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회분을 남기고 있는 MBC 주말극 ‘누나’(극본 김정수, 연출 오경훈)는 물질을 초월한 따뜻한 가족애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그려내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승주(송윤아)와 건우(김성수)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결혼에 골인했다. 이날 진행된 결혼식 형식에서도 작가의
사람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엿보였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식이 형식적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주례사는 대부분 감정이입이 안되는 신랑, 신부 띄워주기다. “신랑 아무개군은 장래가
촉망되는 무슨 기업 엘리트 사원으로서..., 신부 아무개양은 일류대학을 졸업한 재원이며...”와 같은 식이어서 하객들도 주례사를 경청하지
않는다.
결혼식에서 가장 깊은 감회에 젖을 사람은 신랑 신부의 부모일 것이다. 30여년동안 기른 자식을 독립시키는 부모의 소회가 없을 리 없다.
‘누나’에서는 주례는 있지만 주례사가 없다. 그 시간에 양가 아버지가 각각 자식을 결혼시키는 심정을 읽어나갔다.
건우의 아버지(박근형)는 아들이 자랑스러운 것은 공부 잘하고 일류대학에 들어갔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복잡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려는 아들,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려고 노력하는 아들이 기특하다는 것이다.
이미 양가 상견례에서도 예물은 김박사 하나면 족하다고 말했던 승주 아버지(조경환)는 “엄마 없이 너의 결혼식을 올리게 돼 미안하다. 어떠한
상황이라도 남편 편을 들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양가 아버지가 결혼하는 자식들에게 들려준 이 말은 형식적인 주례사보다는 훨씬 강한 울림을 전해줬다. 일반 사람들도 평범하고 소박하면서도
감동을 주는 이런 형식으로 결혼식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누나’에는 승주와 건우의 사랑이야기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멜로라인도 일부 특수계층이나 비현실적인 사람들의 스토리가 아니라 우리 주변
어디쯤에 있을만한 남녀를 대상으로 하고, 그 이야기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준다.
‘누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한단계 한단계 성실하게 살아가면서 맛보는 행복이 거창하고 실적 위주의 성취나 남을 밟고 이뤄내는 출세보다 훨씬
값지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래서 캐릭터 하나 하나, 핑크나 슈퍼집 아줌마에게도 애정이 간다.
특히 인생의 지혜를 촌철살인격으로 전해주는 건우 할아버지(오현경)를 보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짐작케한다. 초반만 해도
미미한 존재로만 알았던 오현경 할아버지의 대사가 고모부(강남길)보다 더 많다는 것도 다행스럽다.
작가는 결혼식을 올리는 순간까지도 수아(허영란)가 어떤 일을 벌일지 궁금하게 만들어 스릴러적(?) 재미를 주었다. 송승환 씨는 다음
작품에서 중년 초입에 들어선 멜로 연기를 해보면 좋겠다는 결론을 얻은 점은 이번 드라마의 또 다른 수확이다.
물론 ‘누나’의 이야기 구조가 완벽한 건 아니다. 지엽적인 부분에서 흠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드라마 이야기에
길들여진 시청자, 인스턴트식 드라마 소비를 강요당하는 시청자들에게 오랜만에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바쁘게 살다보면 우리는 많은 걸 잊고산다. 하지만 ‘누나’를 보면 아들 손이나 한번 더 잡아주고, 오랫동안 연락
못해드린 어머니에게 전화라도 한번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wp@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