진 분)는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며 사랑하는 남자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건국하는데
일등공신으로 표현된다. 게다가 최근엔 주몽과 결혼하며 꿈꾸던 그이를 얻고야 말았다.
과연 소서노는 어떤 사람이였을까? #세
나라 이끈 슈퍼우먼 소서노 소서노의 실체가 드러난 역사적 사료는 매우 드물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편에 실린 몇 줄이 전부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소서노는 졸본부여 연타발의 딸로 기록돼 있다. 여성이지만 부족장의 직계 후손이라함은 분명 강력한
정치적 파워를 지녔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런 정치적 세력이 있었기에 주몽이 고구려라는 새나라를 건국할 수 있었을 터. 분명 소서노는
졸본부여에서 막강한 권력을 지닌 졸본지역 토착세력의 유력한 지배계급이였을 것이다.
이런 그녀가 고구려를 세웠다. 삼국사기는 주몽의
신기에 가까운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고구려 건국을 그리고 있지만 그 이면을 들춰보며 고구려 건국에 제일 큰 공을 세운자는 다름아닌
소서노다.
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곳은 졸본땅이다. 졸본의 지지세력이 없었다면 분명 불가능한 일이다. 이 세력의 중심에는 분명 그의
아내인 소서노가 존재한다. 소서노는 졸본의 지배자로 토착세력을 이끌며 주몽에 합류했을 것으로 보인다.
돈과 땅, 매우 현실적인
요소를 손아귀에 넣고 있던 소서노와 명성을 가진 주몽의 합작품이 바로 고구려인 것.
이런 소서노는 백제의 건국에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유리에 의해 왕위계승서열에서 밀린 소서노의 두 아들 비류와 온조의 남하를 설득한 것은
다름아닌 소서노다. 마치 유화부인이 주몽에게 했던 모습과 같다. 소서노가 비류,온조와 함께 남하를 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적어도 백제 건국의
조력자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사랑에 울고..배신에 울고.. 이런 담대한 소서노였지만 남자복은 형편없을
정도다.
삼국사기에는 소서노가 32세때 21살의 주몽을 만나 결혼했다고 전한다. 또 삼국사기는 소서노가 우태라는 북부여계 인물과
이미 결혼했다고 말한다. 온조와 비류가 이 우태의 아들이라는 설도 함께 실고 있다.
우태는 금와왕의 아버지였던 해부루의 서손이라고
적힌 설도 있어 이에 따르면 주몽과 우태는 먼 친척뻘이다.
이런 우태는 전쟁터에서 전사, 소서노는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한다. 첫번째 남편을 이처럼 비명횡사로 보낸 것.
소서노의 두번째 남편은 주몽이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에 대해선 적게는
6살에서 많게는 11살로 사료는 적고 있다. 소서노가 주몽을 진심으로 사랑했는지는 가늠하긴 힘들지만 그녀가 주몽에게 헌신적이였다는 점은 확실한
듯하다.
자신의 정치세력과 자본, 토지 등 거의 모든 것을 고구려 건국에 쏟아부었다. 그렇게 그녀는 고구려 왕비가
됐다.
그러나 소서노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주몽의 전처인 예씨부인과 유리의 등장으로 자신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왕위 경쟁에서
넉다운 돼버렸다. 유리가 나타나자마자 주몽이 그를 태자로 삼았기 때문이다.
한 사료에는 소서노가 두사람으로 인해 제2비로
강등됐다고도 전한다. 비류 중심의 백제 건국 설화가 기록된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조 본문 말미에 할주 형식으로 기록된 비류 백제 건국 설화에는
소서노를 버린 주몽을 다소 배은망덕한 인물로 표현하기도 했다.
고구려와 백제 초기 기록은 워낙 설화를 기초로 해 사실로 받아들이긴
힘들다. 그 설화들 역시 대치되는 부분이 많아 그 전모를 파헤치는 건 매우 힘들다.
하지만 삼국사기 속 소서노는 세 나라를 이끌었던
당대 최고의 여걸이였으면서도 남자복,애정운은 ‘지지리도’없는 비련의 여인으로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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