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 vs <주몽>
2006년 5월부터 현재까지, <주몽>이 방영된지 벌써 8개월이다. 전국민적인 인기를 얻으며 그 위용을 과시한 이 대하 서사 드라마는 70여 회의 방영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거나 남겨놓으면서 여전히 고구려 건국을 향해 돌진 중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주몽>이 걸어온 길이 탄탄대로였던 것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몽>에 대해서 다양한 비판을 던진 것도 사실이고 제작환경과 조건의 열악함으로 드라마의 내러티브를 비롯한 핵심 요소들이 위태롭게 흔들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는 동안 MBC는 <주몽>의 연장방영을 결정했고 많은 이들이 이것을 시청률에 의존한 졸속 편성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주연 배우들마저 반대하던(물론 그 이유는 시청자나 비평가들과는 조금 달랐지만) 연장방영 결정이 전격적으로 성사된 후의 <주몽>은 마치 2기에 도달한 것처럼 더 많은 등장인물과 더 많은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궁금하다. 과연 <주몽>의 연장방영 결정은 이 전국민적 인기 드라마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주몽>은 과연 어떤 드라마로 기억될 수 있을까. 강명석 기획위원과 조지영 TV평론가가 <주몽>에 대해 이야기한다. / 편집자
<주몽>을 지배하는 전략과 전술
전쟁에는 전술과 전략이 있다. 전술은 실제 전쟁터에서 부대나 개인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운영하는 방법이고, 전략은 보다 대국적인 측면에서 이뤄지는 전쟁 행위다. MBC <주몽>에서 주몽(송일국)의 다물군이 전쟁터에서 주로 쓰는 매복은 전술이고, 다물군을 막기 위해 부여에서 주변 국가들과 연합해 부여의 교역을 봉쇄하는 것은 전략이다. 그 점에서 연장 방영 전후의 <주몽>은 다르다. 연장 방영이 <주몽>에 미친 영향예나 지금이나 <주몽>에는 매 회 전쟁이 벌어지고, 심심찮게 누군가 납치된다. 그러나, 연장 방영 전 <주몽>은 그것이 스토리에 어떤 영향을 주지 않았다. 주몽이 다물군으로 떠난 뒤 벌어진 전쟁은 각 국의 세력 변화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고, 소서노(한혜진)가 몇 번씩 납치되어도 주몽이 구출하면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연장 방영 후의 <주몽>에서는 다물군이 부여와 한나라 연합군을 물리치면서 전황이 졸본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영포(원기준)는 예소야를 납치한 것은 그가 주몽에게 부여를 쳐서 자신에게 부여를 바칠 것을 요구하는 등 전쟁 전체의 판세를 바꾸는 요소가 된다. 연장 방영 전 <주몽>이 진전 없는 전쟁과 납치의 반복으로 매 회를 어떻게든 끌고 가는 전술적 측면에만 매달렸다면, 지금의 <주몽>은 그런 요소들이 전체 스토리를 변화시키는 전략적인 측면과 연결된다. 그래서 <주몽>은 연장 방영 10여회 만에 그간 비난받았던 모든 문제들을 해결했다. 지지부진하게 음모와 실패만을 반복하던 송양(박종관)은 주몽에 대한 저항과 복속을 통해 부족의 운명을 고민하는 인물로 변하고, 부여와 한나라의 압박을 주몽이 내부의 정치적인 화합을 통해 해결하는 과정에서 전쟁 지휘관이 아닌 지도자로서 주몽의 권위도 설득력을 얻었다. 또 문제 해결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부분노(박경환)와 부위염(윤용현)은 다물군이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했음을 눈으로 보여준다. 이는 하염없이 지체됐던 주몽의 성장을 끌어낸다. 국지적인 전쟁과 납치만을 반복했던 과거의 <주몽>이 주몽에게 어떤 ‘미션’만을 부여할 뿐 그를 인간적으로 성장시키지 못한 반면, 최근의 <주몽>은 주몽을 졸본을 통합하고, 해적을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들이며, 국민을 말 한마디로 사로잡는 뛰어난 정치가로 만든다. 그사이 졸본 백성에게 번지는 역병 같은 고난들은 그전까지 국지적인 전쟁에서는 무적이었던 이 ‘전쟁터의 터미네이터’를 산적한 정치적 문제에 대한 고뇌로 쓰러지기까지 하는 ‘인간’으로 바꿔놓았다. 그것은 주몽대신 대소(김승수)를 끌어 들이면서 서서히 몰락하는 금와의 모습과 대비된다. 과거 권좌에 앉아 주몽을 자애로운 눈길로 바라보던 금와가 그 자리에 대소를 세운 채 뒤에 앉아있는 장면은 <주몽>의 변화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줬다. 이는 <주몽>이 이제야 ‘좋았던 그때’로 돌아갔음을 의미한다. 그들이 얻은 것과 잃은 것해모수(허준호)와 유화(오연수)의 사랑이 인터넷을 술렁이게 만들던 그 때, 시청자들은 <주몽>이 철저한 고증을 거친 역사 사극이었기 때문에 본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엉터리 고증이라 할지라도, 불과 몇 회 만에 해모수에 이어 어른이 된 주몽을 등장시키는 빠른 전개와 유약한 왕자에서 운명의 건국자로 변하는 주몽의 성장과 친구에 대한 우정과 유화에 대한 욕심, 그리고 다물군의 부활과 권력욕 사이에서 갈등하는 금와의 모습은 시청자에게 다음 회를 기대토록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몽>은 연장방영을 시작하며 그 장점들을 되찾았다. 연장방영 뒤에 무의미한 납치나 해모수에 대한 회상이 없는 것은 그만큼 스토리의 밀도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장방영 후 10여회동안 폭풍 치듯 전개된 <주몽>의 건국기는 실상 연장방영 전 60회 동안 고루 진행됐어야 했다. 주몽이 더 오랜 시간동안 고난과 승리를 반복하며 영웅이 되고, 금와가 위대한 왕에서 유화를 죽이기까지의 과정이 좀 더 충실하게 묘사됐다면
<주몽>은 인간 군상의 영욕을 선 굵게 그려내는 서사극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장 방영 논란과 함께 스토리를 내실 있게
진행시키지 못했던 중후반부의 전개는 <주몽>의 격을 떨어뜨렸다. 물론, 연장방영까지 80여회의 방영분량 내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주몽>은 상업성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전략적’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주몽>은 그 하나를 위해 많은 것을 잃었다.
이것이 과연 성공이기만 할까. 방송사와 제작진의 노력을 통해 완성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 <주몽>의 후반부는 그래서 재미있지만
어딘가 씁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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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으로 이룩한 고구려 건국
밖으로는 부여와 한나라로부터 공격 당하고, 안으로는 역병과 굶주림으로 갖은 고생을 겪고 있지만, <주몽>은 시청률의 무시무시한 맹주가 된지 오래다. <주몽>과 동시간에 방영된 드라마들은, 존재 자체를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고 종영되는 ‘굴욕’을 견뎌야 했다. 심지어 국가대표팀의 축구 경기 조차 <주몽>의 위력을 꺾을 수 없었고, 결국은 짜깁기였던 ‘하이라이트 특집편’ 까지 시청률 40%에 육박했다. 절대 군주 <주몽>의 위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시청률 40%의 찬란한 빛만큼이나 깊은 그림자가 지금, <주몽>에 담겨 있다. 창대한 시작을 기억하다‘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라는 성경의 구절을 <주몽>에 적용한다면 ‘시작도 창대하고 그 끝도 창대하리라’로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주몽>을 보지 않는다는 사람들 조차도 <주몽>의 초기 방영분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평가를 아끼지 않는다. <주몽>의 1세대, 즉 해모수(허준호)-유화(오연수)-금와(전광렬)-여미을(진희경)의 엇갈리는 사랑과 우정의 행로는 그럴듯한 ‘영웅 서사극’의 시작을 알렸다. <허준>의 최완규, <다모>의 정형규라는 메머드급 작가의 공동작업은 힘있게 나아가는 서사와 그 서사에 피를 돌게 하는 대사의 행복한 결합이었다. 곧이어 등장한 대소(김승수), 주몽(송일국), 소서노(한혜진) 같은 2세대들은 선대가 다듬어놓은 튼튼한 갈등의 구조에서 착실하게 성장했다. 해와 달을 배경으로 해모수가 주몽에게 무예를 가르칠 때, 그래서 몰라보게 성장하는 주몽을 지켜볼 때 그 흐뭇한 마음은 해모수의 것만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었던 주몽의 운명에 시청자들도 애닯아 했다. 해모수의 죽음이 <주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 내용 전개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질적인 면모가 달라진 분기점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해모수의 죽음 이후 <주몽>은 조금씩 길을 잃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부터 <주몽>은 가장 무서운 적과 싸우기 시작한다. 바로 ‘시간’이라는 강적이었다. 참을 수 없는 반복의 유혹대본이 시간에 쫓기기 시작하면 연출과 연기 모두 같은 운명을 겪는다. 한번 이런 구조가 성립되자 ‘대규모 유민’을 끌고 간다는 장면에서도 유민의 규모는 조촐하기 그지 없고, 한 밤중에 싸우는 장면이 칼 한번 부딛치고 나면 대낮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장면상의 허술함보다 더 문제가 된 것은, 메인 플롯이 발전되지 않고 제자리에서 계속 맴돌았다는 점이다. 주몽에겐 언제나 풀기 어려운 미션이 주어지고, 난관 끝에 과제가 해결되고 나면 또 다른 과제가 주어졌다.(장금이처럼!) 그러면 대소는 언제나 ‘주몽이, 이놈!’을 외치며 책상을 치고, 영포는 무슨 여흥구처럼 ‘한심한 놈’ 소리를 들어야 했다. ‘역사 시트콤’ 이라는 신조어가 나온 것도 이즈음이다. 인물마다 반복되는 대사들, 반복되는 행동들은 대부분의 시청자가 예측이 가능한 수준으로 움직였다. ‘은밀히 움직이라’고 하면 반드시 들키는 작전이나, ‘너만 알고 있거라’ 하면 반드시 기둥이나 문 앞에서 듣고 있는 제 3자가 그런 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뻔한 반복들이 주는 기이한 매력이다. 심심하면 되풀이 되던 납치극과 탈출극에도 시청률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주몽>에 쏟아지는 관심은 여전히 하늘을 찔렀다. 디씨인사이드의 ‘주몽갤’엔 여전히 재치 넘치는 합성사진이 쏟아지고, <주몽>의 게시판엔 ‘앉으시오’ 하기 전에 앉으면 시간이 제법 단축될 거라는 시청자의 열띤 의견이 줄줄이 달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 덧 약속했던 60부가 다가오는데 고구려의 ‘고’자도 등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고구려 건국이 늦어지게 된 건, 그 압도적인 시청률의 책임일수도 있다. 사전 제작이 어려운 환경, 시청률에 일희일비가 갈리는 현실에서 히트 드라마의 연장 방송은 ‘거절 못 할 제안’ 이다. 특히나 방송사의
입장에선 드라마의 질적 우수성보다 거기 따라붙는 엄청난 광고료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결국 이런 식의 ‘그늘이 깊은’ 대박 신화는
방송사에겐 좋을지 몰라도, 시청자나 제작 스탭에겐 악순환으로 작용할 것이다. 1천만 관객의 영화 1편 보다 2백만~3백만 관객의 영화가 몇 편
더 나오는 것이 전체 영화계에 이득이라는 이론은, TV드라마에도 적용될 것 같다. <주몽>의 여정은 어쨌든 서서히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또 연장을 안한다면!) 그 성취만큼이나 많은 한계를 고스란히 남긴 채, 이제야 비로소 고구려를 세우러 간다. |